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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인 유학생 압둘 와합 인터뷰:
“미국과 러시아가 손 떼면 시리아는 안정될 수 있습니다”

2009년부터 한국에 유학 중인 시리아인 압둘 와합을 김종환 기자가 만났다. 압둘 와합은 2013년에 시리아 난민 구호단체 ‘헬프시리아’를 결성해 현재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에게서 시리아 현지의 어려움과 미국·러시아 등 국제적 개입이 실제로 낳은 효과, 발로 뛰며 겪은 한국·터키 정부들과 유엔의 실상 등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고향 시리아 현지의 난민을 지원하는 압둘 와합. ⓒ조승진

구호 활동에 협조는커녕 발목 잡는 한국, 터키 정부

지난해 말 인터뷰[165호 기사, ‘시리아인 압둘 와합 인터뷰 ― “모든 국가들이 시리아에서 손을 떼야 한다”’] 이후 ‘헬프시리아’ 활동으로 터키에 두 차례 직접 갔고, 시리아 안에 있는 난민 캠프에 구호 물품을 지원하셨지요. 어떤 어려움이 있었습니까?

[1월에] 터키로 출발하기 전에, 시리아로 물품을 전달해 줄 사람과 경로를 찾아 놨습니다. 저를 포함한 ‘헬프시리아’ 사람들이 시리아로 직접 들어갈 수 없거든요. 그런데 터키에 도착하자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송금부터 문제였습니다. 식량 목록을 만들어 공급업체와 계약서까지 썼는데 돈을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시리아인의 해외 송금은 안 된다’고 막았기 때문입니다. ‘헬프시리아’ 계좌가 제 이름으로 돼 있거든요. 그래서 다른 한국 친구들에게 부탁해 돈을 배분하고 송금했습니다. 그래서 송금하는 데까지 20여 일 걸렸어요.

문제는, 그 20여 일이 지나는 동안 시리아 상황이 엄청나게 많이 바뀐 거예요. [당초] 믿을 만한 사람을 통해서, 터키와의 국경 지역으로 나와서 물품 받을 사람들을 찾아 놨고 그 친구들이 국경에서 한 일주일 기다렸는데 [입금 문제 때문에] 결국 다시 돌아가라고 해야 했어요. 그런데 도착하던 날 폭격에 맞아서 국경에 왔던 분 3명 중 2명이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남은 1명과 다시 전달 경로를 잡아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터키 국경 검문소에서 트럭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어요. ‘몇몇 음식은 시리아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당초] 검문소에서 시리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식량 목록을 받았던 것인데, 20여일 동안 그 목록이 바뀐 거예요. 그래서 식량을 다시 공급업체에 돌려 보내고 새로 식량을 구하는 데 또 일주일 걸렸어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러시아 전투기가 검문소 근처를 폭격했어요. 결국 검문소가 폐쇄됐고, 준비한 식량이 상할까 봐 검문소에서 싸우기도 해 봤지만 사실 어쩔 수 없었어요. 러시아가 검문소 바로 앞을 폭격하고 있었거든요.

일주일 동안 트럭을 검문소 앞에 세워둔 채 기다리다가 4백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검문소로 이동했어요. 이동하는 데만 이틀 걸렸고, 거기서도 다시 폭격 때문에 2주가량 기다렸어요.

마냥 기다릴 수 없어서 트럭이 시리아로 들어가는 대신 시리아에서 작은 차량으로 국경까지 여러 번 오가며 물건을 가져가기로 했어요. 폭격 때문에 시리아에서는 큰 차량으로는 이동하기 어려워서 오토바이나 작은 차량으로 몇 바구니 받아서 돌아가고, 2~3일 뒤에 다시 하는 방식이었어요. 얼마 뒤에야 검문소가 공식적으로 열렸고 트럭이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1차 전달 때는 50일 넘게 걸렸어요.

