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일 더불어민주당은 이튿날 탄핵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공언했다. 박근혜 대통령 권한을 정지시켜 민심의 명령을 따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대표 추미애가 그날 오전 김무성을 만나 모종의 협상을 시도한 것이 알려지며 허세임이 드러났다. 알려진 정보를 종합하면, 추미애는 ‘1월 말 퇴진 약속’ 방안과 ‘탄핵 가결 협조’ 두 방안을 놓고 김무성과 거래를 시도한 듯하다.

국민의당은 부결 우려를 이유로 1일 발의를 반대해 분노한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

두 야당 모두 탄핵 부결 가능성에 움츠러들어, 용두사미 꼴이 됐다. 부결되면, 자신들이 운동을 통제하며 국회 안으로 수렴할 수단이 약화된다는 걱정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은 운동 초기부터 박근혜 즉각 퇴진 상황을 꺼렸다.

민주당이 탄핵 표결 강행에 정치적 부담(부결 가능성, 의회 내 협상 구조 파탄 가능성 등)을 느낀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박근혜에게 ‘4월 말 퇴진 6월 대선’을 약속해 줄 것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이뤄지면 탄핵 표결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분이 일시 봉합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이는 야당들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물론 일시적 봉합이 될 공산이 크다. 민중의 압력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실 새누리당도 탄핵안 부결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 보수 언론에 “요즘 토요일이 가장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가결도, 부결도 부담스러우니 여론 반전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자는 것이다. 비박계도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

결국 여론의 압력에 밀린 야 3당 원내대표들은 ‘2일 발의, 9일 무조건 표결’ 일정에 합의했다. 

12월 1~2일 국회 탄핵 해프닝은 지금 정국의 기본 대립 구도가 ‘여 vs 야’가 아니라 ‘박근혜 퇴진 운동 vs 버티는 박근혜’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대립을 국회 협상으로 조정(중재)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퇴진 운동 안에서 온건파들이 난데없이 운동의 타깃을 국회로(즉, 새누리당으로) 맞추고자 하는 것은 틀린 상황 분석이다. 다수가 미조직 노동계급 배경으로 보이는 백수십만 명이 광화문으로 모여 청와대로 행진하는 것은 단지 주최측의 유도라기보다는 이 싸움의 적이 박근혜임을 계급적 직관으로 알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들도 나오지 않는 주말 국회 앞으로 투쟁의 무대를 옮기는 것은 운동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다. 민중의 항의 운동을 국회 보조 수단쯤으로 격하하는 일일 뿐이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3일 집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늦게까지 최대한 청와대 앞까지 행진하도록 조직해야 한다.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다.

박근혜의 꼼수는 대중의 부아를 돋울 뿐

박근혜가 위기 때마다 즐겨 이용한 방법이 집토끼, 즉 우파 결집에 의존하는 것이었다. 탄핵안 발의 논란이 있던 12월 1일 대구 서문시장을 기습 방문한 것도 마찬가지다. 물론 박근혜로서는 결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세월호 막말 목사를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앉힌 것도 그런 경우다.

임기 단축을 포함해 “진퇴”를 국회 절차에 맡기겠다고 한 것도 새누리당 비박계에게 당 잔류의 명분을 주려는 것이다. 어떻게든 뭉쳐서 같이 사는 방안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4월 총선 때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고 서슬퍼렇게 오만을 부리던 것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진 태도다. 사면초가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꼼수다. 인생 자체가 거의 사기임이 드러난 박근혜의 중도 퇴진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도 거의 없다. 따라서 국회가 박근혜의 덫에 걸렸다느니 하면서 그 효과를 과장하는 것은 야당의 자책골 책임을 흐리는 것이다. 야당들의 딜레마는 대중의 즉각 퇴진 요구를 국회 탄핵 절차로 가져간 것이다.

오히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정권을 크게 타격해 검찰의 이반 등 국가기구를 분열시킨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근혜는 11월 29일 담화에서도 자기는 잘못이 없고, 별도로 해명할 기회를 갖겠다고 얘기했다. 특검을 핑계로 검찰 수사를 거부한 박근혜가 특검 수사도 거부할 명분을 쌓는 것이다. 이미 특검 출범으로 검찰 수사가 사실상 중단되고, 정작 특검은 준비 기간만 20일이나 돼 박근혜는 한 달 이상 수사를 피하고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었다.

특검에 누가 임명되고 포함되는지는 영향이 없지는 않지만 부차적이다. 시간과 인력이 제한된 특검으로는 뭘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정치적 세력균형이 누구에게로 기우느냐가 결정적 변수다.

야당의 탄핵 딜레마와 연동되지 말고 독자적으로 투쟁을

야 3당이 박근혜 탄핵을 추진한 명분은 박근혜의 대통령 권한을 즉시 중지시키는 것이 거리에서 표출된 민심을 국회가 받아안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탄핵 자체가 성난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말 집회 현장에서는 물론이고, 지난주 〈중앙일보〉 조사, 이번 주 박근혜 담화 이후 〈노컷뉴스〉와 등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도 “즉시 퇴진”을 지지하는 사람이 “탄핵”보다 몇 배 더 많았다.

지금 국회 세력관계에서 탄핵을 하려면 박근혜와 공범인 새누리당 일부와 협상을 해야 한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 설령 가결돼도 헌법재판소 판결을 지루하게 기다려야 하는 문제도 크다.

가령 탄핵소추안 가결 시 헌법재판소에서 검사(소추위원) 구실을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성동(새누리당)은 탄핵 사유에서 세월호 참사 등의 제외를 요구했다. 국민의당도 이런 주장에 동조했는데, 헌재가 심사할 내용을 최대한 줄여야 탄핵심판 결과가 신속히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커서 2일 발의된 탄핵소추안에는 뇌물죄와 세월호 참사 등이 포함됐다. 그럼에도 이런 안을 가결시키려면 비박계와 손을 잡아야 한다.

힘은 어디로부터 나오나?

그런 상황에서 각 정당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대선 시기를 따지면서 퇴진 시점을 거래하다 이탈할 가능성이 언제든 있다. 운동이 수그러들 조짐만 보여도 순식간에 자신들만의 이익에 운동을 종속시키려 시도할 것이다.

따라서 운동 내 일부 지도자들이 탄핵 가결을 가장 중요한 문제인 양 여기는 것은 운동보다 국회적 해결책을 중시하는 것이다. 가결을 내세워 배신적 타협을 정당화해 줄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애시당초 새누리당 안에서조차 국회 탄핵 동조가 나오고,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말로는 ‘임기 단축’에 동의하게 된 것도 박근혜 퇴진 운동의 기세 때문이었다.

그 점에서 민주노총의 11월 30일 박근혜 퇴진 하루 파업 집회는 의미가 있었다. 11월 26일 1백90만 집회의 기세와 12월 3일 집회를 잇는 징검다리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비록 경제적 효과는 내지 못했어도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박근혜 퇴진 파업을 한 것은 정치적 상징이란 면에서 좋은 일이다. 또한 이 판국에도 노동개악 시도가 멈추지 않고 있으니, 노동자 운동 측으로서도 위력 과시가 필요했다. 그런데 현대차와 기아차 등 핵심 사업장들에서 노조 지도자들이 4시간 파업조차 꺼리며 매우 소극적으로 파업에 임한 것은 아쉽다.

국회가 아니라 거리와 작업장에서 투쟁의 힘을 극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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