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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운명의 일주일, 대중 동원에 최선을 다할 때

3월 1일 서울 한복판에서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조선일보〉는 “낮엔 반탄(탄핵 반대), 밤엔 찬탄(탄핵 찬성)”이라고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1945년 12월 미국·영국·소련의 외상이 만나 한국 문제를 논의한 모스크바 3상회의 직후 벌어진 찬탁(신탁통치 찬성)/반탁(신탁통치 반대) 논란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다.

실로 삼일절 시위는 지난 넉 달의 시위 중 가장 대결적인 양상을 띠었다. 경찰이 차벽으로 두 집회를 완전히 차단했지만 곳곳에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양극화가 첨예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퇴진 운동에 밀려 있던 우익이 기를 쓰고 세(勢)를 모아 최대 규모의 탄핵 반대 집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우익은 이미 한 달 전부터 삼일절 총동원령을 내렸다. 이날 삼일절 시위에서 우익은 처음으로 청와대 쪽으로 행진했다.

우익 집회 참가자들은 나이 든 이들이 압도적이었다. “소외감과 전쟁에 대한 기억과 트라우마”(〈한겨레〉)를 공유한 이들을 박근혜 측이 비열하게 동원에 이용한 것이다.

헌재가 탄핵을 결정할 확률이 높으리라는 예측에 기대어 퇴진행동 측이 다소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우익은 발악적으로 상황 반전을 노렸다. 박근혜는 청와대에서 탄핵 여론에 저항하며 반동적 교시를 내렸다. 특히 1월 하순 설 연휴 직전 우익 인터넷 언론인 ‘정규재 TV’와 한 인터뷰가 삼일절 우익 총동원 ‘하명’이었을 것이다. 또, 미국에서는 강성 우파인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고, 김정남 피살로 북한을 악마화하고 안보 위기의식을 부추길 여건이 마련된 것처럼 보이는 상황도 우익에게 자신감을 줬을 법하다.

'태극기'가 아니라 '촛불'이 진짜 민심이다.

미묘하게

청와대는 삼일절 집회에 크게 고무된 듯하다. 일부 언론은 청와대가 “탄핵 찬반 여론이 5 대 5”가 된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다. 박근혜 측 대리인단이 헌재에 탄핵을 각하하라고 새롭게 요구한 것도 이런 판단에서다. 그러나 탄핵 각하도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므로 현실에서는 기각과 동일한 효과를 낸다. 그럼에도 탄핵소추의 요건이 성립되지 않아 헌재가 인용/기각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므로, 헌재에게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보수 신문들도 삼일절을 분수령으로 미묘하게 논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특히, 촛불과 태극기가 마치 대등한 “민심”인 것처럼 보도했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지배계급의 다수는 박근혜의 버티기를 곤혹스럽게 여겼다. “넉 달 넘게 주말이면 서울 도심이 대규모 집회로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되는 상황을 신속하게 ‘정상화’(질서 회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익의 삼일절 동원이 “탄핵 찬반 여론 흐름의 변곡점이 됐을 것”이라는 청와대 측 발언은 교만하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탄핵 찬성은 여전히 80퍼센트에 육박한다. 반대는 20퍼센트가 안 된다. 헌재의 탄핵 인용을 예상하는 비율도 70퍼센트에 이른다.

또, 비록 시동을 늦게 걸긴 했어도, 퇴진행동 측도 삼일절 맞대응 집회를 열어 30만 명이 참가했다. 삼일절의 거리를 온전히 우익에 내주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런 동원은 탄핵 찬성 여론이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익의 삼일절 동원은 퇴진 운동 측에 정치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헌재가 탄핵 인용을 할 확률이 아직은 더 높아 보이지만, 결론이 보장돼 있는 것은 아니다. 퇴진 운동이 팔부 능선을 넘어가고 있지만, 본디 고지를 눈앞에 두고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법이다.

일부 언론들은 ‘남은 기간 모든 집회를 중단하고 헌재 결정을 기다려야 한다’며 짐짓 달리는 기차 위에서 중립을 표방한다. 친기업적이고 우익적인 언론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조선일보〉가 이런 호소를 한다는 게 가소롭다.

퇴진행동은 헌재의 선고 때까지 대중 동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민주노총도 조합원들에게 최대 동원 대기령을 내려, 헌재를 압박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 덕분에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그것은 퇴진 운동이 거둔 중요한 승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황 종료는 아니다. 우익이 헌재 결정에 승복해 순순히 거리를 떠나지 않을 수 있다. 또, 박근혜는 제거됐어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이 유지돼 국정원 같은 국가 기구들이 대선에서 부정 선거를 자행할 위험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퇴진행동은 조직이 유지돼야 하고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은 정권이 물러날 때까지 계속돼야 한다. 퇴진행동의 정식 명칭도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다.

행여 헌재가 국민 다수의 바람을 거슬러 탄핵을 기각하면, 그 즉시 대중적 저항을 시작해야 한다. 퇴진행동은 헌재가 탄핵을 기각하면 노동자 총파업을 포함해 박근혜 퇴진 투쟁을 전면화할 것이라고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