지난 8월 22일, 박충범 씨의 재판이 열렸다. 박충범 씨는 지난해 3월 28일 열린 ‘국민연금강화,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총력투쟁 결의대회’ 집회와 행진에 참가했다는 혐의로 일반교통방해죄 벌금 약식명령을 선고 받았다. 이에 박충범 씨는 무죄를 주장하며 정식 재판을 요구했고, 지난 5월부터 재판이 진행됐다.

앞선 공판에서 박충범 씨는 검찰 측이 제시한 채증 사진의 증거 능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취지로 이를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박충범 씨로 지목된 사진 속 인물 얼굴의 절반 가까이가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혐의를 입증할만한 객관적·과학적 증거가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검사는 황당하게도 아직까지 해당 채증 사진들을 보지 못했다며 증거 심리를 미룰 것을 요구했다.

그 다음 공판에서 증거 심리가 있었으나 검찰이 제출한 채증 사진만으로는 동일인 입증이 어렵자, 재판부는 국과수를 통해 사진 검증이 가능한지 여부를 다음 기일까지 알아 오라고 검사에게 요구했다. 재판부 입장에서도 이런 불확실한 증거를 근거로 판결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 공판에서는 이 채증 사진으로 국과수 사진 검증이 가능한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었다. 이에 판사가 그 결과를 묻자, 검사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아봤더니 (채증 사진 속 인물의) 눈, 코, 입 골격이 나와 있지 않아서 사진 검증이 어렵다더라’라는 취지로 답했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매우 취약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셈이었다.

앞서 재판부는 추가로 제시할 증거가 있는지 물었으나 검사는 기존에 제출한 기록을 5분여 동안 뒤적였을 뿐 아무것도 내놓지 못했다.

이렇게 기존에 제시한 핵심적 증거의 취약함이 입증됐고 추가 증거도 내놓지 못했음에도, 검찰은 뻔뻔스럽게도 3백 만 원의 벌금을 구형했다!

이에 박충범 씨는 최후진술을 통해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묻지마’ 기소”에 대해 폭로하며 “애시당초 이런 불확실한 사진을 증거로 삼아 마구잡이로 기소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공개 비판했다.

‘묻지마’ 기소

박충범 씨는 검찰의 ‘묻지마’ 기소를 폭로할 뿐 아니라 당시 행동의 정당성도 힘주어주장했다. “만약 이 행진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정당 행위에 해당한다.”

검찰이 박충범 씨를 기소하면서 문제 삼은 집회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공무원 연금 개악에 반대해서 무려 8만여 명의 교사, 공무원, 보건의료 노동자 등이 참가한 집회였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런 노동자들의 저항을 꺾고, 공무원연금 개악을 지렛대 삼아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같은 더 광범한 공격을 추진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이런 마구잡이 수사와 기소를 남발한 것이다.

그래서 박충범 씨는 공무원연금 개악은 “박근혜 정부가 경제 위기와 재정 적자를 핑계로 노후와 미래를 부당하게 박탈한 것”이며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이 날 집회와 행진은 “정당한 항의의 목소리가 아스팔트 위로 터져나온 것”이라고 그 정치적 정당성을 옹호했다.

박근혜 정부의 충실한 손발 노릇을 하며, 제대로 된 증거조차 없이 박충범 씨를 기소한 검찰을 규탄한다. 박충범 씨는 무죄다. 공무원 연금 개악에 맞선 노동자 투쟁의 대의를 옹호하고 집회 시위의 자유 등 민주적 권리를 무시하는 검찰의 ’묻지마’ 기소에 맞서 당당히 투쟁하고 있는 박충범 씨에게 지지를 보내자!

아래는 박충범 씨의 최후진술 전문이다.

최후진술문

“마구잡이 기소 자체가 문제다” 

우선 이 한 가지를 꼭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제가 법을 공부한 것도 아니거니와 실제 현실에서의 관행은 또 어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증거재판주의라는 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증거에 의해서만 사실 인정을 해야 하고 증거란 증거 능력과 적법한 조사를 거친 것이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견지에서, 지난 6월 20일 재판 당시 제가 채증 사진을 증거 부동의 했을 때 검사가 보인 태도에 대해, 저는 큰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그때 검사는 분명 “(채증) 사진을 아직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피고인이 된 입장에서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기소를 하면서 증거도 검토하지 않았다는 것은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하지 않은 것으로 매우 무책임한 태도라 생각합니다. 이 점을 지적하면서 최후진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검찰은 제가 2015년 3월 28일 ‘국민연금강화,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총력 투쟁 결의대회’ 집회 후 미신고 행진에 참가해 교통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저를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입니다.

첫째, 검찰에서 제출한 채증 사진은 제가 이 행진에 참가했다는 혐의를 입증할 만한 객관적·과학적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채증 사진 중 어느 것을 보더라도 저로 지목된 사진 속 인물의 안면은 마스크로 절반 가까이 가려져 있습니다. 애시당초 이런 불확실한 사진을 증거로 삼아 마구잡이로 기소한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둘째, 애초 경찰이 이 사건을 인지 수사하는 과정 자체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것이었는지도 의문이 있습니다. 검찰에서 제출한 채증 사진은 행진에 참가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무작위로 촬영한 것입니다. 그 중 어떤 사람의 얼굴을 그것도 매우 일부분만으로, 거기에 동종 전력이 없는 특정 인물의 인적 사항과 일치 여부를 가늠한 과정이 쉬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사찰이나 일상적 감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셋째, 만약 제가 이 행진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정당 행위에 해당합니다. 이날 집회는 당시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는 것에 항의해서 공무원노조, 전교조, 공노총, 교총 등의 공무원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무려 8만여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운집한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이 중앙지법 건물에도 수많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공무원연금이란 무슨 의미겠습니까? 지금 당장이야 좀 박봉에 시달릴지라도 노후에는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미래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와 재정 적자를 핑계로 이런 공무원 노동자들의 노후와 미래를 부당하게 박탈한 것입니다. 이날 집회와 행진은 바로 이런 문제에 대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항의의 목소리가 아스팔트로 위로 터져나왔던 것 뿐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저는 저에 대한 일반교통방해죄 기소를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저는 무죄입니다. 이명박과 박근혜, 특히 이 우파 정부 9년 동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대단히 후퇴했고, 집회와 시위에 대한 자유도 집회 시위 참가자에 대한 일반교통방해죄 확대 해석과 적용, 그리고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묻지마’ 기소 등 온갖 방법으로 탄압받아 왔습니다. 재판부가 부디 현명한 판단을 내려, 억눌린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저항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민주적 권리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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