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국회에서 탄핵당함에 따라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 내 온건파들은 12월 10일 집회에서 “국민의 승리”를 일방으로 선언하고 헌법재판소(헌재) 심판 때까지 거리 항의 시위를 청산하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박근혜 자신은 6일 새누리당의 대표·원내대표인 이정현·정진석과 회담한 자리에서 헌재의 탄핵 심판(심리와 재판)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도록 투쟁할 것임을 암시했다. “탄핵소추 절차를 밟아 가결되더라도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가 돼 있다.” “탄핵이 가결되면 받아들여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 “당에서 이런 입장을 생각해서 협조해 주길 바란다.”

△가장 큰 적폐인 박근혜가 청와대에 남아 있는 한, 거리를 떠나서는 안 된다. ⓒ사진공동취재단

그 일주일 전인 11월 29일 박근혜는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이를 음성 분석 전문가 조동욱 충북도립대 정보통신과학과 교수가 분석했는데, 그는 박근혜의 어조를 고스톱에 비유해 이렇게 말했다. “패 한 번 돌려야겠다는 상당한 의지가 실려 있다.”

상대가 싸우겠다는데 우리가 거리에서 물러나서는 안 될 것이다. 지금 박근혜 퇴진 운동은 크게 두 가지 전투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진보·좌파 진영이 주도하는 거리 항의 투쟁이고, 다른 하나는 주류 야당들이 주도(하고 사회민주주의 정의당이 지지)하는 제도권 책략이다.

둘은 박근혜 퇴진이라는 당면 목표를 공유하지만, 그 목표를 이룰 수단을 달리한다. 하나는 거리(그리고 노동자연대 등 좌파의 경우 작업장 파업도)이고, 다른 하나는 의회와 헌법재판소다.

두 수단은 ‘경쟁’과 ‘협력’의 역설적 관계인데, 일반으로 “민중의 힘과 항의가 의회 책략보다 더 효과적”이다. 특히, 민중이 동원돼 민중의 힘이 가동되고 있는 “현재의 맥락에서[는] 대중 직접행동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 “민중의 힘이야말로 박근혜 퇴진과 퇴진 ‘이후’를 이어 줄 고리”다(〈노동자 연대〉 신문 188호 사설 ‘이렇게 생각한다’).

민주주의 혁명?

물론 지금 민중(시민)의 힘은 전혀 혁명적 수위에 육박하지 않았다. 국가 형태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라 군사독재나 파시즘 또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국가인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혁명을 전망할 수도 있다. 1989년 동유럽에서 스탈린주의 국가 기구를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로 변혁한 민중 혁명이 민주주의 혁명의 사례였고, 또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 등 아랍 세계를 뒤흔들었던 민중 혁명도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국가 형태는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이다. 비록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등 불완전한 요소가 엄존하지만 말이다.

국가 형태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인데도 민주주의 혁명을 일정에 올리는 것은 실천에서는 개혁주의로 나타난다. 비록 좌파적인 개혁주의일지라도 말이다. 좌파적인 개혁주의는 주류 개혁주의와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하나는 자본주의를 개혁해 (‘인간다운’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로 나아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규모 거리 투쟁 전술을 (극도로 아끼지 않고) 기꺼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운운하기 전에 민주주의 혁명부터 완수해야 한다는 2단계혁명론을 고수해 왔다. 그리고 민주변혁 단계에서 그들의 실천은 좌파적 개혁주의 노선을 따랐다. 그래서 자민통계는 거의 모든 결정적 정국에서 참여연대의 좌파적 버전 비슷한 입장을 취해 왔다.

