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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판도라〉(2016, 박정우 감독):
문화 통제광 박근혜가 억압한 영화

[이 기사는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너희들은 떠들어댔지.

'안전해, 안전해, 안전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때?

우린 여기 모여 탈출을 원해.

그렇게 너희들은 떠들어댔지.

'가만히 있어 우리를 믿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때?

우린 여기 모여 죽음을 맞네.

야마가타 트윅스터, 〈피플즈 피폭〉

영화 〈판도라〉는 핵발전소 사고를 다룬 영화다(‘원전 사고’란 표현을 많이 쓰지만, 사실 ‘핵발전소 사고’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영화는 비용 절감을 위해 시설점검조차 어영부영하던 핵발전소가 지진에 의해 냉각재 밸브에 균열이 생기면서 폭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다. 이 영화는 현재 예매율 1위이며, 개봉 후 1주일이 좀 넘자 관람객 2백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최근 핵 발전 관련 상담을 받는 곳들에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증가한다는 얘기도 도는 만큼,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안전은 후순위인 비정한 체제의 민낯

영화는 초반부를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하면서, 핵 발전소 폭발사고를 통해 이 체제의 민낯을 여실히 드러낸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기업주와 정부 관료들, 그리고 이 체제에서 가장 고통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영화의 배경은 핵발전소 바로 옆 어촌, 핵발전소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다. 남자 주인공 재혁은 핵발전소 하청 노동자다. 그와 애인 사이인 여자 주인공 연주도 핵발전소 홍보 일을 한다. 재혁은 핵발전소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형을 모두 방사능 피폭으로 잃었다. 그는 핵발전소가 위험하다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핵발전소 일을 때려치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다른 방도가 없다는 모친의 강한 만류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하루하루 버틴다.

한편 주인공들이 일하는 핵발전소는 노후한 핵발전소다. 몇 년을 걸쳐 제대로 시설점검을 해야 하지만, 회사는 비용절감을 위해 2달 만에 점검을 끝내버린다. 게다가 핵발전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낙하산 소장이 내려와 핵발전소로 재가동한다. 노후 핵발전소의 불안정성을 대통령에 보고하다 회사로부터 인사발령을 받은, 또 다른 주인공 평섭은 이에 분개한다.

그러던 중 지진이 나고, 아니나 다를까 너무나도 쉽게 냉각기통 밸브에 균열이 생긴다. 곧 핵발전소 냉각수 공급이 끊긴다. 그냥 두었다간 원자로 온도가 급상승, 폭발하여 방사능이 누출될 것임이 명백해진다. 이미 핵발전 회사와 정부에는 이 사실이 보고된 상황이지만, 핵발전 회사와 국가 관료들은 이를 은폐한다. 핵 발전 회사는 자신들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것에 방해가 될까 봐, 이 사실을 은폐하려 한다. 총리를 위시로 한 정부 관료들은 이에 동조한다.

핵발전 회사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지진으로 인한 균열부위를 막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애초부터 핵발전소를 지긋지긋해 했던 남자 주인공 재혁은 여기 더 있다간 죽는다며 작업을 거부하려 한다. 하지만 남아서 할 일을 하겠다는 동료들을 차마 두고 가지는 못한다. 그런데 폭발이 임박했음이 곧 명백해지자, 회사는 차폐기를 내려 노동자들의 탈출을 막는다. 노동자들의 사투가 시작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컨트롤 타워를 해야 할 정부는 대피령조차 내리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수백만을 대피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혼란이 발생한다는 이유다. 핵발전소를 만들 때 이런 상황에 대한 대비책조차 만들지 않았다. 핵발전소 직원들은 폭발을 막기 위해 백색경보를 내리고 방사능 방출을 하려 하지만, ‘본사’는 이조차도 막는다. 핵발전소 회사의 방해와 정부의 무대응으로 시간을 질질 끄는 동안, 명령 불복종과 참사를 막아보려는 시도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결국 핵반응로가 폭발하고 노동자들은 방사능에 피폭된다.

핵발전소에 도착한 구조대는 방사능 수치를 낮추기 위해 살수를 시작하지만, 잠시 후 급수를 위해서라며 사고 현장에서 이탈하려 한다. 코앞에 있는 바닷물을 끌어다 쓰면 될 일인데, 이를 핵발전 회사가 개입하여 강경하게 반대한다.

“해수를 쓰자구요? 그럼 원자로 폐로해야 됩니다.

원자로 한 기가 얼마짜리인지 모르세요?”

핵발전소 폭발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노동자들이 발전소 안에 갇혀있는데도, 방사능 방출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임에도, 핵발전 회사는 원자로가 폐로될 비용이나 걱정하고 있다.

한편 동네 주민들은 방사능 대피소에 모인다. 그러나 핵발전소가 폭발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경찰은 대피소에 동네 사람들을 전부 가둔다. 그리고는 새벽을 틈타 사람들을 가둔 채로 자신들만 빠져나가버린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사람들은 필사의 탈출을 한다. 이조차도 순탄치 않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진다. 핵발전소에 있던 핵연료 저장수로의 냉각수가 유출되면서, 더 치명적인 핵연료 폭발의 위협이 생겨난다.

