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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직면한 주요 모순들

박근혜가 지금 겪고 있는 위기는 직접적으로는 사인(私人)에 불과한 최서원(최순실) 등이 공권력, 그것도 최고 공권력을 농단한 일에서 비롯했다. 측근 비리에 의한 부패 사건인 셈이다. 그런데 이 정치적 부패는 지배자들(자본가들과 국가관료들) 사이의 살벌한 암투를 통해 그 실체와 세부적 양상이 폭로됐다. 그리고 이 지배계급 내분은 직접적으로는 조선업·해운업 구조조정과 주요 경제정책들을 둘러싸고 일어난 것이다. 이는 또한 경제 위기 심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더 악화되는 가운데 개혁이 시도되면, 이윤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지배자들의 내부 갈등이 격화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에 고무된 노동자들의 저항도 박근혜의 위기 악화에 한몫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화물연대와 철도 노동자 등 공공·운수 노동자들의 저항은 다른 노동자들과 학생, 미취업 청년 등도 저항할 자신을 갖게 해 주고 있다. 요컨대 정권 부패, 지배자들 간의 쟁투, 경제 위기, 계급투쟁 등은 경제 위기 문제를 중심으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됐던 것이다. 아래 글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인 필자가 2013년 10월 3일 단체의 일부 회원 토론 자리에서 했던 연설인데, 위에 언급된 박근혜 정부의 모순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여, 녹취를 풀어 신문에 싣는다.

11월 5일 서울 도심에 20만 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노동과 세계〉

박근혜 정부의 앞날을 보려면 크게, 구조적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먼저 박근혜 정부의 태생적인 강점부터 얘기하겠다. 첫째, 지배계급이 단결해 그를 밀어 주며 선거를 치렀다. 과거에는 대선 때마다 지배자들 사이에 분열이 있었는데, 지난 대선에서는 완전히 단결해 박근혜를 밀어 주었다. 그래서 국정원도 상당히 자신감을 얻고 대선에 개입하는, 권한 남용이라는 부패 행위를 할 수 있었다. 만약에 지배자들이 첨예하게 분열했다면 국가 관료들이 자기들끼리 심각하게 싸우게 되니 함부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고 조심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경우는 지배계급과 우익이 총단결을 해 선거를 잘 치렀던 것이다.

박근혜의 둘째 강점은 박근혜가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일 뿐 아니라 정치적 적자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실제로 유신 체제의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기도 했다. 박근혜는 지배계급이 상당히 고마워했던 박정희 시대라는 정치적 상징 구실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배자들뿐 아니라 많은 후진적인 대중에게도 박정희 시대는 경제가 잘 나가던 시대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천대를 받고 수탈과 억압을 받았건만 그럼에도 워낙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해 보릿고개를 넘었다는 경험과 그 시대는 잘살았던 시대라는 향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정치적 상징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박근혜의 셋째 강점은 박근혜가 아주 강성 우파들로 정권의 핵심부를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군장성, 공안검사, 국정원장 출신자들로 자기 주위를 확고하게 에워쌀 수 있는 행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김기춘을 포함해 법무부장관 황교안, 국정원장 남재준 할 것 없이 강성 우파들이다. 이렇게 확고하게 강성 우파들로 주위를 에워쌀 수 있는 것은 운이 좋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대통령은 처음 집권했을 때 탕평책을 쓰는 시늉을 하면서 다양한 지방 출신자 등을 골고루 갖춘다는 시늉을 해야 하는데, 박근혜는 아예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구축했다.

넷째 강점은 박근혜의 강점이라기보다는 박근혜 적대자들의 약점이다. 어부지리로 박근혜가 얻은 득이다. 진보·좌파 진영과 노동계급 조직들이 분열을 겪었던 일이다. 아직까지 헤어나오고 있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진보당의 분열과 후속적인 분열들도 상당히 좌파 운동을 괴롭혀 왔다.

