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일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내세웠던 ‘미국 우선(America first)’ 노선을 미국과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강력하게 천명했다. 이 연설로 그는 ‘미국 우선’ 노선이 단지 선거용이 아님을 대내외에 보여 줬다.

트럼프는 오늘날 미국이 겪는 어려움은 모두 미국이 세계의 ‘짐’을 전부 짊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미국의 인프라가 엉망이 되는 와중에 해외에 수조 달러를 써 왔다. 우리 나라의 부·힘·자신감이 소진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줬다.” 사실상 오늘날 미국 자본주의의 위기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 탓이라는 연설이었다.

이는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노선과 다소 결이 다른 것이다. 그동안 미국 대통령들은 세계 질서를 관장하는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공언해 왔다. 그 질서를 책임지는 구체적 방식이 일방주의라는 맨주먹이든, 다자주의라는 비단 장갑을 낀 주먹이든 행정부마다 달랐을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미국 우선’ 노선은 어떤 변화를 반영하는 것일까?

제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미국은 자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를 구축·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미국 지배자들은 자유시장 자본주의 국제 질서가 미국 자본의 이윤 획득과 미국 국가의 패권에 유리하다고 믿었다. 미국은 항상 다른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의 경쟁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에, 선진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관리하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자국이 주도하는 질서 안으로 규합하는 것은 미국 지배자들에게 중요한 과제였다.

그러나 이 일에는 언제나 부담이 따랐다. 예컨대 냉전 초기 미국은 소련에 맞서 서유럽에 대한 지도력을 강화하려고 마셜 플랜, 나토(NATO) 창설, 미군 기지 건설 등 엄청난 물자를 유럽에 투여해야 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장기 호황 속에 미국이 압도적 경제력을 갖춘 상황에서 이는 감수할 만한 비용이었다.

미국과 일본이 공동 연구해 최근 요격 시험에 성공한 SM-3 블록 2A 미사일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려는 MD 무기의 하나다.

때로 미국이 다른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 어느 정도 이익을 보장해 줘야 할 때도 있었다(물론 미국 자본의 이익이 언제나 최우선이었다). 이를 위해 유엔·세계은행·WTO·IMF 등 자본주의 국제 기구들을 유지하며 주요 국가들의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 경제의 상대적 지위가 그때에 비해 하락하면서 미국과 다른 주요 경제들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세계 주요 지역들에서 제기되는 도전들에 대응하는 것은 갈수록 버거운 일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국의 패권적 지위를 포기할 순 없다. 결국 미국 지배자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게다가 세계경제 위기로 미국이 세계 질서를 관장해 얻는 이익은 더 불확실해졌다.

미국 지배자들 중에 누구도 이 딜레마의 해법을 딱 부러지게 제시하지 못하는 가운데, 트럼프가 등장했다. 트럼프는 ‘이제 미국이 세계 질서 관장에 따른 부담을 혼자서 짊어질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나토, 유럽연합 등 지금까지 미국 패권 유지에 중요하게 여겨지던 기구들을 흔들고 있다.

물론 트럼프의 등장이 세계 질서의 질적 변화를 보여 준다고 단언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 미국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하락했지만, 다른 선진국들에 대한 미국의 우위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가 보호무역 정책을 전임 정부들보다 더 강화하고 있지만, 미국이 신자유주의와 결별하고 보호무역주의로 단숨에 회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행보는 국제 정세에 커다란 불확실성을 낳을 것이다. ‘위기는 네 탓이다’라는 트럼프의 공격은 국가 간 갈등을 부추길 요인이다. 중국과 ‘무역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트럼프 정부는 일본·독일 등 미국에 큰 무역 적자를 안겨 주는 서방 선진국들에게도 환율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미국 지배자들 내에서도 불협화음이 커질 것이다. 많은 지배자들이 트럼프가 70년 동안 미국 패권의 근간이 돼 온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국제 질서를 흔드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내각 안에서도 주요 대외정책을 놓고 견해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대외정책 상의 이견 때문에 미국 지배자들 내 갈등이 더욱 심화할 수 있다.

