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당정 쇄신 소동

심화되는 정치 위기

김인식

 최근 민주당 ‘소장파’의원들의 당정 쇄신 요구 파동은 정권 내부의 권력 쟁투를 촉발했다. 그들은 “우리 당과 정부는 민심의 이반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많은 국민들이 우리의 국정 수행 능력과 개혁 의지에 대해 불신과 냉소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며, “획기적인 국정 개혁”을 요구했다.  

 민주당 ‘소장파’들의 당정 쇄신 촉구는 김대중 ‘개혁’이 처한 위기를 정확히 반영한다. 동시에, 가뜩이나 허약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김대중 정부를 더한층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위기에 대한 우파적 대응

 

 이제 많은 사람들은 김대중 ‘개혁’이 민주‘개혁’과 아무 관계도 없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김대중 ‘개혁’은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나는 흉물이 돼 버렸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 4월 10일 대우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야만적 진압, 개혁 입법 좌절, 새만금 간척 사업 강행 등은 국민의 다수가 김대중에게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한때 김대중 정권의 지지 기반 구실을 했던 시민단체들마저 ‘김대중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개혁’ 좌절에 대한 좌파측의 비판에 직면하자 김대중 정권은 더욱 우경화했다. 대우차 노동자들에 대한 잔인한 폭력 진압으로 수세에 몰리던 4월 16일, 김대중은 수구 정당인 자민련·민국당과의 ‘정책-선거’ 공조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것은 더한층의 대중적 불신을 샀다. 열흘 뒤 집권당은 4·26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사태 악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재·보선 참패 뒤 공동 여당 지도부들의 호화 내기 골프 스캔들은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신을 더욱 부채질했다.

 5월 10일 민주당 자체 여론 조사에서조차 민주당의 지지율은 급감했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의 이탈이 두드러졌다.

 김대중의 인기 추락은 날개가 없었다. 김대중의 지지율은 17퍼센트대로 떨어졌다. “대통령 인기가 15퍼센트 이하면 국정 수행이 불가능하다.”(민주당 원내총무 이상수.)

 위기가 심각해지자 집권당 내에서 ‘개혁 마무리’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5월 7일 민주당 긴급 최고위원 워크숍에서 한화갑은 “개혁이라는 용어는 그만 썼으면 좋겠다.”며 ‘개혁 추수론’을 주장했다. 민주당 대표 김중권은 “지금의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 바 크고 개혁의 장기화에 따른 피로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요인”이라며 ‘개혁 마무리’를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 안동수 인사 파동이 벌어졌다. ‘안동수 파동’은 김대중 정권을 뿌리부터 흔들어 놓았다. 자본가 계급은 김대중 정권의 국정 운영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가 위기에 봉착해 거의 마비 지경에 이르자, 사용자 단체인 경총은 정부가 노동자 투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사용자들은 정부가 노동자 투쟁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거듭거듭 주문했다. 그들은 “이러다가 나라가 망한다. 공권력 투입이 최선이다.”라며 김대중 정부를 압박했다. 김대중은 사용자 단체들의 요구에 결국 굴복했다. 6월 5일 새벽, 김대중 정부는 효성㈜ 울산 공장에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김대중 개혁의 태생적 한계

 

 김대중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집권한 김대중은 애초 과감한 개혁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개혁’이 실행되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매우 중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서 등장했다. 그는 한국 경제를 위기로부터 구출해 내라는 임무를 자기 계급으로부터 부여받았다.

 김대중의 ‘개혁’은 정치적 모순에 의존했다. 초기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김대중의 시장경제적 ‘개혁’을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와 혼동하곤 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김대중 ‘개혁’이 민주주의 없는 시장경제일 뿐임이 드러났다. 경제 구조를 개편해 한국 경제를 국제적 생산력 수준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혁’의 목표였다. 경쟁력 없는 기업은 도태하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시장 ‘개혁’은 경제를 살리지도, 경쟁력을 강화하지도 못했다. 경제는 여전히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대표 김중권은 “지금의 [위기] 상황은 경제적 어려움에 기인한 바 크”다고 시인했다.

 한국산업정책연구원과 영국 옥스퍼드 대학, 미국 모니터 컴퍼니가 공동으로 전 세계 64개국을 대상으로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22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꼴찌였다.

 경쟁력 없는 기업의 도태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대중 정부는 대우차·현대건설·하이닉스를 파산하도록 놔 둘 수 없었다. 이제 개개 나라는 극소수 거대 기업에 크게 의존한다. 거대 기업들 가운데 어느 한 기업의 몰락은 전체 경제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정부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놔 두기보다는 거대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할 수밖에 없다.

 한편, 김대중 ‘개혁’은 어느 계급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시장 ‘개혁’은 노동자들에게 뼈저린 고통을 강요하는 한편, 일부 기업주들에게도 고통을 안겨 준다. 그 때문에 이런저런 사회 계급·계층들이 김대중 ‘개혁’에 격렬하게 저항했다.

