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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노동자 연대
등록일 2009년 1월 12일,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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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번역 전문기
195호 | 2017-02-04 |
주제: 혁명과 혁명가, 투쟁
제보 / 질문 / 의견 | 후원하기

백 년 전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낳았다. 본지는 올 한 해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기사를 꾸준히 번역 연재하려고 한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2: 혁명과 내전 중에도 토론과 논쟁은 중요한 요소였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4: 혁명은 어떻게 러시아 제국 전체로 확대됐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5: 7월 사태 - 위기에 처한 러시아 혁명과 시험대에 오른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9: “여성의 완전한 해방”으로 발을 내디뎠던 혁명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1: 차르의 보물을 놓고 지배자들이 벌인 소동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2: 노동자 권력은 독재를 뜻할까?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4: 혁명은 사회뿐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도 변화시켰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1: 트로츠키: 노동자 운동을 무장시킨 지도자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2: 혁명의 패배는 예정돼 있지 않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3: 《세계를 뒤흔든 열흘》 -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책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5: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지 않았다면 혁명은 패퇴했을 것이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6: 십중팔구 처음 들을 볼셰비키 영웅 3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7: 반혁명의 씨앗을 뿌린 러시아 내전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8: 혁명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낳을 수밖에 없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9: 연재를 마치며 - 러시아 혁명은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함을 보였다

러시아 혁명은 제1차세계대전이 야기한 살육과 혼란, 그 한가운데에서 일어났다. 전쟁으로 2백50만 명에 이르는 러시아인이 사망했으며 5백만 명이 부상당했다.

병사들의 상태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군대에 무기는 고사하고 병사들이 신을 신발조차 없다는 것이 이내 드러났다.”

훈련도 받지 못한 병사들이 무기와 탄약도 없이 전장에 투입됐다. 러시아군은 계속된 패배로 사기가 떨어졌다.

상관의 명령을 거부하고 우애를 다지는 러시아와 독일 병사들. 1917년.

그러나 전쟁터에서 쓰라린 경험을 겪으며 병사들의 생각도 변했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장관, 의원, 장군, 기자들이 ‘전쟁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자’고 한목소리로 외치면 병사들은 참호 속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저들은 전쟁을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바치고 싶겠지. [자신들의 피가 아닌] 나의 피니까 말야.’”

한 비밀 정보원은, 군대 안에 “반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할 인자들이 가득하다”고 보고했다.

한편, 전쟁이 모든 자원을 빨아들이면서 러시아의 평범한 사람들은 굶주림과 추위로 고통을 겪었다.

다수 농기계와 각종 장비는 보수가 필요한 상태였다. 러시아는 상품과 원자재에 대한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였는데, 전쟁으로 수입이 사실상 중단됐다. 원자재 공급이 부족해지면서 공장 생산이 타격을 받았다.

작가 아서 랜섬은 당시 러시아가 포위 당한 채 외부 원조를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묘사했다. 그는 “1915년 러시아 마을의 주민들은 굶주리기 시작했다”고 썼다.

전쟁 기간에 국민소득은 3분의 1이나 떨어졌다. 정부가 전쟁 자금을 대기 위해 돈을 빌리고 화폐를 찍어 내면서 물가는 치솟았다.

모스크바에서는 전쟁이 벌이지고 2년[1914~15년] 만에 물가가 두 배로 올랐고, 1917년 초에는 1년 전보다 물가가 세 배로 뛰었다.

식량 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했다. 농촌의 토지 소유주들(쿨락)이 곡식을 몰래 빼돌려 식량 가격 상승을 더한층 부채질했다.

1916년에 보통의 노동자가 하루 평균 섭취한 음식은 2백~3백 그램 정도였다. 1917년에는 하루 배급량을 빵 4백50그램으로 제한했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끔찍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전쟁 때문에 러시아의 수송 체계에 부담이 가중되면서 경제가 마비됐다. 1915년 여름에는 전체 기차의 5분의 1 이상이 사람들을 [후방으로] 대피시키고 군수물자를 옮기는 데 쓰였다.

50만이 넘는 농촌 가구가 집을 떠나면서 곡식을 수확할 농업 노동자들은 더 줄었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자신의 밭에 씨를 뿌릴 수 없는 농민들이 증가했다. … 전쟁에 대한 농민들의 적대감이 다달이 높아졌다.”

전쟁으로 러시아 제국 전체에서 6백만 명에 이르는 난민들이 생겨났으며, 이는 도시와 마을의 모습을 바꿨다. 역사학자 피터 게트럴은 에카테리노슬라프와 프스코프 같은 도시에서 주민 넷 중에 하나는 난민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신문은 난민을 “인간 홍수”, 심지어 “메뚜기 떼”로 묘사했다.

일부 사람들은 난민에게 분노를 표출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차르에 대한 분노를 한층 더 키웠다.

식량 부족과 전쟁의 끔찍함은 2월 혁명으로 이어진 파업과 시위를 촉발했다. 페트로그라드의 거대한 푸틸로프 공장 노동자들이 1917년 3월 4일[구력 2월 19일]에 파업을 벌였다. 4일 뒤 페트로그라드의 여성 방직 노동자들이 빵과 평화를 요구하며 파업을 하고 시위에 나섰으며 다른 노동자들이 합류했다.

시위 진압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시위대에 가담했으며, 결국 페트로그라드 수비대 15만 병사가 모두 혁명에 동참했다.

사병들과 수병들 사이에서 반란의 물결이 이어졌다. 2월 혁명으로 차르가 쫓겨나고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 병사, 수병들은 노동자 위원회, 즉 소비에트를 만들었다.

10월에 혁명이 한 번 더 벌어져 소비에트가 권력을 쥐었다. 이 새로운 노동자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전쟁에서 러시아를 빼냈다. 

전쟁은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결국 전쟁을 끝낸 것은 혁명이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537호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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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9: “여성의 완전한 해방”으로 발을 내디뎠던 혁명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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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2: 노동자 권력은 독재를 뜻할까?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4: 혁명은 사회뿐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도 변화시켰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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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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