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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선거인가?

최근 이라크 선거 관련 보도를 읽으면 매우 혼란스럽다. 이라크 텔레비전은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의 얼굴이 아니라 ‘발’을 보여 준다. 모술에서는 선관위원 전원이 사퇴했다.
78개 정당의 후보자들은 선거가 코앞인데 아직 실명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적당할 때” 공개할 예정이란다. 당연히 거리 유세도, TV 토론회도 없다.
1월 14일부터 선거 종료일까지 휴대전화 기지국이 모두 폐쇄된다. ‘테러’에 이용될까 봐서다. 바그다드에서는 투표소로 통하는 주요 도로가 모두 봉쇄된다. 투표하러 어떻게 갈지는 “추후 공지”될 예정이다.
해외 선거 참관인들은 이웃한 요르단의 암만에서 선거를 감독하기로 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모린 다우드는 이를 두고 “경기장에서 두 블록 떨어진 선술집에서 TV를 보면서 미식축구 경기 심판을 보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꼬았다.
이러한 상황은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많은 이라크인들이 1월 30일 선거를 보이코트하고 있고, 일부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막으려고 하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흔히 언론에서는 민주주의가 “비이슬람적”이고, 투표소가 “무신앙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투표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는 빈라덴이나 알자르카위의 ‘성명서’만 집중적으로 보도된다. 그러나 점령에 반대하는 많은 무장 저항세력과 정치조직은 선거라는 제도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점령 하의 선거에 반대할 뿐이다.
무장 저항세력 연합단체 중 하나인 이라크애국동맹의 대변인은 〈아시아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항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라크인만이 해방 이후 이라크 정부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먼저 외국 점령군대와 그들의 똘마니로부터 자유를 쟁취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는 자유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사실, 이라크에서 권력은 점령군의 총구에서 나오고 있고 선거가 이 사실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부시가 이번 선거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유는 국제 반전 여론을 무마하고 수니파와 시아파를 분열시키기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중동 전문 기자 패트릭 콕번의 지적대로 “반란이 수니파에 한정되는 한 미국은 이 반란을 진압할 힘은 없지만 계속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아파가 미국에 대항하기 시작하는 순간, 미군은 이라크를 떠나야 할 것이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아프가니스탄 책임자였던 밀트 비어덴은 이 때문에 “미국이 이라크에서 종족·종파 간 분열 카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분열 카드가 미국의 의도대로 관철될지는 알 수 없다. 비어덴은 “보통 분열 작전은 우리 편이 지고 있을 때 사용하지만 … 패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쿠르드족 지도부는 선거 보이코트를 위협하며 키르쿠크 지역을 요구하고 있다.
더 중요하게, 알사드르가 지도하는 사드르 운동은 시아파이지만 선거 보이코트를 선언했다.
최근 일부 아랍 언론에서는 중립을 지키기로 했다고 보도했지만 알사드르 본인이 보이코트를 철회하지는 않았다.
사실, 선거 보이코트는 사드르 운동의 근거지인 사드르 시의 정서와 잘 맞는다. 2백50만 명의 시아파 빈민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 인구 밀집 지역 중 하나인 이 곳은 지난 9월까지 수시로 미군 전폭기에 의해 폭격당했고, 점령군과 꼭두각시 정부에 대한 적개심이 깊다.
물론 시아파 주요 지도자들은 시아파 선거 연합인 통일이라크연맹을 조직하고 시아파 대중에게 투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후세인 시절 탄압받은 덕분에 약간의 존경을 획득했을지 몰라도 오랜 해외 망명 생활 때문에 사드르 운동처럼 대중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그들은 지금 선거가 정상적으로 치러질 가능성이 점점 줄어들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설사 선거가 진행되고 통일이라크연맹이 예상대로 많은 의석을 확보하더라도 공약대로 미군의 즉각 철수를 요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협상이 아니라 무장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지금 미국은 선거를 치르는 데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팔루자·라마디·모술 등 “보안이 불안정한 곳”에 더 많은 폭력을 행사할 계획이다.
미국은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사상자를 냈지만 이들 지역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수도인 바그다드조차 미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다.
부시가 1월 20일 취임식에서 아무리 이라크 선거를 칭송하더라도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