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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쯔양은 천안문 항쟁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자오쯔양이 죽은 후 중국 지배자들은 매우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국내 보도가 통제됐고, 해외 위성방송도 그의 죽음을 보도할 때마다 송신이 중단됐다.
반면, 많은 인권단체들과 천안문 항쟁 희생자 가족들은 자오쯔양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고 자오쯔양의 죽음과 함께 천안문 항쟁이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항쟁은 ‘개혁파’ 전 총리 호요방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위로부터 시작됐지만 그 배경에는 중국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지배와 시장경제 개혁이 가져온 불평등과 모순에 반대하는 노동자와 학생 들의 분노가 있었다.
공산당 지배자들은 진압 과정에서 수천 명을 학살했고, 많은 참가자들이 오늘날까지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다. 이러한 야만적인 탄압에 희생당한 사람들의 가족과 인권단체들의 요구는 전적으로 정당하다.
그들이 자오쯔양에게 동질감을 느끼는 것은 이유가 있다. 자오는 천안문 항쟁 때 군대를 동원하는 데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지배자들 내 희생양이 됐다. 덕분에 일부 언론은 그를 “민주주의의 풍운아”라고 불렀다.
하지만 실제의 자오쯔양은 천안문 항쟁의 상징이자 “중국 민주화의 풍운아”가 될 자격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천안문 항쟁을 가져온 중국 사회의 모순을 만들어 낸 장본인 중 한 명이었다.
1980년대 총리와 당서기로서 자오가 주도한 ‘개혁’은 공산당 독재 아래 중국 자본주의 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세계 시장에 중국을 개방했고, 이 때문에 서방 지배자들로부터 찬사를 얻었지만, 이 과정에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유지해 주던 사회복지제도가 파괴됐다.
지배자들 내 반대에도 불구하고 1988년 5월 밀어붙인 가격 개혁 때는 하루 아침에 생필품 가격이 20∼50퍼센트씩 올라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크게 떨어졌고, 천안문 항쟁에 많은 노동자들이 참가한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그의 소위 ‘정치 개혁’도 진정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단 한번도 공산당 독재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의 비서였던 바오통은 “10년 동안 그의 비서를 하면서 하는 단 한번도 그가 공산당의 지도적 위치를 의심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는 공산당에 엄청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고 회고했다.
한술 더 떠, 그는 1987년 중국이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에 들어섰으며 공산당의 지도 아래 이 단계가 “앞으로 100년간 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론을 동원하기 위해 약속했던 민주적 조치들을 이행하지 않았다.
초기에 천안문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그를 타도 대상 중 하나로 생각했다. 1989년 5월 29일 천안문 광장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야유를 받았다. 그는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울면서 해산하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 중국 지배자들이 자오의 죽음에 긴장하는 것은 자오쯔양의 실제 모습이 때문이 아니다. 중국 지배자들은 2004년 하반기에만 사소한 소요가 도시 규모의 봉기로 발전한 사례가 30여 건이나 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중국은 빈부격차, 도농격차, 자본가와 노동자의 갈등, 정부와 농민의 갈등 등으로 점철돼 있다.
한 봉기에 참가했던 노동자는 “우리 사회는 불붙기를 기다리는 폭탄 심지와 같다”고 말했다. 중국 지배자들은 1989년 ‘개혁파’ 지도자의 죽음이 대중적 저항으로 연결됐던 것처럼 자오쯔양 죽음이 투쟁의 심지 역할을 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 많은 아카데믹들은 그의 죽음이 정치적 저항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사실 지금 상황은 1989년 호요방이 죽었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가장 커다란 차이점은 그 당시에는 1988년에 시작된 경기불황으로 지배자들이 분열돼 있었다. 그래서 학생운동이 이 분열을 이용할 수 있었다.
젊은 노동자와 학생들이 자오쯔양에 얼마나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미지수다.
자오쯔양의 죽음이 당장 저항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천안문 항쟁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과 평가를 고무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천안문 항쟁은 대중들이 자오쯔양 같은 ‘개혁파 관료’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직접 행동할 때 독재 체제를 뒤흔들 수 있음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천안문 항쟁은 중국 노동자와 농민이 지배자들에 맞서는 투쟁에 나설 때 새로운 투쟁의 역사와 함께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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