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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의 진정한 성격은 무엇인가?

1월 12일에 민주노동당 5차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중앙위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사업 평가, 시군구 지역조직 개편안,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 설치안, 인터넷 기관지 편집위 구성안 등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먼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과 비정규직 철폐 투쟁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초안은 “투쟁을 통해 비정규 노동법 개악안은 실질적으로 저지시켰으며, 국가보안법은 완전 폐지는 이루지 못하였으나 전국적 쟁점으로 만들었고, 민주노동당이 유일 진보세력임을 과시하였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태연 중앙위원(서울 은평)은 “우리 당의 보안법 완전 폐지 방침은 최고위원회 등에서 계속 훼손됐다. 지도부는 열우당의 형법보완론에 거듭 타협했다”고 비판했다.
이진숙 중앙위원(충남 아산)과 김준수 중앙위원(서울 성북)도 “우리 당이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얼마나 노력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김창현 사무총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열우당 2중대라는 비판을 두려워 말고 한나라당을 공격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지 열우당 2중대가 돼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고 해명했다.
그러나 말이 아니라 행동이 중요하다. 가장 효과적인 투쟁 전술은, 여러 개혁 과제들을 하나로 묶어 열우당과 한나라당 모두에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 그럴 때에만 국가보안법 폐지도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국가보안법 올인’ 투쟁은 열우당과의 ‘개혁 공조’에 발목에 잡히는 바람에 열우당의 행보에 일희일비했고, 국가보안법 폐지는 고사하고 파병 연장안 같은 중요한 쟁점들이 거의 저항받지 않고 국회에서 통과됐다.
지난해 하반기 사업 평가를 둘러싼 이견은 당 내에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를 설치하는 문제에서 다시 한 번 불거졌다.
이 제안은 지난해 하반기에 당 지도부가 비정규직 철폐 투쟁에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는 문제 의식이 담겨 있다. “‘비정규직 당원 모임’이 지도부에 투쟁 의지와 계획을 거듭 요청했으나 구체적인 답변이 없었다.”(이진숙 중앙위원)
격론이 매듭을 짓지 못하자 문성진 중앙위원(인천)이 “중앙위 산하에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 구성을 결정하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회의로 넘기자”는 수정안을 냈다.
그러나 이용식 최고위원은 “비정규직 투쟁본부 구성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노동위와 별개로 구성하는 데에는 이견도 있으니 위상과 구성, 사업 등은 의견을 좀더 수렴해서 다음 회의에서 결정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운동본부를 노동위 산하에 둬 당 지도부의 통제력을 확보하려 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당과 민주노총이 각각 정치와 경제를 분업하고자 하는 구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하고 있는데 당이 굳이 나설 필요가 있는가 하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정치와 경제의 분업은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상호 결합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이 결합되지 않으면 운동의 더한층 심화를 도모할 수 없다.
결국 이용식 최고위원의 수정안이 문성진 중앙위원의 수정안을 가까스로 누르고 통과됐다.
한편, 조직강화특위(조강특위)가 제출한 지역조직 개편안은 현행 지구당 체계를 시·군·구 행정단위로 재편하자는 것이었다.
주민의 생활권이 시·군·구 행정단위에 더 가깝게 형성돼 있으므로, 지방권력 장악이라는 목표에 비춰 지역조직을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당법상 지구당이 폐지 조건 등도 근거가 됐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여러 지역위원회(지구당)가 하나로 통합돼 지역조직의 숫자가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 지방에서는 여러 행정구역을 하나로 묶은 지역위원회를 다시 잘게 나누면 조직력이 더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됐다.
사실, 두 안 모두 선거 제도(전자는 중대 선거구제, 후자는 현행 소선구제)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다른 한편에는, 세력간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다.)
민주노동당의 지역 조직은 운동에 바탕을 두고 성장을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지역의 구체적인 조건과 간부 역량과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해 유연하게 편재할 필요가 있다. 운동이 성장하고 있고 당이 급속하게 팽창하는 상황에서 당 조직을 더 크게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렇게 봤을 때 “일률적으로 행정구 등을 기준 삼지 말고 도시와 지방, 당원 숫자 등을 고려해서 유연하게 재편하는 방법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최재기 중앙위원(경남 창원)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지역 조직 개편안 최종 결정은 2월 27일 당대회로 넘겨졌다.
인터넷 기관지 편집위 구성안 토론은 첨예한 긴장감이 흘렀다. 정성희 기관지위원장은 인터넷 기관지와 〈진보정치〉의 편집위 분리안(1안)을, 〈진보정치〉 이광호 편집장은 편집위 통합안(2안)을 내놓았다.
정성희 위원장은 인터넷 기관지와 주간 종이신문은 매체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인터넷 게시판에 기사를 올리면 종이신문 판매가 줄어들 수 있다는 논거를 들었다.
이광호 편집장은 주간신문과 인터넷 기관지는 하나의 매체로 봐야 하며, 역량을 분산하지 말고 집중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편집위의 분리냐 통합이냐는 진정한 논점이 아니었다. 진정한 쟁점은 당 기관지의 정치적 성격과 구실을 둘러싼 이견이었다.
정성희 위원장은 〈이론과 실천〉 최영민 편집장을 해임하면서 기관지가 “좌편향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정 위원장이 그 후임으로 내세웠던 김장민 씨는 스탈린주의를 확고하게 옹호한다. “최악의 사회주의 체제라도 최선의 자본주의 체제보다 우월하다. 최악의 사회주의라고 폄하되는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 미연방공화국보다 도덕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우월하다.”
그러나 당내 반발에 부딪혀 김장민 씨의 편집장 인준은 이번 중앙위에 안건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인터넷 기관지 편집위 구성은 이 논쟁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이 안건은 재석 중앙위원 216명 중 138명의 찬성으로 반려돼 다음 중앙위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