트럼프의 등장은 지배자들이 장기화된 경제 위기의 해결책을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대안’도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세계경제를 더한층 불안정에 빠뜨릴 수 있다. 이 또한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이 악화한다

트럼프 정부의 등장은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 간 갈등을 악화시킬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을 보면,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 백악관 국가무역위원장 피터 나바로 등 모두 중국의 부상에 미국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새 백악관 보좌진에는 ‘중국과 이슬람 때문에 서방의 유대교와 기독교가 후퇴하고 있다’고 떠드는 스티브 배넌(백악관 수석 전략가) 같은 작자도 있다.

물론 이미 미국 지배자들 사이에는 중국의 부상이 미국 패권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초당적 합의가 있다. 즉, 미국 지배자의 다수는 중국의 부상에 대처하는 것을 미국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 정부는 일련의 동아시아 정책들을 추진했고(‘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 이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불안정이 증대했다.

따라서 중국의 부상을 제어하려는 트럼프 정부의 구상은 분명 전임 오바마 정부의 정책과 연속선 상에 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와 차이도 있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 노선을 내걸며 오바마가 추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했다. 트럼프는 무역 적자를 악화시킬 다자 무역협정에서 미국이 발을 빼야 한다고 봤다.

그런데 TPP는 오바마가 아시아·태평양에서 동맹을 강화하는 맥락에서 추진한 일이었고, 미국의 탈퇴는 TPP 협상에 참여해 온 일본·호주 등 동맹국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조처다. 트럼프는 TPP 대신에 미국에 유리한 양자 무역협정을 선호하고(한국의 경우에는 한미FTA 재협상), 일본·한국 등이 환율, 시장 개방 등에서 양보하기를 바란다. 또, 트럼프의 보호무역 강화는 ‘안보 분담’ 요구와 맞물려, 역내 미국 동맹국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이런 점들도 역내 질서에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사드 배치 등 한국 정부가 트럼프의 대외정책에 협력하는 것은 국내에서 커다란 불만을 자아낼 수 있다.  

트럼프의 동아시아 정책에는 오바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측면도 있다.

첫째, 트럼프 정부는 군비 증강에 박차를 가하려 한다. 2008년 경제 위기로 미국은 한동안 군비 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였으나, 최근 들어 오바마 정부는 군비 지출을 늘리는 추세로 돌아섰다. 트럼프는 이 추세를 더한층 강화할 참이다.

대선 기간에 트럼프는 국방 예산을 증액하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2015년 11월에 출간된 그의 저서 《불구가 된 미국》을 보면, “군사력을 키우는 것은 민간에 자금을 투입해 수많은 사람을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군비 증강의 경기부양 효과(군사적 케인스주의)까지 언급하는 구절이 있다.

취임식 직후 백악관 웹사이트에 공개된 트럼프 정부의 주요 국정수행 과제에도 이 같은 내용이 반영돼 있다. 1980년대 레이건의 모토였던 “힘을 통한 평화”가 “미국 외교 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라며 군사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1991년 5백 척이었던 해군 함정이 2016년 2백75척으로 줄어들었다. 우리의 공군력 역시 1991년에 비해 대략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 … 이 같은 경향을 되돌리는 데 주력할 것이다.”

트럼프는 1월 27일 국방부에 핵전력과 미사일방어(MD) 강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군사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재정 적자를 줄이기 위한 예산 삭감 노력을 중지하고,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는 방향의 새 계획을 의회에 제출하려는 것이다.

군비 증강이 노리는 대상 중에는 예상대로 중국이 있다. 피터 나바로는 지난해 11월 트럼프의 아시아·태평양 정책을 설명하는 글에서 “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해군력을 중심으로 군비를 증강하겠다고 밝혔다.

둘째, 트럼프의 대만 접근은 트럼프 하에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보여 주는 신호탄이었다. 당선 후 트럼프가 대만 총통 차이잉원과 통화를 하자, 일각에서는 이것을 트럼프의 독불장군식 스타일이 낳은 실수로 여겼다. 그러나 차이잉원과의 통화는 트럼프 측이 공화당 우파 인사들과 수개월 전부터 준비한 대만 정책의 일환이었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더 나아가 지난해 12월 트럼프는 중국과의 협상이 안 되면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재고하겠다고 공언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은 중국 지배자들이 군사 행동을 불사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핵심 이익’의 하나다. 그래서 트럼프의 발언 직후 한동안 대만해협과 그 주변에서 긴장이 높아졌다. (최근 트럼프는 ‘하나의 중국’ 문제에서는 일단 한 발 물러섰다.)