다섯째이자 마지막 강점은 박근혜가 복지 공약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강점인 동시에 박근혜의 아킬레스건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적의 강점이자 약점이 되는 것을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지적하며 그 부분을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의 복지 공약은 강점이었다. 왜냐하면 경제가 확장하던 박정희 시대를 표상하는 인물인 박근혜가 내세운 공약들이기에 상당히 신뢰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처럼 잘살 수 있겠지 하는 헛된 믿음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에게는 약점들이 있다. 치명적인 약점들이다. 첫째 약점은 태생적인 약점인 부패이다. 그리고 둘째 약점은 경제 상황과 공약 파기이다. 셋째 약점은 한반도 주변 정세가 커다란 딜레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넷째 약점은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다른 사회집단들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이 만만찮게 제기되고 그렇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약점

첫째 약점인 부패는 뇌물, 권한 남용, 비리, 불법 등을 포함하는 것이다. 썩어빠진 정권이라는 점이 처음부터 인사 실패를 겪으면서 드러났다. 그래서 임명되는 자들이 낙마하고 그중에서도 김용준은 완전히 압권이었다. 진정한 압권은 윤창중이기는 하다. 김용준은 헌법재판소장에서 낙마를 하고도 너무도 수치스럽게 변호사협회에 의해 변호사 개업도 정지당했다. 그럴 정도로 썩어빠진 인물을 중용하니, 윤창중은 말해서 뭐하나. 내 입이 더러워지니까 더 말하지 않겠다. 우선, 선거 때부터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다. 완전한 권한 남용이다. 그런 짓을 할 정도 아주, 그냥 썩어빠진 것이다. 박근혜는 1974년부터 5년 동안 박정희의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했다. 박정희가 얼마나 썩어빠진 자인가. 어마어마한 돈을 축재했고, 박근혜는 이런 짓들을 함께했던 것이다. 1979년에 박정희가 죽어 청와대에서 쫓겨날 때 박근혜는 전두환에게서 6억 원을 받았는데,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환산하는 방식에 따라 27억~2백40억 원가량이라고 한다. 이런 돈을 왜 받았나? 대통령 딸이라고 해서 받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나?(이에 더해 육영재단, 영남학원, 영남대 의료원, 한국문화재단도 받았다.) 이런 것 자체가 부패의 표상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까 박근혜는 부패 문제에 완전히 둔감하고 완벽한 사이코패스다.

그러다보니 박근혜는 국정원 대선 개입 관련해 저항에 직면하게 됐다. 그래서 국정원 규탄 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이 운동은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 정당성이 애초부터 결여돼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태생적으로 정통성이 없다는 점을 강력하게 알렸다. 그리고 운동의 여파로서 채동욱 퇴임 그리고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 사퇴 등으로 지배자들의 추악함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배자들 사이에서의 분열을 일으키기도 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운동의 성과는 벌써 어느 정도 있는 셈이다.

둘째 태생적 약점은 경제 상황과 공약 파기다. 한국 경제는 세계 경제의 일부이다. 한국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로부터, 또 그 안에서 얘기해야 한다. 세계 경제는 19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40년에 걸쳐 저성장을 겪고 있다. 물론 1980년대 중·후반, 1990년대 중·후반, 2000년대 중반에 제한된 회복이 있었지만, 이 시기 전체로 보면 선진 산업경제들의 이윤율이 떨어지고 있다. 평균적인 이윤율을 보면 1970년대 초반부터 장기적인 저하 추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저성장의 효과 하나가 바로 재정적자이고, 따라서 긴축의 필요성을 낳은 것이다. 왜 그런가? 저성장을 하니까 세금을 걷기가 어렵고, 또한 실업자가 많이 생기니까 복지 지출을 아무리 하지 않으려 해도 불가피하게 해야 한다.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청년들이나 얼마 전까지 노동했던 사람들이 노동시장에 다시 들어올 때까지 부양해 줘야 한다. 자본가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이들을 노동시장에서 착취할 때까지 목숨이 붙어 있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수는 적고 세출은 많으니 적자가 생기고, 그러다 보니 긴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도 벌써 긴축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설명했듯이, 경제 위기는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비롯했고 바로 여기에서 긴축 문제가 생겨났다. 긴축이 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일부 언론은 긴축이 “공기업의 방만 경영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는데 매우 나쁜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결국 어디로 연결되냐면,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연금·복지 제공을 너무 많이 했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즐겨 하는 주장이다. 이것은 곧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과 복지 파기를 정당화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긴축이 공기업의 방만 경영이나 비효율 경영 때문이라거나, 사람들의 씀씀이가 많아서라거나, 도덕적 해이 때문이라는 따위의 주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이윤율 저하 법칙(경향적일지라도)이 낳은 결과라는 점을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긴축이 내는 효과는 개혁주의 정당의 운신을 폭을 좁게 만든다. 이런[1970년대 중반 이후] 시기에 개혁주의 정당은 개혁을 제공한다는 약속으로 집권하지만 막상 집권하면 재원이 없어서 개혁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엄청난 모순에 부딪히게 된다. 개혁을 바라는 정서 때문에 집권했는데 개혁을 제공해 줄 수 없는 (모순)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도 비록 진보 개혁주의 정당은 아니지만 부르주아 개혁주의 정당이라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집권해도 굉장히 큰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민주당이 NGO들 및 개혁주의 정당들과 연립정부를 세워도 개혁을 제공할 여유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매우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긴축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과, 임금 등 노동조건을 공격하는 문제로도 연결된다. 그러면 결국 노동자들은 수세적인 처지에 있더라도 저항을 할 수밖에 없어진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부르주아 개혁주의자들은 제공할 것이 별로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더 왼쪽으로의 급진화가 부분적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개혁주의의 약점을 이용해 왼쪽뿐 아니라 오른쪽으로도 급진화가 일어난다. 우익들이 득세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프랑스의 국민전선, 헝가리의 요빅당 등 유럽의 파시스트 정당들이 이런 사례들이다. 전 세계에서 사회적 양극화의 효과로 정치적인 양극화도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한국에서도 매우 우파적인 정권이 등장한 것이다. 더 우파적인 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다. 이런 우익적 정권이 들어서든지 아니면 좀 더 개혁적인 정부가 들어서든지, 아무튼 정치적 양극화가 유력할 것이다. 이제는 아래로부터 투쟁 벌이지 않고 그저 얌전하게 선거만 치르는 것은 더 우파적인 정권을 들어서게 만들 것이다. 박근혜보다 더 우익이 있겠냐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제국주의 경쟁