‘헬프시리아’ 후원자들에게 보여 주려고 찍은 사진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시리아 안으로 들어가서 물품을 나눠 주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었지만, 인터넷이 없으니까 사진이 담긴 USB를 터키로 가져다 줘야 제가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갖고 오던 사람이 폭격에 맞아 죽었어요. 그래서 저는 물건이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암시장으로 팔려 나갔는지 한동안 확인할 수가 없었어요. 아주 불안했어요. 다행히 한 달 뒤에 남아 있던 사진 몇 장을 누가 보내 줘서 안심할 수 있었어요.

터키 국경 지역에서 시리아로 보낼 구호 물품을 검토 중인 압둘 와합. ⓒ사진 출처 헬프시리아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었네요.

그래서 [4월에] 2차 물품 전달 때는 한국 정부나 터키 정부의 협조나 도움을 기대하지 않았어요. 위험하지만 현금을 들고 터키로 이동했고, 국경 검문소에 가서 반입 가능한 식량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물품을 실은 트럭이 출발하기 전에 다시 확인하고(3일 만에 또 바뀌었을까 봐), 다행히 러시아가 폭격을 하고 있지 않아서 1주일 만에 무사히 물품을 전달할 수 있었어요. 후원자들을 위한 사진도 마지막에 한꺼번에 보내지 말고 매일매일 보내 달라고 했고요.

정부가 비행기로 구호 물품을 떨어뜨려줘도 모자랄 판에 시민들이 보내는 것도 그렇게 막다니, 참 어처구니가 없네요.

정부들이 너무 나쁘고 양심 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도, 정부군도 없는 지역의 난민 캠프인데요. … 그냥 죽으라는 것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유엔은 시리아 정부의 동업자입니다”

‘헬프시리아’는 시리아 정부가 일부 도시들을 봉쇄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캠페인도 하더군요. 어떤 활동이고 왜 필요한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시리아 정부의 [남서부 도시] 마다야 봉쇄에 반대하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아주 마음 아픈 일이었어요.

시리아 정부는 도시 봉쇄를 새로운 무기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지금 미국, 프랑스 등과 외교 관계가 다 단절됐는데, 도시를 봉쇄해서 사람들을 인질로 잡으면 그 국가들이 먼저 대화를 걸어올 테니 그때 협상용 카드로 사용하려는 것이죠. 이것이 첫째 목표라고 봐요.

시리아 정부의 둘째 목표는 마다야 등 봉쇄된 도시에 있는 사람들에게 협박과 복수를 하는 거예요. ‘정부를 지지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다’ 하고 말하는 거예요. 눈앞에서 자식이 굶어 죽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시리아 정부는 화학 무기나 전투기보다 더 잘 먹히는 무기로 봉쇄를 택한 것입니다.

셋째, 시리아 군대는 자신들이 봉쇄하는 도시에 식량을 비싸게 팔아 먹어요. 쌀 1킬로그램을 3백 달러[약 34만 원]에 팔아요. 비교적 부유했던 어떤 의사가 분유 네 통을 사려고 자기 차를 팔았다는 얘기도 있어요.

마다야 얘기를 꺼내시니까 하는 말이지만 … [잠시 말을 잇지 못함] … 정말이지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유엔이 너무 나빠요. 유엔이 시리아 정부군을 완전히 도와 주는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봉쇄된 도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여러 법이 있고, [2014년 이라크 쿠르드 지역의] 야지디처럼 비행기로 물건을 보내 줄 수도 있을 텐데 시리아 정부가 안 된다고 하니까 딱 안 하는 거예요. 유엔이 시리아 정부군 말을 1백 퍼센트 잘 듣습니다. 이게 유엔이 나쁜 첫째 이유입니다.

둘째 이유도 있어요. 마다야를 지원하려고 각종 구호단체들이 [국경이 가까운] 레바논에서 모임을 했어요. 식량을 아주 많이 모았어요. 그래서 마다야 봉쇄를 단 하루만 풀어 주면 1년치 식량을 전달하겠다고 유엔에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엔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헬프시리아’도 거기에 연락하고 돈도 보내려 했는데 유엔의 답은 이랬어요: ‘마다야로 가는 구호 물품은 모두 유엔을 거쳐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허락할 수 없습니다.’

