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박근혜 탄핵 결정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다. 대중 투쟁에 떠밀려 국회가 탄핵소추한 인물의 거취가, 선출되지 않은 재판관 9명의 손에서 결정되게 생겼다.

헌재 재판관 9인은 대통령 추천 3인, 대법원장 추천 3인, 국회 추천 3인(여당 1인, 야당 1인, 여야 합의 1인)으로 구성된다. 2008년 이후 새누리당 정권 9년, 새누리당 과반 국회 8년이었다. 대법원장(임기 6년)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헌재 재판관의 과반수가 박근혜 코드일 것임은 ‘안 봐도 비디오’인 것이다. 주류 언론들도 재판관 9명 중 6~8명을 보수 성향으로 분류한다.

헌재는 그동안 계급 차별적이고 노동계급 운동에 적대적인 결정을 내렸다. 박근혜 정부에서만도 동성애 차별 군형법 합헌, 전교조 법외노조 합헌, 통진당 해산, 물대포 직사 합헌 등을 결정했다.

△지난해 5월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뒷받침한 헌재 판결 규탄하는 전교조 조합원들. ⓒ이미진

헌재 소장 박한철은 2011년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추천으로 헌재 재판관이 됐고, 박근혜가 헌재 소장으로 임명한 자다. 그는 대검찰청 공안부장 시절인 2008년에 촛불 집회 참가자를 무려 1천2백여 명이나 기소했다. 미네르바 구속 수사도 지휘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박한철이 김기춘·황교안과 이신전심으로 통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 이미 2014년 진보당 해산 판결 때 김기춘과 박한철이 사전에 교감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전 민정수석 김영한의 비망록이 폭로됐다. 군형법상 동성애 처벌 조항에는 두 번이나 합헌 의견을 냈다. 경찰의 서울광장 차벽 봉쇄에도, 삼성-안기부 X파일 사건 때 노회찬 의원의 유죄 판결 근거가 된 통신비밀보호법에도 합헌 의견을 냈다.

새누리당이 추천한 안창호는 대검 공안부 공안기획관 출신으로 2006년 국가보안법 탄압 사건인 일심회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위헌 판결이 난 간통죄에 합헌 의견을 냈다. 그는 박근혜가 임명한 조용호와 함께 진보당 해산 당시 “대역(大逆)행위로서 이에 대해서는 불사(不赦)의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보충 의견까지 냈다.

박근혜가 임명한 재판관 서기석은 “삼성 장학생”으로 불린다. 이번 박근혜 게이트에서는 뇌물죄 여부가 중요하고, 구체적으로 이재용의 후계 구도 완성을 위해 국민연금이 동원된 것을 파헤치는 게 검찰 수사에서도 쟁점이었다. 그런데 서기석이 이런 것들을 엄중히 다룰지 매우 미심쩍다.

여야 합의 추천으로 임명된 강일원은 진보당 해산과 물대포 직사에 합헌 의견을 냈다.

재판관의 면면도 문제지만, 헌재가 탄핵심판을 법률 위반 여부를 따지는 법리 논쟁으로도 몰고 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탄핵심판이 특검 수사 완료 뒤로 미뤄져 박근혜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최악의 상황조차 배제할 수 없다.

퇴진 운동이 집권당 내부를 분열시켜 국회 내 탄핵을 가결시킨 위력을 헌재가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워낙 반동적인 기구여서 결말을 안심해서도 안 된다.

통치 규칙

근본으로 보면, 헌법 자체가 지배자들이 약속한 국가 운영(통치) 규칙이다. 그래서 헌재는 기본적으로 체제 안정을 추구하는 보수적 성향이 짙다.

      재판관(임명권자)
선고일 사건 헌재
판결
박한철
(박근혜)
이정미
(이용훈)
김이수
(국회(야당))
이진성
(양승태)
김창종
(양승태)
안창호
(국회(여당))
강일원
(국회(여야))
서기석
(박근혜)
조용호
(박근혜)
2011.8.30 삼성-안기부 X파일 사건에서 노회찬 의원을 유죄 판결한 통신비밀보호법의 위헌 여부 합헌 X X              
2012.8.23 낙태 처벌(자기 낙태죄) 조항 위헌 여부 합헌 X X              
2014.6.26 물포 직사 행위의 위헌 여부 각하 X 위헌 위헌 X X X X 위헌 X
2014.12.19 통합진보당 해산 해산 X X 반대 X X X X X X
2015.5.28 전교조 법외노조 근거가 된 교원노조법 위헌 여부 합헌 X X 위헌 X X X X X X
2016.7.28 군형법 동성애 처벌 조항 위헌 여부 합헌 X X 위헌 위헌 X X 위헌 X 위헌

헌법재판소의 최근 보수적 판결 내역

※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임기가 모두 동일하지 않아서 결원이 발생하면 충원하는 방식이라서 임명되기 전 판결은 표기 안 함
※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이 3인, 국회가 3인, 대법원장이 3인을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용훈·양승태는 당시 대법원장.

