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파탄 문제는 김대중 정부 하의 민생 파탄을 보여 주는 극적인 사례이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보건 ‘복지’는 계속 추락했다. 2000년에만 의료보험료가 43퍼센트 올랐다. 공공 의료 기관들은 대폭 축소됐다. 김대중 정권 하에서 자그마치 164곳의 공공 의료 기관이 문을 닫았다(2000년 4월 10일치 〈한국일보〉).

김대중이 의사들의 호주머니를 불리는 동안 진료비도 껑충 뛰어올랐다. 이미 우리 나라의 의료비에 대한 가계 부담 비율은 선진국의 두 배를 웃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하면 세 배에서 네 배에 이른다. 김대중 정부가 올 7월로 약속했던 의료 보험 급여 확대도 축소·연기됐다.

그러나 대중 분노의 불길을 잡을 소방수로 급파한 김원길이 기껏 내놓은 대안은 보험료 30퍼센트 인상이다.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는 “보험료를 60퍼센트 올려야만 재정 파탄을 해결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소액진료비 부담제나 의료저축제도는 관료들이 입 밖에도 내기 힘든 대안이다. 실각한 최선정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소액진료비 부담제를 거론했다가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던 것을 김대중 정부의 관료들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가 현재 고려중인 대안은 보험료 인상 외에는 딱히 없다. 그러나 그조차 아직 확정 발표를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 마디로 저들은 대중의 공분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며 마음 졸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속만 태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사회보험 노동자들을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제물로 삼을 기회를 엿보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 대책 마련에는 그리도 굼뜬 정부가 재정 파탄 소식이 보도되자마자 신속하게도 1천70명의 노동자를 자르겠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부부 사원들을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마녀사냥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공단측이 해고 대상자로 꼽은 기준은 부부 사원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0cc 이상의 자가용 소유자, 채무자” 등 기가 찬 내용들이 기준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1천70명 노동자들 몫의 임금을 줄인다 하더라도 재정 파탄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정작 재정 파탄에 기여해 온 인물들은 뻔뻔스럽게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의료보험료를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던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장인 김대중 동서 서재희는 시민단체들의 빗발치는 퇴진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사회보험 노동자들의 파업 이후 노동자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자신의 사무실에 CCTV까지 설치한 이사장 박태영도 버젓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리해고 대상자는 바로 이들이다. 다행히도 사회보험 노동자들은 거의 모든 조합원들이 모인 조합원 총회에서 75퍼센트로 파업을 결의했다.

한편, 파탄난 건강보험을 메워야 할 전경련과 경총 등은 되레 재정 파탄을 계기로 민간보험이 대안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잦은 병원 이용을 줄이는 대신 비용이 많이 드는 진료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부자들의 주장은 완전한 위선이다.

의료저축제도는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되레 병원 문턱을 높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경련과 경총 등에서 “이상적인 모델”로 칭송하는 민간의료 보험은 질병 위험이 높은 사람들의 가입은 아예 거부하는 제도다. 보험사 ‘역선택’이라 불리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돈 없는 사람은 아예 아프지도 말아야 한다.

엉뚱하게도, 한나라당은 되레 의보통합이 문제라며 핏발을 세우고 있다. 의보통합 원인론은 자기 기업 소속의 직원들이 낸 보험료로 무슨 짓을 해도 회계 장부를 조작해 배를 불릴 수 있었던 직장 의보 체계를 더 선호하는 기업주들의 이해 관계와 관계돼 있다. 한나라당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의료 혜택에는 눈꼽만큼의 관심도 없다.

뜨거운 계급 투쟁의 쟁점

건강보험 재정 파탄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급 투쟁의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를 것이다. 언제 갑자기 건강보험 관련 대형 부패 스캔들이 폭로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지역의보와 직장의보 재정이 실질적으로 통합되는 내년 1월에 구체적인 재정 조사가 이뤄지면 새로운 사실이 속속 밝혀질 것이다. 이미 건강보험금을 마음대로 갖다 쓰거나 보험금을 주식 투자로 날린 규모가 엄청날 거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한나라당이 의보통합 자체를 문제시하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두 달만 밀려도 보험 진료 자격을 박탈시키는 의보 제도가 부패한 관료들한테는 사금고 노릇을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엄청나게 뛰어오른 보험료가 부패한 관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간 사실이 폭로되기라도 한다면 한국은 엄청난 공분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라도 재정 파탄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하다.

평범한 개인들의 부담은 줄이는 대신 돈 많은 부자들과 정부가 파탄난 재정을 메우라고 요구하는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국가의 지원을 늘리라는 요구는 완전히 정당하다. 국고 지원은 선거 때의 공약과는 달리 계속 축소돼 왔다. 정부는 급여 범위를 늘리기는 했지만 정작 재원 조달은 계속 줄여 왔다.

보험료 인상을 유일한 대안으로 삼고 있는 김대중 정부의 관료들은 저부담 구조가 애초의 원인이었다고 주장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손으로 해를 가리는 꼴이다. 우리 나라 의료보험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싼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병원에 갈 때 병원비를 거의 안 낸다. 이 비용까지 계산한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준의 보험제도에도 불구하고 내는 돈은 비슷하다.

OECD 국가들 가운데 ‘전체 보건의료 지출 중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율 순위’는 45.5퍼센트를 기록한 한국이 미국에 이어 꼴찌를 기록했다. 룩셈부르크는 91.8퍼센트를, 프랑스는 74.2퍼센트를 국가가 부담한다. 한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의 멕시코조차 국가 부담률은 60퍼센트다.

더구나 사람들을 죽이는 무기에 쓰일 돈을 사람들을 살릴 의료비에 쓰라는 요구야말로 현실적인 대안 아닌가? 이것은 허황한 몽상이 아니다. 실제로 코스타리카 정부는 기관총 이상의 모든 무기를 폐기한 돈을 공공 의료비로 돌린 바 있다. 최근 우리 나라 정부는 10조 원에 이르는 무기 사업 계획을 도입하려 한 바 있다. 이런 돈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쓰도록 해야 한다.

근대 사회보험의 기원은 독일의 비스마르크 정부로 거슬러 올라간다. 만성 불황에 시달렸던 당시 독일 상황에서 비스마르크는 불만에 찬 평범한 사람들과 좌파들을 억눌렀다. 대신 그는 ‘질병보험’, ‘재해보험’, ‘노령 폐질보험’ 등 3대 사회보험 정책을 만들었다. 이것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독재 체제에 대한 거대한 불만과 저항을 통해 얻어 낸 양보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의료 보험과 같은 사회 보험은 계급 투쟁이 만들어 낸 저항과 압력의 산물이었다. 건강보험 문제는 평범한 사람들을 거리 시위와 대중 파업으로 이끌어 낼 주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진정한 사회 변혁을 원하는 사람들은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둘러싼 대중적 분노가 거대한 투쟁으로 폭발할 때 가장 능동적인 대중 운동의 일부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시장이 의료를 얼마나 망쳤는지, 대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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