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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위기를 악화시키는 유럽연합의 정책

난민의 유럽 유입 경로 변화 육로이거나 비교적 짧은 뱃길이었던 경로 ①에서 더 위험하고 먼 경로 ②로 바뀌었다. ⓒ그래픽 조승진

10월 2일 헝가리 정부가 실시한 난민 거부 국민투표가 무효화됐다.

헝가리 우파 총리 빅토르 오르반은 반년 넘도록 막대한 예산을 쓰며 난민 거부 표를 선동해 왔다. 또한 “헝가리에서 난민 거부를 통과시켜서 다른 나라들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일도록 하겠다”고 공언하며 유럽 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를 바랐다. 반면 난민을 지지하는 쪽은 국민투표 보이콧을 호소해 왔다. 그리고 투표율(43퍼센트)이 국민투표 성사 기준에 미치지 못해 정부의 반난민 정책 강화 기도가 타격을 입었다.

헝가리 국민투표를 촉발한 것은 유럽연합의 난민 정책이다.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독일은 유럽연합 외부적으로는 국경 단속을 강화해 난민 유입을 차단하고 내부적으로는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독일은 ‘난민 신청은 자신이 처음 발 디딘 유럽연합 회원국에서만 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유럽통계청 자료를 보더라도 다수 난민은 경제적 여건이 비교적 나은 독일로 가길 바란다. 그런데 중동과 아프리카 출신의 난민 다수가 독일로 가려면 다른 나라를 거칠 수밖에 없다. 고무보트나 조악한 어선을 타고 지중해와 대서양을 지나 독일로 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권이나 비자를 구비하기 힘든 난민들이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이 내놓은 난민 ‘분산 수용’ 정책의 핵심은 지리적으로 유럽연합의 외곽에 있고 난민들이 주로 경유하는 나라들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게다가 그 규모는 유럽연합 국경수비대 프론텍스가 추정한 난민 유입 규모(지난해에만 1백80만 명)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이처럼 유럽의 주요 선진국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때문에 난민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더한층 위험한 루트로 내몰리는 난민들

9월 말 난민을 싣고 이집트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전복돼 최소 2백 명, 많게는 4백 명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 비극의 책임은 유럽연합의 국경 단속 강화에 있다.

원래 중동 출신 난민들은 유럽으로 갈 때 터키와 그리스 사이의 육로를 이용했다. 그러나 철책이 설치되는 등 길이 막히자 난민들은 더 위험한 해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해상 순찰을 강화하며 난민을 더 위험한 루트로 내몬다. 또한 유럽연합은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을 터키로 강제송환시킬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아프리카 출신 난민들은 리비아→ 이탈리아 뱃길을 이용해 왔다. 유럽 지배자들은 병력 1천2백 명을 보내 이 길도 막으려 한다. 또한 “이주 협력 프레임워크”라는 이름으로 튀니지,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에게 난민의 유럽행을 막으면 총 6백20억 유로(약 77조 원)를 지원하겠다며 돈다발을 흔들고 있다.

그래서 난민들은 한층 더 멀고 위험한 항로를 택하고 있다. 이탈리아로부터 무려 1천 5백 킬로미터(부산~백두산 왕복 거리) 떨어진 이집트가 새로운 거점으로 부상하는 이유다. 안전한 교통 수단이 제공됐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 지배자들이 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난민 위기의 진정한 원인과 해결책

올해 상반기 유럽 전역에서 난민 자격을 새로 신청한 사람은 60만 명이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3개국 출신자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데서 보듯, 제국주의 개입이 ‘난민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전대미문의 규모라지만 결코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다. 난민 신청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독일에서조차 지난해 1월부터 올해 8월까지의 난민 신청자는 독일 전체 인구의 1.2퍼센트에 불과하다.

유럽의 지배자와 우익들은 이주민·난민 때문에 일자리와 복지가 사라진다고 떠든다. 그러나 이주민 유입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숱한 연구 결과들은 이주민 수와 임금 하락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많은 경우 이주민 유입은 해당 국가 경제에 기여했다. 오히려 지배자들이 추진하는 구조조정, 외주화, 민영화가 임금 하락과 일자리 축소의 주요 요인이다.

이주민들은 ‘내국인’들보다 복지 혜택을 적게 받는다. 무상의료로 유명한 영국의 경우, 이주민이 의료 시설을 이용하는 빈도는 같은 연령 영국인의 절반밖에 안 된다. 영국 의료제도의 후퇴는 예산 삭감 때문이지 이주민 탓이 아니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돌리려고 이주민·난민을 속죄양 삼는 것이다. 진정한 대안은 전쟁 몰이와 기업 떠받치기에 사용하는 막대한 돈을 난민을 돕고 평범한 사람들의 임금과 일자리와 복지를 확충하는 데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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