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약 1백만 명이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며 수도 서울의 거리를 가득 메웠다. 1987년 열띤 거리 항의와 대중 파업으로 당시 군부독재 정권한테서 민주적 기본권들을 쟁취한 이래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이번 집회와 행진은 민주노총 주최의 연례 전국노동자대회와 맞물려 벌어졌다. 집회와 행진에는 민주노총 조합원 15만 명이 참가해 박근혜의 퇴진과 함께 자기들 자신의 요구도 외쳤다.

민주노총 조합원들 외에도 수많은 대중이 여기에 합류해 청와대를 향해 함께 행진했다. 이날 행진에 참가한 사람들 가운데 다수는 이전까지 정치 운동에 참가한 경험이 없었을 것이다.

시위대는 결의문을 통해 여성차별 근절과 성소수자 권리도 요구했다. 그동안 박근혜의 시장 지향적 ‘개혁’으로 노동계급은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성소수자를 막론하고 생활수준이 저하되는 고통을 겪었다.

민주노총 노동자들이 이번 행진에 앞장선 것은 운동이 한 단계 전진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후속조처로서 민주노총 지도자들 측으로부터 명목 이상의 실질적인 파업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박근혜는 반격을 시작했다. 16일(수), 그동안 시간 벌기를 하던 박근혜는 검찰 수사를 거부했고, 오보를 이유로 채널A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은 대통령 지지율 5퍼센트는 곧 반등할 것이라고도 했다.

무엇보다 박근혜는 부산 LCT(이하 엘시티) 비리 수사를 지시했다. 집권당 내 반대파(친이명박계: 이하 친이계)와 제1야당 지도자를 겨냥하는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법무부 장관 김현웅에게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엘시티 비리 사건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했는데, 엘시티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사람 가운데는 친이계와 민주당 대표 문재인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문재인이 정말로 엘시티 비리에 연루됐는지는 알 수 없다. 심지어 친이계의 어느 누구가 연루됐는지도 아직 모른다. 한국의 사회·정치 구조 자체가 하도 부패해서 친이계의 인사들이 연루됐을 개연성은 꽤 크고, 심지어 문재인이 연루됐을 수도 있다.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민정수석비서를 했었다.

지금으로선 문재인 연루설이 사실로 드러날지 아닐지 전혀 알 수 없고 운동에 미칠 영향도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쨌든 박근혜는 ‘아님 말고’ 식일지라도 ‘혐의만으로 유죄’라는 분위기를 대중 속에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이 있다. ‘누구든 털어 먼지 안 나오는 놈 나와 봐’ 하고 정치적 부패의 주도자가 호전적으로 나오면, 그동안 박근혜 퇴진을 시늉에 불과한 수준으로 지지하거나 절반쯤만 지지하던 정치적 경쟁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자들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언제나 〈노동자 연대〉 신문은 박근혜 퇴진 운동이 자본주의적 야당 정치인들로부터 자주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단지 정치적 부패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민중, 특히 그 대다수인 노동계급의 투쟁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낙관하는 희망?

박근혜 퇴진 운동은 믿기 어려우리만큼 빠르게 솟아올랐다. 이는 그동안 박근혜에게서 박정희의 그림자를 보며(그림자였을 뿐인데도!) 두려움을 느끼고 숨죽여 살던 사람들이 권력층 속에서 박근혜가 급속히 사면초가 신세가 된 것을 보며 그에게 도전할 자신이 급속히 생겼기 때문이다. 

최근 야당 지도자들은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기로 뜻을 모았다. 퇴진과 함께 다른 이질적인 것들도 함께 요구해, 퇴진 주장을 희석시키고 있으므로, 야당들의 입장이 일관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집권 새누리당은 분열했다. 당내 반대파는 ‘질서 있는 퇴진’ 또는 탄핵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때때로 지배계급은 자기네 가운데 대중의 증오가 집중된 몇몇 개인들만을 제거함으로써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 든다.

지금 지배계급의 일부는 이런 해법을 모색하는 듯하다. 그러나 모든 지배자들이 여기에 동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지배자들은 불안정한 현 상황에서 대통령이 퇴진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특히, 주요 재벌들은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부패 추문에 연루돼 있으므로, 박근혜가 권력을 잃은 채 수사 대상이 되는 것이 자신들의 인신구속 사태까지 부를까 봐 두려워할 것이다.

게다가 박근혜가 그동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개악 등 각종 개악을 거의 차질 없이 수행하는 것을 이들은 반기고 있을 것이다.

한편 박근혜를 계속 그 자리에 두는 것은 공분만 키울 뿐이다. 지배자들로서는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지배자들의 이런 당혹스런 상황 덕분에 대중의 자신감도 솟구쳤다. 솟구친 속도만큼 낙관도 강력하다.

그러나 이런 운동은 우여곡절을 거듭하고 전진뿐 아니라 후퇴도 겪기 마련인데, 그런 상황들에서는 많은 참가자들이 당황할 수 있다.

특히, 기층 현장(작업장, 캠퍼스, 지역사회 등)에 좌파 조직들이 강력하게 존재하고, 노동자들이 평소에도 상당수 참가한 1987년과 비교해 보면 어떤 점이 시급히 보강돼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다음 계획은 19일과 26일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 행동을 벌이는 것이다. 그리고 30일에야 비로소 민주노총은 겨우 4시간짜리 ‘수요 파업’을 조직할 예정이다. 

물론 30일 전교조 교사들이 상경 투쟁을 하기로 한 것은 매우 좋다. 그러나 26일 국민행동 집회는 수도 집중이어야 하고, 민주노총은 되도록 일찍 실질적인 파업에 돌입하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애써야 한다.

1백만 시위가 벌어지기 전, 수천 건설노동자들이 무기한 파업을 벌여 유리한 양보안을 며칠 만에 얻어 냈다.

한국지엠(GM) 부평공장의 노동자 수백 명은 공장에서 도심지까지 행진하며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철도 노동자들은 퇴진 운동이 벌어지기 전부터 임금 삭감과 철도 민영화에 반대하는 파업을 벌이고 있다. 

퇴진 운동은 이 같은 노동자 계급투쟁에 접목되고 기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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