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해 총회를 열고 본관 점거 투쟁에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일보〉는 이를 두고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서울대는 무조건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비뚤어진 특권 의식이 작용한 것 아니냐"고 비난했다.(2016년 10월 12일치)

먼저 친일과 군사 독재를 미화하며 1백 년 가까이 특권을 누려 온 〈조선일보〉가 평범한 학생들의 특권 운운하는 모습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최근에는 〈조선일보〉 주필 송희영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초호화 유럽여행을 제공받은 것으로 폭로돼 스스로 물러나기도 했다.

반면,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측의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이해할만하다.

서울 소재 대학이 만든 지역 ‘분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본교와 차별을 겪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학교 측이 서울에 있는 본교에 비해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아 교육의 질은 낮아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분교’ 출신 학생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악화된다. 오죽하면 서울대 농생대 학생들이 20여 년 동안 본교로 이전할 것을 요구했겠는가. 농생대는 결국 2000년대 초에 수원에서 본교로 이전했다. 다른 대학들에서도 분교 출신 학생들이 재학 중에는 물론이고 이후 취업에서도 불이익을 겪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런 차별과 사회적 편견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차별을 겪을 게 뻔한 상황에서 이에 저항하는 것과 차별을 당연시 하고 강화하려 하는 것, 즉 ‘특권 의식’은 완전히 다르다. 시흥캠퍼스 설립에 반대해 점거 투쟁에 나선 평범한 서울대 학생들은 후자와 아무 관련이 없다.

서울과 지역 사이에, 대학들 사이에 격차를 낳고 사회적 편견을 조장해 온 것은 이 나라 지배자들이었다. 이들은 고속 성장을 위해 수십년 동안 서울에 비할 데 없이 많은 투자를 했다. 교통·문화 시설 등은 물론이고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학벌주의를 강화하는 대학 서열화로 대학들 간의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기업주들은 경쟁 교육을 강화해 노동력의 질을 높이겠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대학 서열화를 지지해 왔다. 〈조선일보〉 등 보수 언론도 그 일부였다.

이처럼 차별을 만들어 온 자들이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특권’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지만, 새로운 일은 전혀 아니다. 박근혜 정부가 멀쩡한 공무원·공공부문 노동자들을 ‘철밥통’이라고 매도하는 것을 보라.

지금도 서울대학교 측은 시흥시의 부지 제공과 한라건설의 건축물 제공을 바탕으로 실시협약을 맺었을뿐 정작 어떻게 시흥캠퍼스를 운영할 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내놓은 게 없다. 서울대 성낙인 총장은 학생들과 대화하겠다고 약속해 놓고는 몰래 실시협약을 체결하며 뒤통수를 쳤다. 얼마나 숨기고 싶었으면 그 흔한 협약 체결식도 하지 않았다. 의무기숙 제도도 협약에 포함시키지 않았다지만 그렇다고 하지 않기로 확정된 것도 아니다.

애당초 시흥시와 한라건설이 학문의 발전이나 학생들을 위해 서울대학교에 부지와 건물을 제공하려 했을 리도 없다. 한라건설은 들어오지도 않은 서울대 이름을 팔아 아파트 분양을 성공리에 마쳤고, 시흥시는 그 앞에 있지도 않은 ‘서울대학로’를 만들었다. 당연히 주변 집값과 땅값이 들썩일 것이고 부동산 가격 상승은 지역 주민들이 아니라 투기꾼들에게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서울대학교 학생, 교직원 등에게 돌아오는 것은 높은 생활비 부담과 갖은 불편일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대학교에 부지가 부족하다니 말이나 되는가?

학생들과 대학 구성원들을 제물로 바쳐 대학 기업화를 추진하려는 시흥캠퍼스 추진은 즉시 철회돼야 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의 본관 점거 투쟁은 완전히 정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