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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석유화학 구조조정 계획 발표:
과잉 생산 위기가 짓누르고 있는 한국 경제

한진해운 법정관리 여파가 채 끝나지도 않았고, 조선업 구조조정도 여전히 계속되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9월 30일 ‘철강·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철강과 석유화학 산업의 구조조정 방안까지 제시한 것이다.

정부는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이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석유화학은 베인앤컴퍼니, 철강은 보스톤컨설팅그룹에 조사를 의뢰하고 이에 기반해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외국계 컨설팅 업체들이 정부의 영향력 하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철강·석유화학 산업이 아직까지는 버틸 만하지만, 앞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며 선제적이고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잉 공급 부문은 설비 감축·매각 등으로 줄이고, 고부가가치 부문을 지원해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과잉 생산

해운·조선과 마찬가지로 철강·석유화학도 전 세계적인 과잉 공급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산업이다.

2015년 전 세계 철강 생산 능력은 23억 8천만 톤인데 반해 철강 수요는 16억 톤 정도로, 철강 공급 과잉 규모는 7억 5천만 톤이나 된다. 앞으로 몇 년간은 전 세계 철강 수요가 거의 제자리걸음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중국의 철강 설비가 급증하면서 전 세계적인 과잉 공급을 이끌었다. 중국의 철강 생산 능력은 2005년 4억 4천만 톤에서 2015년 11억 5천만 톤으로 급증했지만, 중국의 철강 수요는 3억 6천만 톤에서 7억 톤 정도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중국의 철강 공급 능력 과잉이 4억 5천만 톤이나 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1억~1억 5천만 톤의 철강 생산 설비를 감축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방정부와 민간 기업들의 반발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철강 수출은 특히 최근 2~3년간 급증했다. 2013년에 6천만 톤 수준이던 것이 2015년에는 1억 1천2백만 톤(한국 철강 생산량의 약 1.5배)으로 늘었고, 이 중 한국으로 1천3백73만 톤(한국 철강 소비량의 4분의 1)이 들어왔다. EU·북미·동남아시아 등에서도 한국과 중국의 철강 제품은 치열한 경쟁 중이다.

전 세계와 중국의 철강 생산 능력과 수요(단위: 억 톤)

석유화학 산업도 마찬가지다. 중국 경제 성장이 둔화하며 석유화학제품 수요도 감소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 기업들이 생산 설비를 늘리면서 자급률이 높아졌다. 중국은 조만간 석유화학제품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중동 석유화학 기업들도 저렴한 원료 가격이라는 우위를 이용해 설비를 크게 늘리며 아시아 시장을 집중 공략하고 있고, 북미에서도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석유화학제품을 증산하고 있다.

철강 구조조정의 첫째 대상으로 언급되는 부문이 후판이다. 후판은 조선·해양플랜트에 들어가는 두께 6밀리미터 이상의 두꺼운 철판이다.

철강

조선업이 호황이던 2000년대 중후반에는 후판이 공급 부족 상태였다. 그래서 후판을 생산하는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2007~13년에 후판 설비를 집중적으로 늘렸다. 2007년 3사 합산 후판 생산 능력이 6백만여 톤이었는데 2015년에는 1천3백만 톤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최근 조선과 해양플랜트 산업이 침체하면서 공급 과잉 상태가 됐다.

현재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은 각각 4곳, 2곳, 1곳의 후판 공장에서 각각 연간 7백79만 톤, 3백50만 톤, 1백50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정부는 당분간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의 경기가 회복되기 쉽지 않다며, 이 중 4백만~5백만 톤을 줄여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후판 공장 3~4곳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철강산업의 강관 분야도 중소사업자들이 난립해 있어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관은 속이 비어 있는 지름 4~6미터짜리 파이프로, 얼마 전까지 북미 지역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수요 확대를 기대하면서 투자가 크게 늘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가 하락으로 셰일가스 투자가 줄어들고, 미국이 반덤핑관세 같은 수입 규제를 강화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정부는 철근 분야도 중장기적으로 설비 조정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철근이 주로 사용되는 주택 건설 경기가 좋기 때문에 업체들의 상황이 크게 나쁘지 않지만, 향후 건설 경기가 안 좋아질 공산이 크고, 중국산 철근 수입도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율적인 감축·매각이 진행될지는 의문이다.