셋째, 남중국해 문제가 있다. 국무장관 틸러슨은 인준 청문회에서 남중국해의 해상교통로를 중국이 좌우하는 것은 “세계경제에 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 분명한 신호를 보낼 것이다. 이는 [남중국해]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는 것과 중국의 [인공]섬 접근은 불허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당장 중국과 전쟁을 불사할 것 같지는 않지만, 남중국해를 계속 미국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해,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은 분명하다. 이는 오바마 정부가 남중국해에서 진행해 온 ‘항행의 자유’ 작전이 중국의 해양 확장을 저지하는 데 불충분하다고 보는 것이기도 하다.

넷째,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은 중국을 향한 칼날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자국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비용을 중국에 전가하고자 한다. 미국 경제의 문제 해결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우위를 확인하는 것을 더 노골적으로 결합하면서, 양국의 경제적 경쟁이 지정학적 경쟁과 교차하는 양상이 전보다 더 발전할 듯하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전쟁’이 실제로 불거진다면, 지정학적 갈등과 맞물려 동아시아에서 불안정이 증대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중국은 트럼프의 대만 접근 이후 항공모함을 동원해 무력 시위를 벌이는 등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미국에 협조하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반응도 점차 날카로워지고 있다. 사드 배치를 놓고 한국에 경제 보복 조처를 강화하는 것이 그 한 사례다. 중국도 트럼프의 동아시아 정책에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차기 한국 정부에 내밀 청구서들

한때 국내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고립주의’가 한반도에 이로울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으나, 당선 후 그의 행보는 그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다.

트럼프 정부도 ‘북한 위협론’을 대중국 견제의 고리로 삼으려 한다. 올해 초 신년사에서 김정은이 장거리 미사일의 시험 발사를 시사하자,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중국 비난으로 연결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일방적인 무역으로 엄청난 돈과 부를 빼간다. 그런데도 중국은 북한 문제 [해결을] 돕지 않는다. 팔자 좋구만!”

트럼프 정부도 ‘북한 위협론’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자국의 군사 행동을 정당화하고, 일본과 한국 등 동맹을 규합하고 강화할 것이다. 이미 주요 국정수행 과제에 이렇게 적시해 놨다. “우리는 이란이나 북한 등의 공격에서 미국을 방어하는 최신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할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사드 한국 배치를 예정대로 추진할 것임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점은 2월 2일 한국을 방문한 매티스가 확인해 줬다(CNN 보도).

틸러슨은 인준 청문회에서 “중국이 [대북 압박에서] 과거에 했던 것을 넘어서도록” 하는 새 접근법을 거론했다. 중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도 제재)을 강행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트럼프 정부가 대북 제재 이행 촉구를 중국 압박용으로 명확히 사용한다면, 미·중 갈등은 더 악화하고 한반도도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

트럼프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더 확실히 군비 부담을 나누고 싶어 한다. 이것은 비단 트럼프뿐 아니라 틸러슨·나바로 등도 강조하는 바다. “일본은 GDP가 4조 달러가 넘는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고, 남한은 GDP 1조 3천억 달러가 넘는 세계 11위의 경제다. … 이 국가들이 비용 분담을 충분히 하는 게 공정한 것이다.”(피터 나바로) 미국은 이전에도 비용 부담을 한국에 요구해 왔지만, 이제 그 강도가 더 세질 듯하다. 무기 수입 증액, 방위비 분담금 인상 등 미국의 요구 사항은 줄줄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한 매티스는 아베 정권의 군비 증강 방침을 두고 힘을 실어 줬다. “[일본이] 올바른 노선을 걷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역할이 더 많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신도 군사대국화로 가는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한·일 군사 협력의 수준을 높이라고 한국을 더 압박할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 정부는 이전 정부들처럼 한국에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에 기여하라고 촉구할 것이다. 이미 매티스가 제주 해군기지에 미국의 스텔스 구축함 줌왈트를 배치하자고 제안하는 등 한국을 대중국 전초 기지로 강화하며 대중국 견제에 더 깊숙이 끌어들이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즉, 사드 배치 강행, 국방비 증액, 무기 수입, 한·일 군사 협력 강화 등 트럼프 측은 한국에 굉장히 비싸고 처리하기 까다로운 청구서들을 들이밀려 한다.

