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세계경제포럼에서 화두가 된 이래, ‘4차 산업혁명’은 오늘날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4차 산업혁명’은 다양한 기술 진보들을 포괄하는 말인데, 흔히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공학의 획기적 발전 등을 그 골자로 한다.

한국의 주요 대선주자들도 앞다퉈 관련 산업 육성이 자신들의 경제 성장, 일자리 창출 정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기술 혁신과 신산업 육성을 통해서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 오늘날의 장기불황을 돌파할 계기로 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경제 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낙관론은 예측이라기보다 기대에 가깝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뿐 아니라 주류 경제학계에서도 오늘날 자본주의가 만성적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이런 낙관론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끄는 것은 디스토피아적 시나리오다. 특히 많은 학자들이 기술 진보로 인한 대량 실업 사태 혹은 ‘노동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며 공포를 부추기고 있다. 인공지능이 정신노동을 대체하고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한다면, 생산과정에서 인간 노동은 쓸모없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흔히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인용되는 것은 경제학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본의 2013년 연구보고서이다. 이들은 현존하는 미국 일자리 중 47퍼센트가량이 10~20년 사이에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재

먼저 역사를 조금만 되짚어 보면 기술 발전에 관한 이런 극단적 전망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에도, 기술 진보로 압도 다수의 일자리가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금처럼 널리 퍼져 있었다. 특히나 이 시기는 기계와 대공장이 제조업에서 최초로 본격 도입되는 시점이었으므로 그 변화가 격렬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노동계급의 공포감은 기계 도입을 물리적으로 방해하는 방식(러다이트 운동)으로 표출되기도 했다.

실제로 대량생산 기술의 도입은 숙련공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상당히 끌어내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자리는 오히려 늘어났다. 산업의 발달로 과거에는 없던 일자리들도 여럿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달 역시 일부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최신 연구에서도 디스토피아적인 ‘노동의 종말’과는 사뭇 다른 전망을 내놓는 경우가 적잖이 나오고 있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 가이 마이클스와 게오르크 그래츠의 조사를 보면, 최근 들어 로봇 도입으로 인한 생산성 증가세마저도 꺾이기 시작했다. 2016년 OECD 연구보고서를 보면, 전체 일자리 중에서 자동화로 소멸할 수 있는 일자리는 9퍼센트 수준에 머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백악관 직속의 경제자문위원회가 2015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도 이런 전망을 채택하고 있다.

프레이와 오즈본의 주장대로 분명히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의 발달은 기존에 인간이 하던 ‘직무’ 일부를 완전 자동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개개 노동자는 다양한 직무를 수행한다. 따라서 일부 직무가 완전히 자동화된다고 해도, 나머지 직무를 여전히 수행해야 한다면 해당 직업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입될 경우 버스운전기사라는 직업은 영영 사라질 것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백악관 경제자문위만 하더라도 ‘기사는 단지 버스를 운전할 뿐 아니라 무임승차를 감시한다’고 밝히고 있다. 유치원이나 요양원 등의 셔틀버스를 운전한다면 일상적으로 안전한 승하차를 돕는 것도 기사의 업무다. 따라서 운전이라는 직무가 인간의 손을 떠난다고 한들, 버스 운행을 위한 일자리가 즉각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체 일자리 중에서 사라질 것으로 전망된 9퍼센트 정도의 일자리는 70퍼센트 이상의 직무가 소멸돼 일자리 자체의 필요성이 사라지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로봇·인공지능과 인간노동 사이의 관계가 항상 ‘대체’ 관계인 것은 아니다. 적잖은 경우 이들은 보완 관계이다. 예컨대 인공지능이 병리학자보다 암 진단에 있어서 훨씬 높은 정확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가장 높은 정확성을 보이는 것은 인공지능과 병리학자 모두가 환자를 진단하는 경우다. 제조업에서 자동화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로봇에 의해 제조공정이 완전 자동화된 경우도 있지만, 최근 들어서는 노동자의 작업 효율을 높여주는 로봇인 협업로봇(cobot)의 도입 또한 늘어나고 있다. 기계에게만 온전히 맡기기엔 복잡하거나 섬세한, 혹은 유연성이 필요한 작업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어려운 작업들을 쉬이 해내는 로봇이지만, 오히려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몇몇 동작들을 로봇이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실제로 주요 자동차 기업인 메르세데스 벤츠는 오히려 로봇의 비율을 낮추고 고용을 늘리겠다는 방침을 지난해에 발표했다. 단순반복업무만 자동화시키고 나머지는 여전히 인간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보도를 보면, 아우디, BMW 같은 자동차 기업들도 비슷한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는 경우는 오직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싸게 먹히는 경우에만 한정된다. 그러나 윌리엄 노드하우스의 조사를 보면, 임금 대비 투자재 가격의 저하 속도가 가속화되는 일은 일어나고 있지 않다. 기계가 인간 노동의 값싸고 훌륭한 대용품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말이다.

이데올로기

물론 기술 진보로 다소간의 실업이 생길 수는 있다. 자본가들은 초과이윤을 얻기 위해 상품의 생산 단가를 줄이려 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돈을 기계 구입에 쓰게 된다. 1백50년 전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이런 과정을 통해 ‘자본의 구성’이 상승하면 산업예비군(실업인구)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마르크스는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자본의 규모가 확장하므로 그럼에도 고용이 증가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였다. 반면,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는 이 과정에서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의 이윤 경쟁이 해고 등 고통전가로 이어지는 데 반대해야 한다.

다만, 로봇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변화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야단법석에 넘어가 기술 진보 때문에 일자리의 감소가 불가피하다거나 머지않아 ‘노동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수용하면 기존의 일자리를 방어하는 데에 소극적이기 쉽다.

실제로 지배자들은 노동계급의 조건에 대한 자신들의 공격을 정당화하는 데에 ‘4차 산업혁명론’을 활용하려고 한다. 지난해 경제부총리 유일호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려면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며 박근혜의 노동개악을 정당화했다. 어차피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의 소멸은 불가피한 상황이므로 기존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고, 해고나 구조조정을 어렵게 하는 기존의 제도 또한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추어 혁파해야 한다는 식이다. 자동화로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선정적인 보고서만 지배계급과 주류 언론이 편파적으로 인용하는 이유다. 권재철 전 청와대 노동비서관이 지난 2월 9일치 〈한겨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그들의 속내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각종 요구에 모든 경제주체가 순응하라는 규범적 주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자리, 어떻게 지킬 것인가

요컨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으로 기존의 자본주의적 노동양식이 뒤흔들릴 것이라고 보는 것은 큰 과장일 것이다.

물론 신기술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초반부에는 직무의 변화나 해고를 경험하는 노동자들이 얼마간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시기가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보수와 조건이 개악되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 또한 새로운 직무환경에 노동자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필요한 비용들을 국가와 자본이 노동자들에게 떠넘기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보험을 강화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 요즘 한창 각광받고 있는 기본소득 도입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술 진보가 노동자들에게 일자리의 위협으로 다가오는 것은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기계가 ‘자본주의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라는 점 역시 봐야 한다. 사회의 우선순위가 이윤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있다면, 기계의 발달은 노동자들을 해고로 내모는 위협이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여가 증진이나 노동조건 개선 효과를 낳을 것이다. 따라서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를 극복함으로써 실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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