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퇴진 운동이 박근혜를 궁지로 몰았다. 한국 역사상 최대 규모인 1백90만 명이 참가한 11월 26일 시위 직후, 독살스럽기 그지없던 박근혜가 어깨 처진 모습으로 “물러나겠다”고 제 입으로 말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린 듯 후련하다.

물론 박근혜가 궁지에 몰려서도 발악하고 있으므로 정치적 결말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의회 백치증에 걸린 야당들이 박근혜 퇴진 문제를 의회 민주주의 틀 안으로 가져가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거리에서는 박근혜의 공범이자 공공의 적으로 낙인 찍힌 새누리당 비박계가 국회 내에서는 탄핵소추안 가/부결에 결정권(캐스팅 보트)을 쥐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박근혜는 숨 쉴 틈을 벌고 반격을 노리고 있다. 탄핵이라는 의회 민주주의적 방식이 오히려 박근혜 퇴진의 가능성을 작게 만든 것이다. 정의당은 종종 두 주류 야당의 기회주의를 비판하지만, 그 당도 근본에서는 의회 민주주의 전략을 지향한다. 정의당이 야3당 공조에 자박(自縛)한 까닭이다.

그동안 박근혜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코너로 몰아 댄 것은 거리의 퇴진 운동이었다. 야당이 아니라 퇴진 운동 때문에 박근혜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2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박근혜는 물러나기는커녕 악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답답함과 의문이 드는 시위자들이 많을 것이다. 박근혜를 쫓아내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야 할까? 거리에서 더한층 완강한 투쟁 방법을 사용해야 할까?

산업 잠재력

모든 거대한 운동이 그렇듯이, 현재 퇴진 운동도 사회적 구성으로 보자면 민중의 투쟁이다. 노동계급이 아직은 이 투쟁의 헤게모니를 쥐고 ‘국민의 지도자’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철도를 중심으로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이 투쟁 시작 전부터 파업을 벌인 덕분에 과거 많은 정치 투쟁들과 다르게 조직 노동자 운동이 퇴진 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는 점은 운동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퇴진 투쟁의 주된 방식은 토요일 거리 시위다.  

역사적으로 민중의 항의 운동은 지배자들과 벌인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770년대 미국 혁명, 1789년 프랑스 혁명, 1960∼70년대 국제적인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한국의 1987년 6월 항쟁, 1989년 중국 톈안먼 항쟁, 팔레스타인 인티파다 등이 그랬다. 2000년대 초반에는 1999년 시애틀에서 벌어진 WTO 회담 반대 시위를 비롯해 국제적으로 반신자유주의 항의 시위들이 있었다.

또, 지금도 여성 차별에 반대하는 운동, LGBT 해방을 위한 투쟁, 이주자 차별과 단속에 항의하는 운동,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운동 등 노동계급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저항 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모든 저항 운동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런 항의 운동과 시위들은 지배자들과 벌인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회적·정치적 전투의 승패는 그 운동들이 노동자들의 산업 잠재력을 이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노동계급의 자주적 활동을 사회 변화의 핵심으로 본다. 파업과 산업 투쟁만 일면적으로 편협하게 강조한다는 뜻이 아니다.  

노동자들은 거리의 시위대들이 지니지 못한 체제에 도전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은 사회적 생산의 기초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단 1초도 굴러가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운명은 노동계급의 정치적·경제적 행동에 달려 있다.  

폴란드 태생의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1919년 1월 살해당하기 직전에 한 유명한 말은 오늘날에도 진실이다. “자본주의의 사슬은 그것이 벼려진 곳[생산 분야]에서 끊어져야 한다.”

1987년의 경험은 정치적 항의 운동과 노동자 투쟁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좋은 사례다.

6월 항쟁은 군사독재의 억압에 반대하는 모든 피억압 민중이 군사독재에 맞서 일어선 민중항쟁이었다. 노동계급뿐 아니라 중간계급, 심지어 부르주아 일부도 동참했다. 개인 또는 시민으로 참가했던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느낀 민주주의와 해방감을 일터로 가지고 들어갔다. 전두환 정권이 항복 선언을 하자 노동자들이 사용자에 맞설 자신감을 얻었다. 군사독재가 양보한 틈을 비집고 노동자들이 7월 초부터 싸움에 돌입했다.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시작됐다.

1960년 4·19 혁명이 이듬해 박정희의 군부 쿠데타라는 반동으로 분쇄된 것과 달리, 1987년은 노동자 대투쟁이 전개되면서 6·29 항복 선언을 굳힐 수 있었다. 6월에 군대를 출동시키려다 포기한 전두환은 7~9월 노동자 투쟁 물결을 보면서 반동을 포기했다.

노동자 투쟁만이 국가 권력이 민주적 권리를 억압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억압의 이유가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서이므로, 착취에 타격을 가해 억압자들을 마비시킬 수 있는 세력은 노동계급인 것이다.

이 교훈을 현재 퇴진 운동에 적용하면, 조직 노동자들은 박근혜뿐 아니라 자본가의 착취와도 맞서 싸워야 한다. 파업이 효과적인 투쟁 수단일 수 있다. 파업은 광범한 노동계급을 동원해 행동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또, 노동자들은 파업하면서 집단적 힘을 느끼고 매우 열린 자세로 그동안 자신들을 분열시킨 관념들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아주 작은 파업들에서도 이런 일이 소규모로 나타난다.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파업하면 더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요컨대, 자본주의 체제의 심장부를 강타하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도전이야말로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힘을 부여한다. 그래서 거리 전투는 중요한 투쟁 방법이지만 유일한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과 이를 통한 인류의 해방 프로젝트에서 한 계기이다.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투쟁의 핵심 동력을 이해하며 노동자들이 그 힘을 사용할 수 있게 할 방법을 발견해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의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지·지원하는 게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이 다른 노동현장의 투쟁을 고무할 수 있도록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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