ⓒ사진 출처 영화 〈판도라〉 스틸 이미지

역겨운 지배자들 그리고 너무나도 대조되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

지배자들이 평상시에는 온갖 위세를 다 떨어대면서 정작 위기를 대처하는 데는 얼마나 무능하고 비열한지를 영화는 잘 보여 준다. 총리는 언론을 통제하며 경찰력을 동원해 핵발전소 사고 사실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비용절감을 위해 핵발전소의 불안정성을 높인 핵발전 회사는 참사를 막아보려는 여러 시도들을 방해한다.

정부 관료들과 핵발전 회사는 여기서 이해관계를 같이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과 삶은 이들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 정부와 청해진 해운이 보여 준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 영화는 (세월호 참사 당일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다는 박근혜와는 다르게) 대통령을 나름대로 참사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아마 그런 지도자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리라. 노후한 핵발전소 재가동의 위험을 은폐한 총리를 비판하지만 총리는 끄떡도 안한다. “다른 발전소들도 있는데 사용을 안 한 것이잖습니까!” 하고 그는 외친다. 그러나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핵 발전 회사의 기업주와 그를 대변하는 총리는 이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그들은 핵발전소의 위험을 다룬 보고서를 비밀리에 대통령에 전달한 비서관을 경질시킨다. 대통령은 무력감에 멘붕에 빠진다. 참사 현장에서 핵발전 회사의 방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직권을 쓰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정의로운’ 대통령은 무력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든, 이 비정한 체제의 지배자로서 평범한 사람들과는 무언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 준다. 핵발전소 사고가 터지고 대통령은 주민 소개령을 내리자고 하지만, 수백만 인파가 대피하면 “좀비 떼처럼”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는 정부 관료들의 두려움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못한다. 이렇게 사고가 일어난 지 하루가 지나도록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사실을 은폐하고 참사를 키우는 데 대통령도 결국 한몫한 것이다.

정부 관료들과 핵발전 회사는 뒷짐 지고 있고 대통령은 멘붕에 빠져 있는 동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집단적인 힘을 발휘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이 영화에선 특히나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물론 살수를 한 구조대를 언급하는 것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할 사람을 찾는다’며 담화문을 발표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초라하면서도, 원초적인 분노를 낳는다. “잘못은 지들이 다 저질러놓고 왜 책임은 국민들보고 지라고 하는 것이냐. 개새끼들! 나쁜 새끼들!” 하고 주인공 재혁은 포효한다. 그러나 핵발전소로 들어가서 엄청난 피폭을 당하면서도 핵연료 폭발을 막는 작업을 할 사람이 필요하자, 결국 피폭을 당한 핵발전소 노동자들이 여기 지원한다.

영화는 이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과정도 담담하게 그린다.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고 희생을 한 것은 노동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이미 피폭을 당해 시한부 인생을 살아야 하고, 가족들이 멀리 피신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하는 상황. 주인공 재혁은 참사의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자는 게 아닙니다.

우리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저기 들어가는 겁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결국 그는 전 국민 생중계 방송을 요청하여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며 처절하게 묻는다.

“우리 가족들 소박하게 잘 살아보겠다고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욕심이라고...내가 왜 이리 죽어야 하노! 이래 죽기 싫다..

무서워요, 엄마”

영화는 사고 수습을 위해 피폭을 감수한 노동자들이 결국 심각하게 망가진 모습을 잠시 보여 준다. 그리고 수없이 나열된 영정사진들... 그 앞에서 추모사를 읽는 대통령의 목소리는 메인 사운드가 아닌 배경음 정도로 처리된다.

“판도라의 상자”

핵발전의 위험에 대해서 영화는 소상히 다룬다. “꺼지지 않는 불”, “밥솥”과 같은 희망으로 묘사되던 핵발전소는 폭발사고로 그 희망이 환상이었음을 증명한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온갖 재앙들이 터져 나오고, ‘핵발전이 안전하다’던 자들의 새빨간 거짓말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고통은 온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몫이다.

동시에 희망도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우리 아이들은 그래도 안전한 세상에서 살게 해줘야” 하기에 “작은 희망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제시한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전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탈핵을 추진하는 반면 ‘전 세계 핵발전소 밀집도 1위’라는 한국이 계속해서 핵발전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미 한국의 노후한 핵발전소들은 지난 세월간 크고 작은 사고를 겪어 왔다. 참사가 될 뻔한 사고들도 겨우겨우 무마해 온 것이지, 절대로 사고 위험에 잘 대처해 온 것이 아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있었던 핵발전소 폭발 사고 전부터도 수많은 사고들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한 우익 정권들은 특히나 북핵의 위협을 과장하면서,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해선 은폐해 왔다.

이 영화는 감독과 배우들의 인터뷰에서도 언급되듯, 탈핵에 대한 이야기를 한국 사회에서 활성화시켜보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이 영화는 이 사회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정한지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반적인 재난 영화에 필히 따라붙는 신파(그리고는 곧 어색하게 과장되는 ‘희생’, ‘애국심’ 따위)와는 달리,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느껴졌다. 탈핵을 지지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안전이 보장되는 세상을 원하는 사람에게 한번쯤 이 영화를 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