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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낙태 처벌 강화 시도 반대한다
낙태는 여성이 선택할 권리

박근혜 정부가 낙태 처벌을 강화하려 한다. 말끝마다 "저출산 해소"를 외쳐온 박근혜 정부가 결국 낙태 단속을 꺼내 들었다.

지난 9월 22일 보건복지부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령안이 명시한 ‘비도덕적 진료 행위’들은 ‘허가받지 않은 주사제 사용’, ‘진료 목적 외 마약 처방’, ‘성폭력 범죄’ 등인데, 그 중에 '모자보건법 제 14조 제1항을 위반해 임신중절수술을 한 경우'가 포함돼 있다. 개정령안에 따르면, 적발된 의사들은 최대 1년 의사 자격이 정지될 수 있다(현행 1개월).

산부인과 의사 단체들은 이에 반발하고 있다.

낙태 시술을 한 의사들에 대한 처벌 강화는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을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 것이다.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낙태 단속을 강화하자 낙태 시술을 거절하는 병원이 늘고 낙태 비용이 솟구쳤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저출산 현상’에 대응해, 오랫동안 묵인돼 온 낙태에 대한 단속을 강화했다. 그 전까지도 낙태는 불법이었지만, 여성들이 낙태 시술을 받는 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물론 불법이다 보니, 낙태 시술을 받아도 쉬쉬하고, 의료보험 혜택도 받지 못했다. 특히 청소년 여성들은 단속 전에도 비용을 마련하기 어려웠고, 임신·낙태 사실이 알려질까 봐 두려움에 떨었다.

낙태 단속 강화는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여성들은 기존에 낙태 시술을 하던 병원도 하지 않겠다고 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한때 낙태 비용이 열 곱절 이상 치솟기도 했다.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이 비싼 수술비와 처벌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고통받았다.

비싼 비용은 부유한 여성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가난한 여성들과 경제적 능력이 없는 청소년 여성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이웃 나라에 가서 원정 낙태를 하는 일도 긴 휴가를 내기 힘든 노동계급 여성들에게는 부담이 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낙태권은 특히 노동계급에게 중요한 문제다.

낙태권, 왜 중요한가

낙태를 선택할 권리는 국가도 남편도 의사도 아닌 오롯이 여성에게 있어야 한다. 임신과 낙태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출산은 여성의 삶 전체에 심대한 변화를 준다.

여성에게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없다면, 여성은 자신의 출산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도 계획할 수 없다. 낙태권이 없다면 여성이 성을 마음껏 즐기기도 어렵다.

완전한 피임법은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임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성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경우는 언제든지 있을 수 있다. 여성은 아이를 낳아 키우기에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 있고, 이혼이나 이별 등 남편이나 애인과의 관계가 변해서 출산하기 싫어질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단지 아이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이든 여성의 낙태 선택권은 온전히 보장돼야 한다.

게다가 정부가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있는 조건도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최근 ‘무상보육’마저 후퇴시켰다) 낙태를 단속하는 것은 여성들에게 그저 희생을 감내하라는 말밖에 안 된다.

흔히 낙태 반대론자들은 낙태가 “살인”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낙태 불법화와 단속이야말로 여성들을 안전하지 않은 낙태로 내몰아 생명을 위협한다. 세계적으로 비위생적이고 안전하지 못한 낙태 관련 합병증으로 매년 8백만 명이 고통받고, 그중 6만 7천 명이 사망한다.

얼마 전 낙태 금지 반대 시위에 나선 폴란드 여성들은 철제 옷걸이를 들고 나왔다. 낙태 불법화 상황에서 여성들이 철제 옷걸이나 뾰족한 막대기 같은 도구로 자가 낙태를 해서 위험에 빠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어떤 여성들은 표백제나 독극물을 먹기도 한다. 주로 아프리카나 아시아 나라들에서 이런 극단적 일들이 벌어지지만, 그밖의 나라들에서도 위생적이지 않은 곳에서 무면허 시술자에게 시술받는 등 안전하지 않은 낙태를 경험할 수 있다. 낙태 금지가 이런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 때문에 폴란드 여성들은 대중적 시위와 ‘파업’에 나섰고, 결국 우익 정부의 낙태 전면 금지 정책을 좌절시켰다.(▶관련 기사: 폴란드 사회주의자가 전하는 낙태권 운동 승리- 대중 투쟁이 사회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 주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이 여성의 낙태권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정체와 인간은 구분해야 한다. 수정체는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 인간은 아니기 때문이다. ‘태아’는 여성에 완전히 의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여성 신체의 일부일 뿐이다. ‘태아의 생명권’ 논리는 의도했든 아니든 여성을 출산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기 십상이다. 성립하기 어려운 ‘태아의 권리’가 살아 숨쉬는 인간 여성의 권리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처벌은 낙태를 줄이는 효과도 없다. 여성들은 낙태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낙태가 합법화된 나라들보다 불법인 나라들에서 낙태율이 오히려 더 높다.

결국 핵심은 여성들이 안전하고 합법적으로 낙태할 수 있게 할 것이냐, 낙태를 범죄화해 음성적이고 불안전한 시술을 받게 내버려 둘 것이냐다.

정부는 낙태 처벌 강화 시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낙태를 완전히 합법화해 여성의 요청만으로도(남편이나 연인, 의사, 정부 관료의 동의를 요구하거나 개월 수를 따지지 말고) 안전하고 경제적 부담 없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관련 기사: 낙태 허용 요구 기자회견 “낙태는 범죄가 아니다. 낙태를 허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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