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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을 “박근혜 퇴진” 함성으로 가득 메우다

ⓒ이미진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하야하라”

두 구호가 청계광장에서 종로 1가, 그리고 광화문까지 거리를 가득 메웠다.

10월 29일 5시 철도노조의 결의대회부터 청계광장으로 모이기 시작한 행렬은 거리 행진을 시작한 7시 반경에도 끊이지 않았다.

노인들, 동료들과 함께 온 직장인들, 어린 아이와 손잡고 나온 부부와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나온 청년·청소년들까지 참가자들의 구성은 참으로 다양했다. 특히 집회와 시위에 처음 나온 듯한 10~20대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밤늦게까지도 ‘역사적 순간에 함께하자’며 친구들과 자리를 지켰다.

집회 후 참가자들이 청계광장에서 거리로 나오는 데에만 30분이 넘게 걸렸다. 행진 과정에서 더 불어난 행진 대열은 5만여 명에 이르렀고, 행진 선두가 세종문화회관 앞에 이르는 동안 종로1가 차도 전체와 인도까지 가득 메운 인파는 종각 사거리까지 이어졌다.

충격적인 최순실 게이트의 실상이 본격적으로 폭로된 지 일주일 만에 수만 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이는 박근혜 퇴진 요구가 단지 최순실 사건에 대한 불만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물론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도 살펴 보면 박근혜 본인이다.) 퇴진 요구는 4년 내내 노동자·서민을 쉴 새 없이 못살게 군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이자 노동 개악과 교육 개악, 고통전가 정책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주말 집회에서 성난 민심이 표출될 것을 걱정해 청와대와 새누리당 지도부가 긴급 회동을 하고 청와대 수석들의 일괄 사표를 받고 정호성 등 문고리 권력들까지 압수수색을 하는 쇼를 벌였지만, 이미 봇물 터지듯 분출한 분노를 잠재울 순 없었다.

오히려 거리에 나온 사람들은 그새 증거 인멸을 어느 정도 해놓고 이제 와서 쇼를 한다고 반응했다. 박근혜의 어떤 말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여러 언론사들이 내보낸 인터넷 생중계마다 수만 명의 시청자들이 몰려 이 집회에 전국적인 관심이 쏠렸음도 알 수 있었다.

하루 전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 재청구를 포기한 경찰은 급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곤혹스런 처지를 드러냈다. 차벽이나 물대포 협박을 하지도 못했다. 해산 방송을 하면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운운하는 저자세의 표현도 썼다. 수만 명이 순식간에 광화문광장까지 진출해 박근혜 퇴진을 외칠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럼에도 맨몸의 시위대에게 최루액을 쏘는 등 비열한 본능을 감추진 못했다. 심야까지도 수천 명이 “비켜라”,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경찰과 대치했다.

청계광장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대회는 오후 6시에 시작됐다. 6시를 한참 앞둔 이른 시각부터 시청역, 종각역, 광화문역 방면에서 사람들이 청계광장으로 몰려 들면서 집회 시작 전부터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가 됐고,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고조됐다. 주최측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대열 뒷편에서는 무대 발언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참가자가 적을 것이라던 경찰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청계 광장에 모인 사람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참가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미진

연단에 선 발언자들이 박근혜 퇴진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마다 대열에선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백남기 농민 사망 직후부터 경찰의 부검 시도에 맞서왔던 백남기투쟁본부 공동대표인 가톨릭농민회 정현찬 회장은 "국민 여러분의 힘으로 백남기 농민을 지켜냈다"면서 "더이상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지 말고 박근혜 정부는 즉시 퇴진하라"고 포문을 열었다.

박근혜 퇴진 보건의료인 선언을 주도한 우석균 보건의료연합 정책위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재벌들을 폭로했다. "재벌들은 박근혜 정권의 공범이다. 미르와 K스포츠재단에 수백억 원을 삥 뜯긴 듯이 얘기하지만, 그 돈을 바친 직후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악, 의료민영화, 공공서비스 민영화 담화문을 발표했다"면서 "사유화된 국가권력으로 노동자 서민 등쳐서 재벌에 돈을 갖다준 것이 최순실게이트의 실체"라고 주장했다.

33일째 파업을 하고 있는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은 ‘시국선언’을 낭독했다. 김영훈 위원장은 "불편해도 괜찮아라며 응원해 준 덕분에 파업을 한 달 넘게 이어가고 있다"며 감사를 표하고 투쟁을 이어겠다고 해 더 큰 환호를 받았다.

진보 정치인들도 집회를 지지하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민주노총 의원단의 김종훈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이재명 성남시장이 함께 나와 박근혜가 퇴진하는 것이 해법이며 싸워서 퇴진시켜야 한다고 호소해 참가자들의 자심감을 북돋웠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 특혜에 연루된 총장을 학내 투쟁으로 사퇴시킨 이화여대의 김승주 학생(노동자연대 학생그룹)의 발언도 큰 박수를 받았다. 김승주 학생은 박근혜가 그리 떠들던 법과 질서를 스스로 박살냈다며 사퇴만이 유일한 사과라며 퇴진 투쟁을 이어가자고 호소했다.

행진

행진은 장관이었다. 청계광장에서 종각사거리로 나가 광화문으로 향한 대열은 순식간에 세종문화회관 앞부터 광화문 사거리까지를 가득 메웠다. 맨 앞의 대열이 경찰 저지선과 대치하는 동안, 중간 대열에서는 주최측의 방송차를 이용한 자유발언대가 마련됐다.

행진 시작 30분이 지나도록 여전히 청계광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미진

자유발언대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분노한 청소년들이 줄을 이었다. 분노한 대학생들의 발언도 이어졌다.

한 초등학생은 “박근혜 이모가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어른이 나왔다며 박근혜 ‘이모’가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생들의 발언이 많아 많은 사람이 고무됐는데, 학생들은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이 이래선 안 된다고 기염을 토했다.

초등학교 때 엄마와 함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나왔고 중학교 때 또 엄마와 함께 세월호 집회에 나왔다는 고등학생의 발언도 인상적이었다. “우리 엄마의 오빠가 서해 페리호 사건으로 돌아가셨는데, 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면서 “잘못된 세상이 바뀌지 않아서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집회가 기획되고 홍보된 지 3일 만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가득 안고 모인 것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폭로한 부패하고 추악한 실상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온갖 악행들에 치를 떨며 지내 온 4년의 불만이 폭발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29일 집회와 행진은 박근혜가 심화시킨 불평등과 불안정, 고통전가에 대한 항의였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 요구가 정당하며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음도 보여 줬다. 즉 운동이 계속될 것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껏 그래왔듯이 조직된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청계광장 집회에서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은 ‘박근혜를 끌어내리기 위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으로 앞장서겠다’고 했다. 오늘 참가자들은 환호와 박수로 이 약속을 지지한다고 표현했다. 노동운동이 실질적인 투쟁계획을 세우고 실행해 이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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