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서울시의 노동단체지원금 15억 원을 받아 미조직·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에 사용하는 일을 추진 중이다.

이 계획은 올해 6월 서울본부 운영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여러 운영위원과 집행부 일부의 반발에 부딪혔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20일에 열린 민주노총 18차 중집은 서울시 지원금 수령 사업을 중단하라는 올바른 결정을 했다.

민주노총 중집은 서울본부의 사업이 2001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사항을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2001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는 ‘정부와 지자체의 국고보조금을 받되, 건물, 토지 등의 부동산과 건물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관리유지비로 제한’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고보조금 요청 시 사업계획, 사업의 집행과 결산은 민주노총 중앙에 보고해 감사를 받고, 민주노총 중집이 승인한 항목만 신청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서울본부는 중집의 승인을 받기도 전에 이미 서울시와 지원금 협약을 맺고 15억 원 중 일부를 수령했을 뿐 아니라, 중집 결정 이후에도 이를 중단할 수 없다고 총연맹에 공문을 보냈다(10월 21일).

그러자 서울본부 운영위원 27명 중 과반인 14명은 “10월 21일자 서울본부의 공문은 운영위원들과 논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고 밝히고, 서울시 지원금 수령 사업을 중단하라는 “중집의 결정을 따르기로 결의”했다.(서울본부 운영위원회는 서울본부 임원과 각 산별노조의 서울지역 대표, 서울본부 산하 지구협의회 의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도 서울본부장은 서울시 지원금 수령 사업을 계속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독립성

서울본부가 노동조합의 고유한 사업을 서울시의 지원금으로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재정 독립성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는 돈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정부 재정 지원에 의존하게 되면,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심지어 서울시 지원금 15억 원은 서울본부 1년 예산을 훨씬 넘는 큰돈이다. 이처럼 큰돈을 받으면서 서울본부가 서울시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며 필요할 때 제대로 맞서 싸울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서울시에 직·간접으로 고용돼 서울시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이런 우려를 제기해 왔다.

정부 지원금을 받으면 사용 내역을 “지도·점검”한다는 명분 하에 노조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 개입이 따를 수도 있다. 가령, ‘2016년 서울지역 노동단체 지원사업 집행지침’에 따르면, 서울시는 서울본부에 지원금 사용 내역을 보고하게 하거나 직접 검사할 수 있고, “연 1회 이상 수시 지도·점검”을 할 수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정부가 ‘정부 정책 반대’를 이유로 지원금 지급 중단을 위협했고, ‘불법 시위단체에는 보조금 금지’ 지침을 내렸다. 이와 관련한 지자체 감사와 검찰 조사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서울시 역시 지원금 협약서에 ‘불법 시위 단체에 대한 보조금 중단’ 정부 지침을 포함시키려 했다. 한국노총이 올해 1월 노동개악과 관련한 노사정합의를 파기하자 고용노동부가 그동안 지급하던 지원금을 끊은 일도 있다. 한국노총은 사업비의 상당 부분을 국가 보조금에 의존하다 보니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할 때마다 지원금 중단 압박을 받아 왔다.

서울본부는 일부 지역본부와 산별노조들이 이미 정부·지자체 지원금 사업을 하고 있는데, 서울본부만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반발한다. 그러나 이미 원칙이 무너지기 시작했으니, 앞으로도 원칙을 무시하자는 주장을 “형평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노조의 재정 독립성 원칙에 비춰 보면 2001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결정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것은 당시 일부 산하 조직이 이미 정부 지원금을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오랜 논쟁 끝에 나온 절충안이었다. 이것은 무제한적 정부 지원금 수령에는 제동을 걸었지만, 재정의 큰 부분을 정부에 의존하는 것을 허용한 약점을 남겼다.

그 후 15년 동안 민주노총의 산별·지역별 상근 관료기구가 확대되고, 일부 지방정부에서는 민주당 정치인이 당선해 정책협약 등을 맺으면서 정부 지원금에 대한 경계심이 흐려지는 경향이 커져 왔다. 급기야 2011년에 당시 민주노총 김영훈 지도부는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을 위해 지원금을 더 늘려 받자는 안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안은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한국노총 내에서도 국고보조금 중단 사태 등을 겪으며 재정 자립의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다.

‘개혁적’ 지자체

일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해 정부 지원금을 받는 것은 괜찮다’고 여기는 듯하다. 서울본부가 15억 원 사용처로 밝힌 곳도 노동 상담이나 법률학교 같은 미조직·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비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러나 누구의 돈으로, 어떻게 조직화하느냐 또한 중요하다. 조직화에 필요한 재정은 정부가 아니라 조합원들과 피억압 민중의 투쟁 기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기존의 조직된 노조들이 잘 투쟁해 ‘노조 하면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모범을 보여 주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조건 개선을 위해 스스로 투쟁하도록 지원하고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 서울본부가 진정 강화해야 할 일일 것이다.

서울본부가 이토록 대규모의 지방정부 지원금을 적극 받으려 하는 배경에는 박원순 시장에 대한 기대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박원순 시장이 박근혜 정부의 악랄하고 불통적인 통치 스타일과 대비되고, 일부 개혁적 조처들을 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문제나 시립대 무상등록금 약속 철회 등에서 보듯, 박원순의 개혁에는 여러 한계가 있고, 특히 노동문제에서 모순적 행보를 걸어 왔다.

인력 감축을 동반한 서울지하철공사 통합, 서울시 공공기관에 퇴직금 누진제 폐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보면, 박원순 시장이 노조와의 협의를 거치고 중앙정부 정책을 약간 완화하기는 하지만 노동조건 후퇴 압박에 근본적으로 반기를 들지는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재정 긴축 압박을 받고 있는 박원순 시장은 더 많은 모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보면 박원순 시장은 “시의 권한 자체가 제한적”이라며 중앙정부가 정한 틀에 잘 도전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간섭과 권한이 걸림돌이 되기는 하지만, 이에 도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서울본부는 정치적 독립성을 가지고 박원순 시장에 맞서 투쟁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재정적 독립 없이는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기도 쉽지 않다.

서울본부는 서울시 지원금 15억 원 수령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