많은 구호단체들이 유엔을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여러 번 겪었거든요. 다른 몇몇 단체들이 유엔에 식량 전달을 맡긴 적이 있는데, 유엔은 그걸 시리아 정부한테 주면서 ‘마다야 사람한테 전달하세요’라고 했던 거예요! 그럼 시리아 정부는 그 식량을 자기네 사람과 군인에게 나눠 주고요.

그래서 최근에 구호단체들은 ‘유엔은 마다야로 가는 길만 열어 달라’, ‘차량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러면 식량을 다 보낼 수 있다고 말했지만 유엔이 반대했어요. 그렇게 유엔이 ‘반대, 반대, 반대’ 해서 결국 이번에도 몇몇 단체들은 유엔을 통해서 보냈어요. 그런데 유엔은 이번에도 시리아 정부에 그걸 넘겼고, 결국 전체 식량의 10퍼센트만이 마다야에 전달됐어요. 그래서 우리 아랍인, 시리아인 처지에서 볼 때 유엔은 시리아 정부의 파트너이고 동업자입니다.

“시리아인들은 정부와 아이시스를 모두 반대합니다”

주류 언론은 오늘날 시리아에서 정부군에 반대하는 세력은 아이시스나 살라피스트(이슬람 교리를 보수적으로 해석는 살라피즘을 믿는 사람)뿐인 것처럼 말합니다. 실제 현지 상황은 어떻습니까?

뉴스를 보면 시리아인들이 아사드 정부만 반대하고 아이시스나 살라피스트를 어느 정도 지지한다는 식으로 그려지지만 그렇지 않아요. 시리아 정부군과 아이시스는 수염이 있고 없고의 차이만 있을 뿐 행동 방식이 똑같아요. 그래서 많은 시리아인들이 정부군도 아이시스도 반대해요.

살라피스트 중에서도 이상한 살라피스트가 있고 괜찮은 살라피스트가 있어요. 뉴스를 보면 ‘살라피스트는 모두 아이시스나 알카에다나 테러리스트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언론의 구실을 생각해 보면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9월에 며칠 동안 휴전이 있었습니다. 그때, 정말로 모든 시리아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서 시위를 했습니다. 마치 [2011년 3월] 시리아 혁명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말이에요. 사람들이 시위에서 외친 것도 같았어요: “시리아인은 모두 하나다”, “아이시스, 시리아 정부군, 알카에다는 테러리스트다.” 그러나 뉴스에 이런 소식은 안 나왔어요.

아직도 시리아인들은 신념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직 변질되지 않았습니다. 뉴스는 시리아인들이 전쟁 때문에 시리아 정부군 편이나 아이시스·알카에다 편으로 반반 나뉘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물론 아이시스나 알카에다를 지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소수에요.

“국제 사회 개입? 시리아인을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한 것”

2014년 9월 미국이 시리아 폭격을 시작한 뒤 이제는 러시아까지 가세했는데, 모두 이 폭격이 시리아인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리아인으로서 어떻게 보십니까? 아이시스의 위험이 줄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국제 사회가 아이시스를 돕고 있습니다. 아, 여기서 ‘국제 사회’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전문 정치인들을 뜻합니다.

먼저 폭격을 시작한 미국부터 얘기하죠. 미국이 폭격하면서 아이시스는 [한동안] 오히려 확장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아이시스 영토를 보면 2014년보다 2015년에 엄청나게 더 넓어졌어요. 제 고향이 락까인데, 아이시스 대원이 없는 민간인 지역에 폭탄이 떨어져서 “아이시스 건물 주변이 폭격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말까지 있었어요. “도둑이 숨기 제일 좋은 곳은 경찰서 옥상이다”라는 아랍 농담이 있는데, 딱 그 말대로였어요. 폭격은 효과가 없어요.

