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 47호 아닌디야 바타차리야의 ‘혁명으로 가는 다리’를 잘 읽었다. 이 기사가 다룬 쟁점들이 더욱 온전한 의미를 갖도록 몇 가지 단서를 달고자 한다.    
먼저, 룩셈부르크의 《대중 파업》에도 약점은 있다. 그녀는 보수적 노조관료가 대중 파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 물론 룩셈부르크는 노조관료주의의 위험성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대중 봉기가 일어나면 운동 자체가 심각한 해를 입지 않고서도 그러한 지도부가 제거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예컨대 1926년 영국 총파업의 경우, 파업의 모든 힘은 아래로부터 나왔지만 파업 자체는 공식 지도부가 계획하고 소집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바로 그 지도부에 의해 해산됐다. 관료적 총파업의 전형적 예다.
이것은 이 기사가 언급한 폴란드 연대노조 대중 파업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연대노조의 보수적인 노조 관료들은 혼란한 정국을 정돈하자는 정부의 주장에 수긍해 정부의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연대노조 안에서 노조관료주의의 출현과 가톨릭 민족주의의 득세는 정치적 공백상태를 낳았고, 결국 야루젤스키 장군 주도의 쿠데타가 그것을 메웠다. 
두번째, 관료적 대중 파업과 자발적인 대중 파업 사이에 만리장성 또한 없다는 점이다. 1926년 영국 총파업, 1984~85년 영국의 광부파업, 그리고 최근에는 1997년 1월 남한 총파업이 그러했다. 노조관료들 자신이 파업을 호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중 파업은 사회의 근본적 변혁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할 수 있지만 대중  파업이 그러한 변혁 자체는 아니다.
기사가 잘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대중 파업》은 왜 투쟁이 어떤 선거보다 더욱 중요한지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역사의 경험은 파업을 체제의 근본적 변혁으로 이끌 변혁 정치조직 또한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 준다. 
1905년의 교훈 중 지금의 남한 현실에서 제기하고 싶은 것은 상대적 후진국인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적 과제 해결 문제와 관련한 것이다.
멘셰비키는 후진국 러시아의 혁명은 이미 서구에서 진척된 진보적 요구들을 우선 성취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자유들은 부르주아들의 지지를 받아야만 성취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노동자들이 독립적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만류했다. 볼셰비키는 전제들에는 대체로 동의했으나 자유주의 부르주아가 그러한 목표를 향해 결코 일관되게 싸우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볼셰비키의 예견이 맞았다. 자유주의 부르주아는 처음에는 1905년의 10월 총파업을 지지했다. 그러나 그 파업 투쟁이 8시간 노동제 같은 노동자 계급의 요구들을 매우 빨리 확산시키자 부르주아는 급격히 우경화했다.
1905년의 경험은 작년 말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을 열우당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전개했던 운동 일부에 대한 역사적 경종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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