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사상 최대 인원(1백25명)으로 출범한 특검이 1차 조사 기한(70일)의 반환점을 돌기 직전이다. 특검은 최순실 등 비선실세 국정 농단, 재단 설립 과정에서 대가성 기금 출연 강요, 정유라 특혜 등 15가지를 수사 항목으로 꼽고 있다.

이제까지 특검은 삼성과 박근혜의 뇌물죄 성립 입증에 집중해 왔다. 부정부패의 핵심에 박근혜가 있음을 밝히겠다는 것이다.

12월 24일 광화문 집회에서 특검에게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시민들. 

이익 공유 관계

청와대는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미르재단 쓰레기통 설치까지 관여했을 정도다.

검찰 재판에서 전경련 부회장 이승철의 증언을 보면, 청와대에서 열린 재단 설립 관련 1차 회의 때 청와대는 전경련에 재단 설립 기한과 기업 명단, 금액까지 지시했다. 당시 경제수석 안종범은 정부 예산을 부어서 재단을 운영할 것이라 말했다.

더블루케이 부장 류상영이 작성한 문서를 보면, 최순실은 미르재단·케이스포츠재단·더블루케이를 계열사로 두는 지주회사 인투리스를 세워 자기가 회장을 맡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 뒀다. 두 재단에 들어간 돈을 본인 소유 회사를 거쳐서 자기 주머니로 들어오게 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와 최순실이 아주 오랜 시간 ‘경제적·실질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사이였으니 이 돈의 최종 목적지는 박근혜의 주머니였을 것이다.

평창올림픽은 둘의 주머니 불리기에 호재였다. 최순실의 더블루케이가 평창올림픽 시설물 건축 사업에 뛰어들려고 끌어들인 ‘누슬리’ 사가 올림픽 개·폐막식장 건설 사업에서 탈락하자, 박근혜는 교육문화수석 김상률과 경제수석 안종범을 질책하고 업체 재검토를 지시했다. 심지어 평창올림픽 조직위 사무총장이 누슬리 배제 경위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하고 감사원까지 나서서 이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당시 문체부 장관 김종덕이 로비에 나섰다.

그뿐 아니라 최순실 소유의 평창 토지에 박근혜 퇴임 후 지낼 사저(“아방궁”)를 짓고 주변에 최순실 일가 타운을 지으려 한 정황이 담긴 통화 내용이 폭로됐다. 올림픽 개최로 생기는 인프라를 부동산 투기에 이용했다는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한편, 최순실이 청와대 인사와 공기업 인사에도 입김을 행사한 증거들이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부당거래

두 재단에 7백74억 원을 내놓은 재벌들은 청와대에 여러 ‘민원’들을 청탁하며 ‘투자’ 효과를 톡톡히 누리려 했다.

2백억 원을 낸 삼성은 이재용 경영 세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결정적 성과를 거뒀다. 박근혜가 수차례 강조해 온 의료 민영화나 메르스 늑장 대처도 삼성의료원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현재 특검은 삼성 이재용에게 4백30억 원대 뇌물공여 혐의를 묻고 있다.

삼성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결의를 공시한 직후 대한승마협회의 중장기 로드맵에 무려 5백5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연히 정유라가 지원 선수 명단에 추천됐다. 그해 7월 국민연금의 찬성 덕분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지면서 이재용은 경영 세습의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후 이재용과 박근혜의 독대가 이뤄졌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문형표는 국민연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찬성하도록 압박한 혐의로 특검 구속 1호 신세가 됐다.

8월 삼성전자는 최순실 모녀가 독일에 소유한 코어스포츠와 2백20억 원 대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9월, 10월에는 최순실 측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80억 원을 ‘지원’했는데 이는 미래전략실의 결정으로 이뤄졌다. 그뿐 아니라 10월에 미르재단에 1백25억 원을, 장시호가 운영하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원을 지원했다. 2016년에 삼성은 케이스포츠재단에 다시 79억 원을 내놓았다.

박근혜는 공기업 인사에 직접 개입했을 뿐 아니라 삼성에서 받은 후원금 액수와 임원들의 이름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이재용은 물론 나머지 재벌 총수들도 구속돼야 한다

SK도 조사 대상이다. 박근혜는 2015년 SK의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김창근을 만났고 이 만남 직후 SK 면세점을 챙기라고 지시했다. 같은 해 7월 박근혜는 특별 사면 대상으로 SK를 지목하고 그 근거를 SK가 만들어 보도록 지시하기까지 했다. 최태원은 기업 총수 중 유일하게 사면됐다. ‘사면 거래’ 이후 SK 측은 “하늘 같은 은혜”에 “감사”하다며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재단에 1백11억 원을 내놓았다.

CJ 이재현은 지난해 광복절 사면을 받았는데 CJ는 두 재단에 13억 원을 냈다. CJ는 차은택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K컬쳐밸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도 했다.

두 재단에 45억 원을 낸 롯데는 2015년 하반기 면세점 특허 심사에서 탈락했다가 신동빈과 박근혜 독대 이후 결국 신규 특허를 받았다. 롯데는 5백억 원 규모로 평창올림픽 후원도 결정했다.

전방위적

특검은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의혹도 파헤치고 있다. 이화여대 교수 류철균은 수업에 출석도 하지 않는 정유라에게 학점을 주고는 교육부 감사가 시작되자 조교들을 협박해 대리 시험지를 작성케 했다. 정유라 입학 이후 이화여대는 정부재정지원 사업 9개 중 8개를 싹쓸이 해 1백85억 원을 지원받았다. 전 총장 최경희 등에게 구속 영장 청구가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17일 특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를 주도한 조윤선과 김기춘에게 구속 영장을 청구했다. 오리발 내밀기로 일관하던 조윤선은 결국 1월 9일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 존재를 시인했다. 증인 불출석으로 맹탕으로 끝난 국정조사 청문회가 건진 몇 안 되는 ‘성과’였다. 박근혜 정권이 통치 유지·강화를 위해 방송 장악과 검열, 여론몰이까지 서슴지 않은 부패한 집단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국정조사에서 〈세계일보〉 전 사장은 청와대가 대법원장 양승태를 사찰해 왔다고 폭로했는데, 이런 상황은 박근혜가 정권 반대파뿐 아니라 광범하게 불신과 견제를 해 왔음을 드러낸다.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가 날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런 자들이 있어야 할 곳이 감옥이라는 것이 점점 더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나 법원이 이재용 구속 영장을 기각한 데서 보듯이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미 박근혜 게이트의 실체에 대한 큰 그림은 그려진 만큼 앞으로의 관건은 공식적 처벌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정권 퇴진 운동이 더 강력하게 압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