이후 러시아도 폭격을 시작했는데 3~4퍼센트만 아이시스를 폭격했고 나머지 96~97퍼센트는 [아이시스가 아닌] 시리아 반군을 폭격했어요. 러시아가 1년 동안 폭격하고 있는 곳이 알레포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알레포에는 아이시스가 없어요. 그런데 매일 미국, 러시아, 시리아 정부군 전투기들이 돌아가며 폭격해요. 아이시스의 ‘수도’는 [알레포에서 1백70킬로미터 떨어진] 락까인데 왜 알레포에다 폭격할까요? 이제 러시아는 아예 대놓고 ‘시리아 정부군 살리러 왔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렇듯 미국이 먼저 폭격했고, 뒤이어 러시아도 폭격하지만 둘 다 아이시스보다 시민들과 다른 반군을 더 많이 폭격합니다. 오히려 아이시스는 이런 상황을 이용합니다. “미국도, 유럽도, 러시아도 우리를 폭격하지만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용감하다!” 그래서 아이시스 대원들은 자신들이 전 세계와 맞서 싸운다는 생각에 자부심이 강해요.

이 국가들은 시리아 상황을 해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개입했습니다. 시리아 내전이 오래 지속되고 2013년에 아이시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어요. 처음부터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처럼 국민들을 도와 주거나, 그게 아니면 차라리 개입 안 했으면 좋았겠어요. 그랬으면 반군과 정부군끼리만 싸우다 해결됐을 거예요. 2012년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에게 거의 밀릴 뻔하기도 했어요.

국제 사회가 개입하기 전에는 상황이 매우 간단했어요. 반군과 시리아 정부군, 이렇게 두 팀만 싸우고 있고 나머지 시민 70퍼센트는 시위를 했어요. 그대로 놔뒀더라면, 시리아가 오늘날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봐요. 국제 사회는 시리아인을 위해서 개입한다고 계속 얘기하지만 거짓말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개입하는 것입니다.

“종교가 아니라 정치 문제입니다”

시리아 상황이 복잡한 것은 종교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그 부분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시리아에서 살 때 종교 얘기는 별로 듣지 못했어요. 친구가 수니파인지, 시아파인지, 기독교인지 알지 못했고 묻지도 않았어요. 시리아 혁명이 벌어지고도 2011~12년까지는 종교 얘기는 별로 없었고 정치 얘기뿐이었어요.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이렇게 두 편으로 갈렸을 뿐이고, 각각에는 모든 종교와 민족이 다 있어요.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고 돕는 사람 중에 수니파도 많아요. 아사드 정부에서도 최고위 인사들은 시아파(알라위파)지만, 그 아래 인사들은 기독교와 수니파예요. 양쪽 모두 수니파, 시아파, 기독교가 있어요. 종교가 아니라 정치 문제입니다.

‘국제 사회’는 시리아인들이 종교 때문에 시리아 정부를 싫어한다고 말하는데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학자와 정치인들은 종교 문제라고 말해요. 그게 아니라고 우리 시리아인들이 아무리 말해도 우리 말은 언론에 안 나와요.

또 아이시스가 생기자 언론은 아이시스 앞에 꼭 “수니파”라는 말은 붙여요. “수니파 무장단체 IS” 이렇게요. 그런데 저도 수니파지만 아이시스를 반대합니다. 시리아에서 아이시스를 반대하는 수니파는 아주 많아요.

언론이 하도 그러니까 이제는 다들 자신들의 정치 목표를 이루려고, 집단적 소속감을 만들려고 종교를 이용하는 상황입니다.

“외부세력은 모두 손을 떼야 합니다”

시리아에 평화가 정착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시리아 정부가 물러나야 합니다. 시리아 정부가 원인이잖아요. 2011년에는 시리아 정부군과 시민이라는 두 편만 있었는데, 시리아 정부군이 잘못해서 이런 상황이 온 것입니다. 큰 원인이 없어지면 그 밑에 있는 이상한 원인들은 다 없어질 것이라고 봅니다. 아이시스는 시리아 정부가 없어지면 자연히 없어질 것이라고 많은 시리아인들이 믿고 있습니다.