헌재는 사실상 같은 사안을 정치 상황에 따라 달리 판단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990년 민자당(새누리당의 전신)이 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야당은 이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헌재에 냈다. 그런데 헌재는 시간을 질질 끌다가 1995년에야 전원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1996년 말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안기부법은 절차상 위법하다고 결정했다. 당시 민주노총 파업으로 궁지에 몰린 정권의 처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정작 날치기 통과된 법안이 무효라는 헌재 판결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 절차상 위법하다고 판결한 1996년의 노동법·안기부법은 말할 것도 없고, 2008년 한미FTA 비준안, 2009년 미디어악법 등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 법들이 지배계급의 안정적 통치에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헌재는 종합부동산세나 토지공개념 정책 같은 매우 온건한 개혁 정책들조차 위헌·헌법불합치 판결로 무력화시켰다. 부자들의 사유재산권을 일부 침해하는 것조차 용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를 손 놓고 기다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박근혜가 하루라도 더 청와대에 앉아 있는 것이 싫다. 탄핵심판까지 오게 된 것 자체가 결정적으로 지난 한 달 이상 지속된 박근혜 퇴진 시위 덕분이었다. 박근혜 즉각 퇴진을 위한 대중 투쟁이 계속돼야 하는 까닭이다.

 

꾀죄죄한 헌재 역사

김문성

탄핵소추가 압도적으로 가결돼서 헌법재판소가 꼼수를 부리기는 덜 쉬워졌다. 지금의 탄핵소추가 단지 국회와 행정부 사이의 대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핵심 대결은 정권과 민중의 대결이고, 아래로부터의 힘을 국회가 그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운동을 여기서 멈추자는 압력이 위로부터 생길 것이므로 헌재를 경계해야 할 이유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헌법재판소는 1987년 개헌으로 1988년에 신설된 국가기관이다. 명목은 독재 권력의 헌정 유린을 예방하고 국가기관 간 견제를 더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헌법의 성격 자체가 지배계급 내부에 일종의 통치 질서를 명문화한 것이다. 그래서 헌재는 국가기관 간 권한쟁의심판, 국회가 제정한 법률의 위헌법률심판, 국가 고위직 인물에 대한 탄핵심판을 주 기능으로 한다.

이는 헌재의 핵심 기능이 지배계급 내 기존 질서 합의를 유지하는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구실을 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개인적 인권 개선에는 드물게 괜찮은 판결들이 나왔어도, 국가보안법이나 노동문제, 부자들의 사유재산권 문제에서는 일관되게 보수적 입장을 유지해 왔다.

게다가 헌재는 사법부 내에서조차 후발 기관으로서 탄생 초기부터 입지가 취약했다. 사법부의 중추는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법원 체계로 구축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더더욱 헌재는 민감한 현안에 뒷북을 치거나 정치 풍향계에 좌우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판결 내용이 행정부나 국회, 검찰로 유출되는 일은 초기부터 다반사였다. 여기에는 9명 헌재 재판관 중 3명을 대법원장이 임명하고, 헌재 재판관이 기존의 법관이나 검찰 출신자 들에서 충원되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헌재가 역사와 구성에서 기존 사법부의 일부로 탄생했다는 것은 한국 사법부의 추악한 역사와 전혀 단절된 존재가 아님을 뜻한다. 한국 사법부는 독재 정권에 부역해 온 역사로 점철돼 있다. 온갖 조작 증거와 고문으로 만들어진 간첩단, 이적단체 사건에서 사법부는 철저히 정권(안기부, 검찰 등)의 지침대로 판결해 왔다.

여기에는 조봉암 사형, 인민혁명당 사형, 강기훈 유서 대필 유죄 사건, 숱한 민간인 간첩단 사건 등이 모두 사법부와 정권의 유착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1975년의 인민혁명당 재판은 법원 판결 전에 이미 사형 집행 지시가 떨어지는 등 짜고 치는 재판에 사법부가 부역한 전형적 판결이었다. 이는 기소·수사와 판결을 분리시킨 근대 사법 원리를 부정한 것으로 국제법학자 협회가 이 사건 피해자들의 사형집행일을 ‘사법사 암흑의 날’로 선언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최근에서야 이 사건들 상당수가 재심으로 무죄 판결이 났지만, 사법부 차원의 과거 청산과 공식 사과는 없다.

인혁당 사건, 강기훈 사건 등에는 공안검사와 공작 정치의 대부 김기춘이 연루돼 있다.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을 거치며 이런 구조가 온존하는 데 기여해 온 인물이다. 박근혜가 그를 중용한 것은 초록이 동색인 탓이다.(노무현 탄핵소추 당시 소추위원을 맡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바로 김기춘이었다.)

따라서 지금 박근혜 퇴진 운동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후에도 온존해 온 한국 국가의 어두운 관행들도 심판대에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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