셋째 약점으로 넘어가자. 둘째 약점으로 언급했던 경제 악화가 지정학적 경쟁 심화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각국 자본가들은 국민국가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특히 국제 무대에서는 국가와 자본이 밀접하게 공조를 취하게 된다. 바로 그런 상황이 제국주의 경쟁을 낳는 것이다. 동아시아로 보자면, 미국과 중국이 댜오위댜오-센카쿠와 같은 섬을 둘러싸고 벌이는 긴장이 그런 사례다. 일본은 거기에서 미국의 대리인 구실을 한다.

그런데 미·중 갈등은 한국 지배자들에게 딜레마를 안겨 준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미국이 여전히 세계 1위국이라는 점은 여전하다. 특히 군사적으로 미국은 나머지 강대국들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 G8 중에서 미국 밑에 있는 국가들을 다 합쳐도 미국의 군사력을 능가하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은 힘의 과시를 끊임없이 해 왔다. 소말리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 등을 통해 과시해 왔다. 그리고 또한 중국 경제가 언제까지 탄탄대로를 걸을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다. 그래서 남한 지배자들 중에는 미국으로부터의 자주성을 주장하는 자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중국과 소원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으로는 한국 자본가들이 미국보다 중국에 더 많이 수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중국 지배자들하고도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불필요하게 사이가 나빠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딜레마 때문에 노무현이 동아시아 “균형자” 구실을 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다가 미국에게 얻어맞고 찌그러졌다. 분명 박근혜는 정치·군사적·지정학적으로는 기본적으로 친미이다. 그러나 박근혜도 취임 직후 방미 전에 동북아시아 평화협력 계획이라는 것을 언급했다. 그리고 그것을 “서울 프로세스”라고 이름 붙였다. 미국 언론은 이를 공격했다. 마침내 박근혜는 오바마를 만나고 나서 ‘깨갱’ 했다. 그래서 미국과의 우호를 엄청 강조했다. 한국 지배계급은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밀접한 반면 지정학적으로는 전통적으로 미국·일본과 긴밀하다는 모순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 지배계급 내에서는 대외정책을 놓고 긴장이 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일부 지배자들은 정부가 드러내놓고 친미를 해 공연히 중국을 자극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마지막 약점으로는 노동운동의 도전 가능성이다. 노동운동 내에서 영향력이 큰, 매우 온건한 노동사회연구소는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되살아나고 조직률이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를 한 바 있다. 즉,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조직이 성장하고 있고 이것이 박근혜에게 부담이 될 것이다.

물론 급진화는 매우 더디고 불균등하기 때문에 과장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운동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노동운동이 정치적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박근혜에 맞선 가장 효과적인 저항 세력일 노동계급 운동을 강화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 3만여 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이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