또, 시리아 정부군이 없어질 때까지 [외부 세력의] 폭격이 없어야 합니다. 미국도, 러시아도, 터키도, 그밖에 여러 나라가 개입하고 있는데, 외부세력들 모두 제3자처럼 비켜서서 지켜봐 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시리아 상황은 안정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 사회’ 정치인들은 거꾸로 얘기해요. 아이시스와 살라피스트를 먼저 없애고, 미국과 손잡지 않은 사람도 없애야, 그다음에 시리아 상황을 정리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단 청소를 할 때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합니까? 위에서부터 시작해서 내려오잖아요. 맨 위 계단인 시리아 정부가 없어져야 하고 그 독재자를 전범 재판소에 세워야 해요. 그다음에 아래 계단에 속하는 아이시스나, 반군 내에도 있는 이상한 사람들을 잡아서 책임을 물어야 해요. 지금은 완전히 거꾸로 하고 있어요.

“시리아에 온정적, 우호적인 사람들이 수천 배는 더 많아요”

한국에서 시리아 지원 활동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아주 많아요. 그런 기억들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 버티고 있어요. 이상한 뉴스만 듣고서 ‘시리아인=테러리스트’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있었다면 금방 지쳤을 거예요. 제가 쓰거나 한 얘기를 읽고서 밤늦게 제게 응원 문자를 보내는 분들도 있어요. “나는 한 명의 시민일 뿐이고 많은 것을 할 수 없지만 응원합니다”, “적지만 후원금 보냈습니다”라고요.

미국, 러시아, 유엔 모두 시리아인들의 고통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조승진

특히 아이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한번은 당진에 있는 ‘품앗이학교’[협동조합]에 일일교사로 초대받아 갔어요. 저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잘 모를 거라 생각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시리아 난민의 어려움을 많이 알고 있어서 놀랐어요.

또 한번은 강원도 평창고등학교에서 시리아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고 연락이 많이 왔어요. 그런데 마침 그때 제가 [물품 지원을 위해] 터키에 가 있어서 연락이 안 됐어요. 그랬는데도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해서 보내 주셨어요. 저랑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관심을 가져 주셔서 몹시 고마웠어요.

비슷한 학교들이 더 있어요. ‘헬프시리아’ 웹사이트에 모두 올리지는 못했는데, 이 신문을 통해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파주까지 와서 캠페인 활동을 해 준 보성여고 미술반 학생들에게서도, 광주의 지혜학교에서도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전에는 고려대학교에 강연을 갔는데 시리아 난민들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를 써 줬어요. 그거 아랍어로 번역해서 난민 캠프에 갈 때 전달하려고요.

학생이 많지 않은 작은 학교더라도 와합 씨를 초대하면 가시는 건가요?

네, 어디든 갑니다. 한 사람뿐이더라도 갑니다. 가서 강연하면서 순수한 아이들, 중학생, 고등학생을 많이 만날 수 있고, 거기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거든요.

또, 광주에 있는 광주인권평화재단과 까리따스 수녀원에서 강연했을 때 참가자들께서 눈물 흘리면서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응원해 주신 것도 큰 힘이 됐어요. 저 멀리 영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이 시리아를 돕고 싶다며 한국에 계신 어머니를 통해 제게 연락한 뒤 그 친구가 방학 때 입국해서 만난 적도 있어요.

이런 응원은 제가 힘들 때 특히 큰 힘이 돼요.

1월에 터키에 갔을 때, 정말 우울증 걸릴 뻔했어요. 얼마 안 되는 구호 물품을 보내기 위해서 50일 동안이나 고생해야 했고, 알레포는 계속 폭격당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SNS에 좀 삐딱한 마음으로 사진과 글을 올리며 ‘한국 뉴스에 시리아는 하나도 안 나온다’고 섭섭하다고 올렸어요. 이후, 현지 일이 바쁘고 인터넷도 없어서 잊고 있다가 3~4일 후 SNS에 들어갔는데, 무려 1천5백 명이 소식을 공유하고, 댓글로 응원하고, ‘적지만 후원금 보냅니다’, ‘제가 대신 사과합니다’ 하고 위로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한국 정부는 시리아 난민들에게 무관심하고 또 언론에는 부정적인 사람들만 크게 나오지만 제가 봤을 때는 부정적인 사람 1명당 마음 따뜻한 한국인이 2천~3천 명은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 덕분에 제가 이렇게 계속 활동할 수 있어요.

인터뷰 · 정리 김종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