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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 생계비의 고작 40퍼센트, 그도 못 받는 이가 266만 명: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하라

조기 대선과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정치권이 앞다퉈 최저임금 인상과 법제도 개선을 약속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가 최저임금 하한선을 전체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50퍼센트로 하는 법 개정을 제안했고,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올리는 공약을 발표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그동안 최저임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쩍 높아져 왔다. 위선적이나마 한때 박근혜 정부의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최저임금의 “빠른 속도 인상”을 주장하고,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최저임금 9천 원을 약속했던 것도(이들은 단 이틀 만에 공약을 거둬들였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김기춘이 최저임금위원회에 ‘7퍼센트대 인상 가이드라인’을 강요한 데서 볼 수 있듯, 박근혜 정부는 저소득 노동자들의 생활고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최경환의 최저임금 인상 발언도 립서비스였을 뿐이고, ‘디플레 우려’를 부각해 금리를 낮추고 수출 기업들의 수익을 보장해 주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

결국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6천4백70원(월 1백35만여 원)으로 고작 7.3퍼센트(4백40원) 올랐다. 전년도의 8.1퍼센트 인상률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가파르게 높다’고 반발하며, 전체 협약 임금인상률이 3퍼센트대로 낮다는 점을 근거로 댔다. 대기업 정규직에게는 비정규직을 위해 임금을 양보하라고 압박하더니, 정규직의 낮은 임금 인상률을 근거로 밑바닥 저임금 노동자들도 압박한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조건 개선을 위해 정규직이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노동운동 일각에서도 공유하는 생각)이 완전히 비현실적임을 보여 준다.

재계가 최저임금 인상률과 상용직 전체의 임금 인상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도 결코 공정한 잣대가 아니다. 최저임금은 절대적 액수 자체가 워낙 작아 대폭 올라야 한다. 현재의 최저임금은 2015년을 기준으로 비혼 단신 1인 가구 생계비의 80퍼센트, 2~3인 가구 생계비의 4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 저임금 노동자 가정의 최소한의 생활 안정을 보장한다는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노동연구원이 구매력을 감안해 각국의 실질 최저임금을 따져 본 결과, 한국의 최저임금은 프랑스의 절반밖에 안 됐다. 최저임금이 낮다고 평가되는 미국에 견줘도 75퍼센트 수준이다. 치솟는 물가에 ‘계란 한 판도 못 사는 용돈 임금’이라는 불만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욱이 충격이게도 노동자 7명 중 한 명(2백66만 3천 명)은 이런 ‘용돈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에서도 무려 13만 명이나 된다.

최저임금 미달자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늘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률이 높았던 것으로 평가되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2.5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노무현 정부는 비정규직을 크게 양산했다는 점에서도 저임금층 해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울어진 운동장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제시하는 최저임금 1만 원, 법 위반 사업주에 대한 처벌·제재 강화 등의 요구는 완전히 옳다. 정부 추천의 공익위원회가 주도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최저임금위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요구도 정당하다.

정의당, 노동당, 울산의 두 무소속 의원 등 진보정당들은 민주노총의 요구를 지지해 ‘최저임금 1만 원 시대를 열자’고 주장해 왔다. 민주당도 지난해 총선 이후 최저임금 1만 원과 제도 개선을 위한 패키지 정책들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최저임금의 “점진적 인상”을 특별히 강조하는 한계가 있다. 민주당이 내놓은 ‘노동자 평균 정액급여의 50퍼센트 하한선’은 2012년에 문재인이 발의한 법안의 취지와 같은 것으로, 광주·제주 등 일부 지자체가 생활임금조례로 추진한 8천3백~4백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을 비롯한 주류 야당이 지난해에도 요란하게 말잔치는 했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획득하고도 개혁입법 통과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19대 국회에선 여대야소를 이유로, 20대 국회에선 최저임금위원회를 어찌할 수 없다는 핑계로 매번 요리조리 회피해 ‘최저임금을 표 얻을 도구로만 보는 것이냐’는 빈축을 샀다. 주류 야당과 독립적으로 저항을 건설해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민주노총의 최저임금 1만 원 요구는 지난해 노동·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의 공식 요구로 채택되고 최저임금위원회 노동계 측의 단일 요구로 제시되는 등 지지를 넓혀 왔다. 그동안 최저임금 투쟁의 동력이 취약했던 점 등 때문에 과연 현실적이냐 물음이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바람직하기로는 조직 노동자들이 임금 공격 등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반대하는 자기 요구를 내걸고 투쟁하면서 최저임금 등 비정규직의 요구를 결합시켜 함께 싸우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용자들이 밥 먹듯 법을 어기고 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상쇄시키려 하기 때문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 자체보다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용자들을 강제하는 데서 노동조합의 존재, 현장의 세력 관계가 중요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전체 노동자의 20퍼센트가량이 최저임금 인상에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고 법적 강제력을 확보하는 것이 광범한 저임금층을 해소하고 최소한의 생계비를 보장하는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계란 한 판도 못 사는 용돈 임금”은 대폭 인상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