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이듬해인 1950년 5월 1일 중국에서는 농민들의 염원인 토지개혁과 더불어 ‘하늘의 절반인 여성들의 해방’을 가져다준 새 혼인법이 공표됐다. 혼인법은 부권으로부터 여성의 해방을 천명하면서, 일부다처제나 매매혼 같은 봉건적 혼인제도를 폐지하고, 혼인의 자유, 일부일처, 남녀평등의 원칙을 확립했다.

당시 중국 공산당의 2인자인 저우언라이의 부인이자 전국부녀연합회*의 부위원장이었던 덩잉차오는 “여성해방은 여성에게 최우선의 과제”라고 강조하며 공산당 간부들에게 혼인법을 학습시키고 남녀 교제의 자유와 미혼 남녀의 연애의 자유를 강조했다.

신중국은 등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강력한 국민국가를 서둘러 건설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았다. 더욱이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을 보며 마오쩌둥은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 결과가 1955년부터 시작된 인민공사 추진과 1958~60년의 대약진운동이었다.

1955년 마오쩌둥은 ‘”여성의 노동전선 진출”에 부쳐’라는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위대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많은 여성 대중을 생산 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생산에서는 반드시 남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야 한다. 참된 남녀평등은 사회주의 개조를 위한 전체 과정에서 제일 먼저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진정한 관심사는 남녀평등이나 여성 해방이 아니었다. 여성 노동력을 생산성 향상 과정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는 1958년 대약진운동을 시작할 당시 “사람의 입은 한 개지만 손은 두 개다” 하며, “생산 향상에서 6억의 인구는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했다. 인구 증가를 위해 여성들의 출산이 장려됐다.

1959년 인민공사가 본격화되면서 전국 여성의 95퍼센트가 인민공사에 소속돼 농업, 어업, 목축업, 임업 등에서 남성 노동자들과 큰 구별 없이 노동을 했다. 당시 가사노동을 줄여 여성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공동 식당, 공동 세탁소, 공동 탁아소 등이 설치됐다. 또, 여성을 끌어내기 위해 “시대는 변했다. 남녀는 평등하게 됐다. 남성 동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여성 동지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널리 확산됐다. 이런 배경에서 ‘철의 처녀’나 ‘맨발의 의사’ 등 영웅적·헌신적 여성이 많이 배출됐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과 달리 인민공사 내에는 여성차별이 구조화돼 있었다. 인민공사에는 ‘노동점수체계’가 시행됐는데, 여성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하루 7~8점밖에 벌 수 없지만 남성들은 9~10점을 벌 수 있었다. 마오쩌둥이 말한 세 가지 격차(정신노동과 육체노동, 도시와 농촌, 노동자와 농민) 외에도 또 다른 격차가 있었음을 뜻한다.

이렇게 여성 차별적 노동점수체계는 여성이 육체적으로 남성보다 약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됐지만, 남녀평등의 구호 하에 중공업 육체노동 일자리에 여성 노동자들을 활용하는 것과는 모순됐다. 많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듯이, 중국에서도 저임금 일자리는 대부분 여성이 차지했고, 국유기업에서 해고할 때도 여성이 우선 대상이었다.

