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쓴 자일스 자이 웅파콘은 타이의 사회주의자로, 현재 영국 망명 중이다. 웅파콘은 타이 군부의 2006년 친왕정 쿠데타를 비판한 일 때문에 국왕모독죄로 기소돼 15년형을 받을 위험에 처했었다. 망명 전 타이 출라롱콘대학교 교수였고, 타이 정치단체 ‘노동자 민주주의’의 주도적 활동가였다. 이 글은 두테르테 당선 즈음인 5월 22일에 쓰였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삽입한 것이다.


필리핀 남부 다바오 시의 ‘최고 권력자’이자 깡패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대통령에 당선하자 많은 질문들이 쏟아지고 있다.

두테르테는 시장 시절 잡범 수천 명을 즉결처형 하는 등 인권을 유린한 전력이 있다. 희생자들 중에는 어린이들도 있었다.

그는 경찰과 용병, 과거의 공산반군 등으로 이 살인부대를 꾸렸다.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2006년 폐기된 사형제를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또한 “범죄자”들을 교수형에 처해 그들의 목이 몸통에서 떨어질 때까지 매달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두테르테는 여성에 대한 끔찍한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다.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 사건 때 강간·살해된 오스트레일리아인 여성 선교사에 대해 그는 농담조로 “시장인 내가 먼저 강간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두테르테는 노동자와 빈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포퓰리스트 미사여구를 사용하는 반동적 우파 정치인이다. 그는 마오주의 필리핀공산당(CPP)에게 환경, 농촌 개발, 노동 문제를 담당하는 각료 자리들을 맡기겠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사회의 후진 부위(범죄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중간계급 포함)의 지지를 얻으려고 자신이 “강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는 여성비하 발언을 늘어놓으면서 한편으로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 온갖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뒤섞는 이유는 그에게 이데올로기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 어떤 정치적 원칙도 없다.

두테르테가 공산당에 추파를 던지자 공산당 창립자인 호세 마리아 시손이 화답했다. 시손은 이제 공산당이 정부와 화해할 때라고 주장한다.

오늘날 공산당은 진보적 세력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들의 마오주의는 기껏해야 권위주의적 스탈린주의와 민족주의였을 뿐이다. 그들도 여타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과 마찬가지로 계급 분단을 가로질러 부르주아 정치인과 동맹을 형성하는 데 목을 맨다. 현재 중국과 네팔의 “마오주의” 공산당들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펴고 있다.

두테르테가 허풍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공산당원을 각료로 임명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진보적 정책은 추진되지 않을 것이다. [이후 농업개혁부와 사회복지부에 공산당 계열의 인물 2명이 장관으로 임명됐다.] 필리핀에서는 과거에도 좌파가 노동부 장관에 임명됐던 선례가 있다. 마르코스 독재가 [1986년] 민중항쟁으로 몰락한 뒤 출범한 코라손 아키노 정부는, 공산당의 영향을 받는 ‘5월1일운동(KMU)’ 노동조합연맹의 투사 아우구스토 산체스를 노동부 장관에 임명했다. 대중이 좌파라고 여기는 인물이 부르주아 정치에서 각료로 임명되는 경우는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사회운동과 노동조합을 더 잘 통제하기 위해서다. 목적이 달성되면 좌파 각료는 제거된다. 산체스에게 일어난 일이 바로 그랬다.

두테르테 당선 전, 비(非)스탈린주의 좌파정당인 ‘노동대중당(PLM)’의 소니 멜렌시오는 사회주의자는 유력 대선 후보 중 어느 누구도 지지할 수 없다고 썼다.

두테르테의 주요 경쟁자는 전임 대통령 베니그노 노이노이 아키노를 배출한 자유당의 후보였다. 멜렌시오가 지적하듯이 두테르테의 당선은 “뜨라뽀(더러운 걸레)“로 불리는 기성 정치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환멸을 보여 준다. 평범한 노동자와 빈민의 삶에 기여한 게 전무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테르테는 좌파적 대안이 부족한 덕분에 이길 수 있었다.

멜렌시오는 두테르테가 후안 페론을 일부 연상시킨다고 한다. 후안 페론은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스트 독재자로서 좌우를 망라하는 동맹을 건설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두테르테가 페론처럼 국가를 통해 사회적합의주의를 관철시킬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멜렌시오는 두테르테가 ‘아웃사이더’라는 생각을 옳게 뒤엎는다. 두테르테는 오랫동안 민다나오섬을 지배한 지역 정치 엘리트 가문 출신이다.

한편, 멜렌시오가 두테르테를 타이의 [전 총리] 탁신 친나왓과 비교하는 것은 흥미롭다. 둘 다 인권 탄압을 자행했고, 탁신 역시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으며 마약과의 전쟁을 명분으로 수천 명을 즉결처형 했다. 둘 다 한때 마오주의였던 세력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탁신은 지역 깡패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보편적 건강보험제도처럼 실질적 효과를 발휘한 빈민 정책들을 도입한 부유한 재계 거물이었다.

이처럼 두테르테와 탁신의 차이를 간과하기 때문에 선거 후 멜렌시오의 ‘노동대중당’이 두테르테에 대해 취하는 태도에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멜렌시오는 이 깡패와 그 지지자들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그는 기성 엘리트 “뜨라뽀” 정당들이 주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테르테도 노동자의 주적이다. 멜렌시오는 좌파가 두테르테 지지자들과 함께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두테르테와 동맹을 맺자는 호세 마리아 시손의 제안을 환영한다. 그러나 좌파는 부르주아 정치인들, 하물며 인권을 탄압하는 자들과는 철저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좌파는 복지국가 건설, 노동조합 권리 확대, 국가 탄압 종식 등 진정한 대안 강령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타이에서 탁신 정부 시절 우리 ‘노동자민주주의’가 했던 일이다.

물론, 좌파는 주류 정당들이나 군부가 [탁신이나 두테르테를 몰아내고 전통적 엘리트층을 복권시키려고] 벌이는 모든 쿠데타 시도에 맞서야 한다. 만약 쿠데타가 발생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회운동이 크게 벌어진다면 두테르테 지지자들과도 함께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타이에서 ‘노동자민주주의’는 [쿠데타에 반대하는 민중 운동] 붉은 셔츠 운동에 참여하면서도 탁신과 그를 지지하는 붉은 셔츠 공식 지도부한테서 독립성을 유지했다.

하물며 지금은 좌파가 두테르테와 어떤 종류의 동맹을 맺을 시기도 아니다. 너무 오랫동안 동남아시아의 좌파는 권력에 더 빠르게 다가가려고 계급 분단을 가로지르는 동맹을 건설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필리핀의 비(非)스탈린주의 사회주의자들은 타이의 ‘노동자민주주의’보다 더 강하고 영향력도 더 크다. 이런 필리핀 사회주의자들이 한층 더욱 강하게 성장할 기회를 낭비한다면 애석한 일이 될 것이다.

출처: 자이 자일스 웅파콘 블로그 5월 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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