부산 '소녀상'처럼, 앞으로도 '과거사' 문제가 오늘의 첨예한 정치 쟁점으로 불거질 일이 많다. 

미국과 일본이 동맹을 더 강화하라는 압력을 가하는 한편으로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에 경제 보복으로 대응하는 상황에서, 한국 지배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주변 제국주의 국가들 간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도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점차 모순에 봉착했다. 일본의 역할이 더 빨리 강화될수록 일본의 한반도 영향력도 높아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 역사 문제가 불거지는 등 한국 지배자들의 정치적 부담도 커질 것이다.

따라서 변화하는 질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국익’에 더 부합하는지를 놓고 지배자들의 견해차가 계속 불거질 것이다. 때로는 이로 인해 지배자들 내에서 큰 정치적 파열음이 발생할 수 있다.

황교안·유승민 등은 중국과의 관계를 의식하지만 대체로 한미 동맹을 더 우선시하고 있다. 특히 황교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위를 이용해 사드 배치, 한일군사협정, ‘위안부’ 합의 등 박근혜의 대표적인 적폐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에 반해 문재인을 비롯한 야권 주자들은 대체로 대외정책에서 범여권과는 다소 결을 달리한다. 특히, 남북 화해·협력 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주류 야당 내 대선 주자들의 한계도 크다. 예컨대 문재인은 최근 발간한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남북 화해를 강조하면서도 “이제 한국은 미국과 진정한 동반자 관계로 위치를 격상시켜야 합니다” 하고도 말한다. 한미 동맹을 통해 국가의 지위 격상을 계속 추구하겠다고 해석될 만한 대목이다.

문재인은 자신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포럼에서 아예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자 우리 안보의 핵심 이익”이고 미국은 한국의 “혈맹”이라고 표현했다. 이러면서 중국까지 아우르는 “동북아책임공동체 구축”을 얘기하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문재인은 사드와 한일군사협정 문제 등에서 분명한 반대 입장을 내놓기를 한사코 회피한다. 국회 논의와 주변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하자는 수준이다.

문재인은 대담집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국방예산 증가율이 연평균 9퍼센트로 높았음을 부각하며 자주국방을 강조한다. 최근에는 GDP 대비 현 2.4퍼센트 수준에서 3퍼센트로 국방비를 늘린다는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2월 9일 JTBC 〈썰전〉). 부르주아 민족주의 지향을 드러낸 것이다. 문제는 이런 구상과 트럼프의 ‘안보 분담 요구’가 맞물려서 낳을 결과다. 한미동맹 하에서의 ‘자주국방’이 미국 제국주의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노무현도 처음에는 ‘동북아 균형자론’ 등을 내놓으며 한국의 친미 일변도 대외정책에 변화를 주려고 했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후퇴해, 이라크 파병, 한미FTA 체결, 평택미군기지 확장 등으로 나아간 바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대외 환경이 더 나빠졌다.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하고,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직접적으로 불거진 상태에서 한국 국가의 처지에서는 운신의 폭이 많이 좁아진 상태다.

따라서 다음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차기 한국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 방지와 트럼프의 대외정책 협력 사이에서 고심하다가 결국 미국에 타협할 공산이 크다. 야당이 집권해도 그 한계가 꽤 일찍 드러날 것이다. 그 정부가 미국에 타협하면, 평화를 바라는 민중의 실망과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이런 불만, 그리고 지배자들의 갈등과 분열로 생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특히, 지정학적 갈등 심화가 낳을 이데올로기적·정치적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사회 변혁을 바라는 사람들이 제국주의 문제를 잘 알고 적절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