개혁 개방과 여성 처지의 변화

1978년 인민공사가 해체되고 시장경제가 발전하면서 전통적 성별분업과 함께 매매혼, 축첩, 성매매 등 악습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사회 전반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화됐다. 여성은 계절에 관계없이 늘 치마를 입어야 한다거나 여성은 복장을 단정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횡행했다. 이 주장은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이라는 논리로, 또 회사 이미지 향상이라는 논리로 정당화됐다. 여성은 부드럽고 우아하게, 남성은 낮고 힘찬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주장, 여성은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몸과 목소리를 꾸며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최근 후난성에 속한 한 현의 책임자는 이런 현실을 지적했다. “우리 현에 있는 젊은 여성 7만 명이 광둥에 가서 일합니다. 그들 중에서 최소한 1만 명은 매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경제학자 양판(揚帆)은 전국에 ‘유흥업소 접대부’ 여성이 5백만 명 정도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성 산업이 됐다고 주장한다. 절대 수치로 보면, 중국이 성매매 여성 수에서 세계 최고라는 주장도 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할 당시 중국 지배자들이 직면한 문제 중 하나는 경제성장으로 먹여살릴 수 있는 규모보다 더 많은 인구 증가였다. 대약진운동 때와 달리 이제는 많은 인구가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 가지 방편이 한 자녀 정책이었다. 1980년 개정된 새 혼인법은 제2조에 “계획출산을 실행한다”는 문구를 삽입했고, 제12조에 “부부 쌍방은 … 계획출산을 실행하는 의무를 진다”고 명시했다. 새 혼인법은 “남성이 여성 가정의 일원이 될 수 있” 고(데릴사위제), 아이가 부모 중 어느 쪽의 성을 붙여도 무방하다고 규정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부계제와 남아선호 관습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 여성과 여성 노동자의 처지가 중국 지배자들의 말과 달리, 남녀평등이 아니라 경제 상황에 종속돼 있음을 1980년대 중반에 벌어진 ‘부녀회가’(婦女回家) 논쟁이 여실히 보여 줬다. 부녀회가의 핵심은 노동력은 많아졌지만 일자리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1988년 전국부녀연합회가 발간한 〈중국부녀〉는 시장개혁으로 부유해진 농촌에서 여성이 전업주부로 전향한다는 르포를 자주 실으며 부녀회가를 강조했다.

이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식을 가진 여성을 집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남성 중심으로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재편성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이 여성의 인간으로서 자립과 발전의 기반이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부녀회가 논쟁은 수그러들었지만, 파트타임, 계절성 취로, M자형 취업 등의 일자리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오늘날 중국 여성의 현실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다시 많은 노동력이 필요해졌다. 농촌의 잠재적 실업자들(농민공)이 이 필요를 충족시켰다. 농민공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리고 중국 경제 발전의 이면에 저임금 여성 노동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폭스콘 공장이 잘 보여 준다. 폭스콘은 애플의 부품업체로 중국에 네 개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고용하고 있는 노동자 80만 명의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대하고 여성의 경제적 자립이 늘어나도 남녀 간 격차는 여전하다. 농민공 내에서도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77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중국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대하면서 여성의 권리가 확대되고 여성에 대한 편견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양성평등은 여전히 요원한 일처럼 보인다. 아래의 사례는 여성 차별이 만연해 있는 중국의 현실을 일부만 보여 줄 뿐이다.

첫째,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과 실업률이 남성보다 높다. 전국 도시 여성 실업률이 2005년 50퍼센트, 2006년 48퍼센트로 상당히 높다. 2000년 15~60세 여성의 실업률은 9.64퍼센트로 남성 실업률의 1.91배에 이른다.

둘째, 남녀 간 소득 격차도 여전하다. 도시 여성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1988년에는 남성의 84퍼센트였지만, 1995년에는 82퍼센트, 2003년에는 81.9퍼센트로 계속 줄었다. 전국으로 보면, 여성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은 2005년 남성의 67.75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농촌 여성은 도시 여성보다 소득도 낮고 남성과의 임금 격차도 더 크다. 2005년 도시 여성의 소득은 남성의 72퍼센트였지만 농촌 여성은 65퍼센트였다.

셋째, 노동시장에도 남녀 불평등이 존재한다. 국유기업이 사영기업보다 남녀 임금 격차가 작긴 하지만, 국유기업이나 집체기업의 구조조정 일차 대상자가 여성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넷째, 사회보장에서 여성은 불이익을 받는다. 여성은 규정이나 관례에 따라 남성보다 5~10년 일찍 퇴직한다.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제공받는 의료비, 의료보험, 퇴직금, 노후연금, 실업수당, 상해보험, 유급휴가, 주거비수당, 유급병가 등을 남성 노동자들보다 적게 받는다.

여성의 농업 의존도가 크다는 점도 소득과 사회보장 등 사회경제의 자원분배에서 여성이 불리함을 의미한다. 2005년 수정된 부녀권익보장법과 2003년 농촌토지청부법은 여성도 남성과 같은 토지사용권을 가진다고 규정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소득이 호구 단위와 호주 명의로 분배되고 있다.

다섯째, 여성의 빈곤 인구 비율도 남성보다 좀더 높다. 여성 절대빈곤 인구 비율은 2005년 8.48퍼센트, 2006년 7.3퍼센트로 남성에 비해 각각 0.28퍼센트포인트와 0.34퍼센트포인트 더 높다. 또 여성 저소득층 비율도 남성에 비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는 현실은 중국이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이며 착취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체제라는 사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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