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언론의 야단법석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 재정 위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직장의보의 경우 1997년부터 당기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1999년의 적립금 규모는 1조 5천억 원으로 줄었다. 2000년 적자는 7101억 원에 달했다. 이런 추세라면 의약분업과 수가인상이 없었더라도 2001년 말에 재정은 파탄날 수밖에 없었다.

지역의보의 재정 상태는 더욱 열악해서, 2000년 적자 규모는 3천억 원인데 적립금은 364억 원에 불과했다. 재정 파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된 일이다. 2001년에는 적자가 1조 6694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공무원사립학교교직원(공교) 의료보험의 경우는 만성적인 재정위기에 시달리다가 1998년에 지역의료보험과 통합됐다.

의약분업과 수가인상 전부터 의료보험 재정이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던 이유는 보험 재정의 증가율이 의료서비스 이용의 자연증가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장 의료보험의 경우 지난 5년 간 진료비는 19.0% 증가한 반면 수입은 9.1% 증가에 그쳤다. 지출이 수입보다 무려 10% 높다.

우선 수입의 증가세가 둔화된 이유로 경제위기를 들 수 있다. 상승하는 실업률은 노동자와 서민의 소득을 감소시켰고, 소득 감소는 바로 보험료 수입의 감소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노동자와 서민의 의료비 부담이 적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직장과 지역 모두를 통틀어서 보험 재정 중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5.8%에 달한다. 이미 노동자와 서민의 부담은 높을 대로 높다. 부담이 적은 것은 정부와 기업주들이다. 이들이 의료보험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3.2%(정부)와 19.0%(기업)에 불과하다.

정부와 사장들의 낮은 부담

ILO는 노동자들의 의료보험 분담 비율의 최고한도를 50%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49%로 가까스로 이 규정을 준수하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용자가 똑같이 50%씩 분담하고 있다. 정부 보조는 전혀 없다. 그러나 가까운 대만만 하더라도 노동자는 보험료의 30%만을 부담하고 있다. 나머지는 정부와 기업주가 각각 10%와 60%를 부담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월 보수의 6.9%를 보험료로 내고, 사용자도 6.9%를 보험료로 내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월 보수가 630마르크(약 40만 원) 미만일 경우, 노동자들은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사용주들이 13.8% 전액 지불한다. 실업자의 경우는 정부가 보험료를 전액 납부해 준다.

프랑스의 경우 소득의 19.6%를 보험료로 내지만 노동자들은 6.8%만을 내고 나머지 12.8%는 기업주가 부담한다. 심지어 미국에서조차 직장 의료보험의 경우 비록 감소추세이긴 하지만 1994년 현재 기업주가 보험료의 70%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정부는 1989년부터 직장 의료보험과 공교 의료보험 가입자들과의 형평을 위해 지역의료보험 가입자의 보험료 50%를 부담하기로 약속했지만 정부의 국고지원 50% 약속은 1989년과 1991년을 제외하고는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오히려 1991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1999년에는 26%까지 감소했다.

또 다른 '보험료', 본인 부담금

우리는 병원에 가서 돈을 지불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환자가 직접 의료기관에 돈을 지불하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영국은 그 비율이 8.9%에 불과하고, 사회보험과 국영의료체계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25%를 넘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52%에 달해 다른 나라의 2배 이상이다.

본인 부담금은 보험료와 마찬가지로 진료를 받기 위해서, 보험 혜택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에 보험료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의사들은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이 3∼5% 수준에 불과하다며 OECD 국가 수준으로의 보험료 인상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본인 부담률을 감안하면 국민부담률은 7.07∼11.8%에 달하게 된다. 이 정도 수준이면 이미 충분히 높은 수준이다.

결정타, 의보 수가인상

그러나 만성적인 재정위기만으로는 올해의 급격하고도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정적자를 설명할 수는 없다. 올해 정부의 국고지원 과부족액은 1조 원이 넘는 수준에 불과한데 반해 재정 적자 규모는 정부 추산으로만 3조9천억 원에 달하기 때문에 정부의 국고지원이 이행됐더라도 재정 파탄을 피할 수 없었다.

의보수가는 의약분업시행을 둘러싸고 1999년 11월부터 올 1월까지 모두 5차례나 인상되었는데, 그 인상률은 복리로 따졌을 경우 43.9%에 달하고, 금액으로는 3조9천억 원에 달한다.

이 중 1999년 11월과 2000년 4월에 취해진 12.8%와 6.0%에 해당하는 수가인상이 1999년 11월에 단행된 약가실거래 상환제에 대한 보상이라고 볼 경우, 재정 파탄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2000년 7월과 9월, 그리고 2001년 1월의 세차례 수가 인상이라고 볼 수 있다.(각각 9.2%, 6.5%, 7.08%) 각각의 수가 인상에 따른 부담 증가액은 1조6천억 원, 4천3백억 원, 4천7백억 원으로 총 2조5천억 원에 달한다. 이는 예상 적자액 3조9천억 원의 7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다섯차례에 걸친 수가 인상 모두가 단지 약가마진 손실 보전에 불과하다는 의사들의 주장과는 달리, 수가 인상은 약가마진 손실을 훨씬 초과했다. 의원당 진료비는 191만 원(7.7%) 증가해 2천7백만 원에 이르게 됐고 약국당 총 약제비(조제료 등+약품비)는 2천4백만 원(약국은 작년 7월에서야 보험 적용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에 비교할 자료가 없다)에 이르게 되었다.

진료 건수가 6.94% 증가했지만 총 진료비 증가율은 이보다 훨씬 높은 51.7%에 달한다. 이런 엄청난 증가는 수가인상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한편 민주노총은 수가 인상이 의료보험뿐만 아니라 의료보호, 비급여부문, 산재보험, 자동차보험 등의 수가에도 연계됨으로써 의료보험 적자 외에 국민의 추가부담은 4조38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물론 의료보험 재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의료기관(병·의원, 약국)의 수입으로 포함될 수 있는 부분이다. 때문에 수가인상으로 인한 의료계의 수입 증가는 위 수치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한편 의사들의 수가도 의사들의 주장처럼 과도하게 저평가 된 것은 아니다. 1977년 7월의 수가를 100으로 했을 때 98년 7월의 수가는 514.71이다. 같은 기간 소비자 물가 누적지수가 507.91인 것에 비해도 결코 낮게 인상되어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사들의 수가가 낮다면 1977년 의료보험을 시작할 때 의사들이 세금을 의식해 자신들의 수입을 낮게 신고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세금을 의식해 자신의 소득을 낮게 신고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