후판 공장의 가동률이 떨어지고 수익성도 낮아지면서 직격탄을 맞은 동국제강은 지난해에 이미 공장 한 곳을 정리했기 때문에 남은 1곳마저 감축하라고 한다면, 아예 후판 사업을 접으라는 뜻이 된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공장 감축에 쉽게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강관과 철근도 자발적 구조조정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강관 사업은 1백여 개 넘는 중견·중소업체들이 영업 중이고, 철근 사업도 중견·중소업체들이 많다. 이들은 강관이나 철근 하나만 만드는 회사들인 경우가 많아, 사업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구조조정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 특히 철근 사업은 현재 수익성도 나쁘지 않아 정부가 압박할 수 있는 수단도 많지 않다.

철강 업체들은 “지금 공장이 문을 닫으면 중국 등 해외 철강 업체에 시장을 고스란히 내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금 설비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꼽은 석유화학 품목은 페트병 원료인 테레프탈산(TPA), 장난감 소재인 폴리스티렌(PS), 타이어 원료인 합성고무(BR, SBR 등), 파이프 소재인 폴리염화비닐(PVC) 등 4가지다. TPA와 PS는 인수·합병 등을 통해 생산량을 감축하고, 합성고무와 PVC는 생산 능력을 더는 늘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석유화학

특히 연간 생산 능력이 5백85만 톤에 이르는 TPA가 대표적인 과잉 업종으로 꼽혔다. TPA는 최근 연간 생산량을 4백70만 톤 수준으로 줄었지만 정부 계획대로라면 1백만 톤 정도를 추가로 감산해야 한다.

국내 TPA 생산업체는 한화종합화학, 삼남석유화학, 태광산업, 롯데케미칼, 효성 등 5곳이다. 연간 생산 능력은 한화 2백만 톤, 삼남 1백80만 톤, 태광 1백만 톤, 롯데 60만 톤, 효성 42만 톤이다. 정부는 인수·합병(M&A)으로 업체들을 3~4곳으로 재편하길 원하는 듯하다.

하지만 업체들이 유가 하락으로 수익을 내고 있어 TPA 공장을 매물로 내놓기 쉽지 않을 것이다. 9월 28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형환은 롯데케미칼과 효성에게 감산을 권유했지만, 이들은 생산량의 90퍼센트 이상을 자체적으로 소비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전 세계 에틸렌 생산 능력(단위: 천 톤)
구분 2012 2015
세계 147,287 100% 160,301 100%
미국 26,981 18.1% 28,471 17.8%
중국 16,510 11.1% 21,323 13.3%
사우디 15,585 10.4% 16,165 10.1%
한국 8,350 5.6% 8,640 5.4%
일본 7,605 5.1% 7,058 4.4%

지배자들의 분열과 노동자 투쟁

해운·조선뿐 아니라 철강·석유화학 산업에서도 2008~09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 위기의 압력이 계속해서 한국 기업들을 궁지에 몰고 있는 형국이다. 게다가 미국 금리 인상, 중국 성장 둔화뿐 아니라 최근 도이체방크의 파산 위험으로 다시 한 번 드러난 전 세계 금융의 불안정성과 취약함은 한국 기업들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배자들 내의 이견과 정부의 레임덕 때문에 정부 주도의 합병·폐업 등의 구조조정은 쉽지 않을 것이다. 철강·석유화학 기업주들은 정부의 구조조정 방향에 동의한다고 밝히면서도, 앞서 봤듯이 자신들의 설비를 감축해야 한다는 것에는 반발하고 있다. 위기가 가장 심각하다는 조선업 구조조정 보고서는 이번에 제출되지도 못해 10월로 미뤄졌다. 기업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조선업 중간 보고서를 여러 차례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 등 조선 대형 3사에 보고했으나, 그때마다 업체들이 반발해 보고서조차 완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경제 위기의 고통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이번에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된 철강업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40퍼센트에 가까워, 조선업(67.8퍼센트)과 함께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부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성과연봉제 등 노동개악을 밀어붙여 기업들의 임금 부담을 줄여 주려 하고 있다.

지배자들이 분열한 상황에서 현재 벌어지는 노동 개악에 맞선 공공부문 파업과 현대차 등의 임금 인상 투쟁이 전진한다면,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하는 데 더 유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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