 최근 기업주 단체들이 기업 규제의 완화를 강력하게 요구하자, 김대중은 “4대 개혁 지속은 재계도 합의한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한 지 하루 만에 기업주들의 요구에 굴복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주 단체들의 요구대로 기업 출자 총액 예외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더 많은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김대중은 공장 폐쇄와 정리해고에 반발하는 노동자들에게는 ‘뜨거운’ 폭력을 휘둘렀다. 대우차와 효성㈜ 울산 공장 노동자 파업에 대한 폭력 진압은 가장 최근의 사례다. 이것은 즉각적인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렀다. 민주노총은 “심각한 노동 탄압을 자행하는 김대중 정권을 퇴진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 대책은 모든 사회 계급들의 저항에 부딪혔다. 각각의 이해 관계에 따라 사용자·의사·약사·노동자 모두가 정부의 재정 안정화 대책을 비난했다.

 기업주들과 땅 투기꾼들의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새만금 간척 사업 강행은 전북 어민들과 환경 단체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김대중은 자신의 전통적인 지지 세력을 배신하고 기업주들과 땅 투기꾼들을 편들었다.  

 

개혁파들의 반발

 

 위기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우파적 대응은 집권당 내 개혁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당내 개혁파들은 반격의 필요성을 느꼈다.

 안동수 인사 파동 다음 날인 5월 25일 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은 “청와대 쇄신론”을 제기했다. 5월 26일에는 재선 의원 3명이 당정 쇄신 요구에 가세했다. 28일에는 최고위원 정동영이 성명파에 합류했다. 당내 개혁파들은 인적 청산을 요구했다.

 그러자 당내 보수파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들은 “당을 분열시키는 행위”, “통치권자에 대한 도전”이라고 개혁파들을 비판했다.

 5월 31일 민주당 워크숍은 인적 청산의 범위, 국정 쇄신 방안, ‘소장파’ 의원 행동의 절차상 문제를 놓고 사분오열했다. 민주당은 이 날 워크숍에서 어떤 결론에도 도달하지 못해 결의문을 채택하지 못했다.

 한편, 개혁적 인물로 알려진 김민석은 이날 워크숍에서 동교동계 구파의 대변자 노릇을 자임했다. 그는 개혁파들에게 “사실상 쿠데타”니 “인사권자에 대한 도전”이니 하며 비난했다. 학생 운동 경력을 팔아 국회의원이 된 그는 이제 대중의 정서를 업신여기고 보잘것없는 개혁조차 거부하는 반개혁적 인물이 됐다.

 6월 1일 김대중은 청와대 비서실장 한광옥과 김중권을 재신임함으로써 사실상 보수파들의 손을 들어 줬다. 김대중은 인적 청산이 불러올지도 모를 아래로부터의 더 거대한 개혁 요구 압력을 두려워한 것이다.

 당내 개혁파들의 당정 쇄신 요구는 주되게 인적 청산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것은 민중이 바라는 민주 개혁 요구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것은 민주당이 가장 낮은 수준의 개혁 요구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우파 정당임을 입증해 준다.

 개혁파들의 성명은 민주당 지지도 하락에 잠시 제동을 거는 효과를 거뒀다. 〈내일신문〉 여론 조사에서는 김대중의 지지도가 4월에 비해 1.5퍼센트 올랐다.

 그러나, 개혁파들이 제기한 인사 쇄신 대상 범위는 그나마 매우 모호하다. 그들은 당내 우파 인물인 김중권을 쇄신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개혁파들은 세력화 추진을 놓고 이러저러하게 분열했다. 개혁파들의 리더격인 최고위원 정동영은 “뜻 관철 후 해산” 입장을 밝혔다. 반면, 김태홍과 임종석 등은 “존속 필요”를 주장했다. 김성호·정범구·이재정·박인상 등은 세력화를 반대했다.

 개혁파들의 리더는 정동영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떤 민주화 운동 경력도 없는 자다. MBC 앵커 출신인 정동영은 순전히 ‘개혁적’ 이미지만 있을 뿐 진정한 의미의 민주 개혁가라 할 수 없다. 이런 자가 느닷없이 개혁파의 리더로 부상한 것도 아이러니다. 그는 개혁파들의 세력화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세력화하자는 것이 절대 아니다.”며 꼬리를 내렸다.

 

 민주당 개혁파들이 일관되게 개혁을 밀어붙일 것이라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니 그들이 개혁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지금껏 역사적 경험이 보여 주듯이, 진정한 민주 개혁은 아래로부터의 ─ 노동자 ─ 투쟁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노동자  저항

 

 필연적으로 노동 계급의 노동 조건과 임금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김대중 ‘개혁’은 노동자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987년 이래 결정적 패배를 경험하지 않고 꾸준히 성장해 온 노동자 운동이 김대중 정부의 공격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 리는 만무했다. 김대중 ‘개혁’은 첫해부터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김대중은 집권 3년 내내 노동 계급의 도전과 저항에 시달려야 했다. 올해 3월 민주노총은 마침내 “김대중 퇴진”을 공식 요구했다.  

 한편, 김대중 개혁의 실패는 더 많은 민중을 김대중 반대자로 만들었다. 그들은 진정한 민주 개혁을 염원한다.

 김대중의 실패한 ‘위로부터의 개혁’은 집권당의 분열을 가속시키고 있다. 당내 개혁파들은 제한적이나마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분파들은 우파와의 타협을 강조한다.

 지금은 우리가 집권당의 분열을 이용해 공격에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