가령 자민통계는 2008년 6월 10일 1백만 촛불 시위 직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단일 쟁점 특권화를 폐기하고 이제 이명박 퇴진으로 나아가자고 한 좌파 측과 강경파 시위대의 요구를 전면 수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중심을 못 잡았다.”(정대연)

자민통계는 지금의 박근혜 퇴진 운동 안에서도 끊임없이 운동을 민주당과의 공조 속에 자리 잡게 하고자 참여연대의 왼쪽에서 그와 함께 애쓰고 있다. 특히, 퇴진행동이 민주당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4년부터 집권해 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민족회의(이하 ANC) 정부의 사례에서도 스탈린주의의 노선이 잘 드러난다. ANC의 핵심은 남아공공산당인데, 공산당은 심지어 ANC 정부의 신자유주의(특히 민영화) 정책을 지지해 왔다.

어떤 계급이 이끄는 ‘민중’ 혁명?

한국에서 혁명이 의제에 오른다면 그 동력은 계급을 초월한 민중 혁명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이끄는 민중 혁명, 즉 노동자 혁명일 것이다. 선진 산업국의 일원이 된 한국에서 민중의 대부분은 노동계급이다.

노동자가 아닌 다른 민중(노동계급에 속하지 않는 빈민 부분이나, 농촌의 중간계급인 농민)이 ‘혁명적’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손 쳐도 어디까지나 정치적 헤게모니(지도권)는 노동계급에 있을 수밖에 없다. 빈민이나 농민은 존재 조건상 자본주의를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노동계급은 자체의 고유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다. 철도 노동자들이 부분적 파업 행동을 했고,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이 유리한 정세를 이용해 파업이나 다른 형태의 쟁의 행위를 한 적이 있지만 전혀 일반적이지 못했다. 노동계급의 자체 활동이 없는데도 노동자 혁명에 대해 얘기할 수는 없다.

공장 점거 운동까지 수반된 1936년 프랑스 정국도 혁명적 상황으로 규정되진 않는다. 1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1968년 5월도 엄밀히 말해 혁명은 아니었다.

혁명적 상황이 아니라면 그 많은 적폐들은?

즉각 퇴진 시위대의 대부분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박근혜가 표상하는 온갖 적폐(쌓이고 쌓인 폐단)도 사라지길 원할 것이다. 그들은 단지 박근혜-최순실 부패 스캔들에만 부아가 치밀어 거리로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최 부패 추문은 단지 운동이 분출한 계기일 뿐이다. 오직 온건하기 이를 데 없는 개혁주의자들만이 박-최 부패·비리 단죄로 만족할 것이다.

박근혜 탄핵과 함께 퇴진 운동이 적폐 일소를 위한 주류 야당 압박 위주의 전술로 전환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은 박근혜 탄핵을 계기로 거리 투쟁을 정리하길 원하는 자들의 구상과 일치한다.

박근혜의 존재(정치적 생존) 자체가 적폐의 일부분이다. 그것도 가장 큰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가 청와대에 남아 온갖 공작을 꾸미는데도 즉각 퇴진을 위한 거리 투쟁 없이 그저 개혁입법을 통한 적폐 일소에 힘쓰자는 심상정 의원의 주장은 지지할 수 없다.

그렇다고 혁명적이거나 부분적으로 혁명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이행기’ 강령을 내놓을 수는 없다. 대중의 현재 의식과 전혀 조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박근혜 즉각 퇴진과 그가 임명한 황교안 총리 내각의 총사퇴 등을 반드시 포함한, 현 시기에 걸맞은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 강령을 내놓고 주류 야당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그 강령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친북 좌파와 혁명적 좌파도 정당을 결성할 정치적 자유, 온갖 노동개악 철회 등 몇 가지 핵심 요구들을 포함해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 소박한 행동강령이어야 한다.

퇴진행동 측은 거리 항의 청산주의자와 즉각 퇴진이라는 단일 쟁점 운동주의자 사이에서 분열되지 말고 박근혜와 황교안 내각 즉각 사퇴를 포함한 핵심 적폐의 일소를 위해 대중 행동 강령을 제안하고 이를 위해 계속 거리에서 싸워야 한다.

물론 좌파와 노동단체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유한 요구를 위해 행동(특히 파업)을 하도록 고무하는 일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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