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UN)이 정한 인종차별 철폐의 날을 즈음해 세계 곳곳에서 인종차별 반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008년 경제 위기를 맞아 지배자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임금을 깎고 복지를 축소하면서 이주민과 난민 때문이라는, 오랜 거짓말을 되풀이해 왔다. 서방의 중동 개입을 정당화하려고 본래 무슬림은 폭력적이라는 낭설을 퍼뜨려 왔고, 개입 실패로 중동이 난장판이 되자, 자신의 책임을 덮으려고 더더욱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

한국의 인종차별 반대 행진을 이끈 이주노조 활동가들. ⓒ조승진

이런 상황을 이용해 곳곳에서 인종차별적 포퓰리스트 세력 또는 파시스트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해 왔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은 기성 정치권이 방파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고 동시에 더 많은 나라에서 그런 추악한 세력들이 부상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각국에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제안으로 3월 18~19일 ‘인종차별 반대 국제 공동 행동’이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3월 19일 보신각에서 국제 공동 행동의 일환으로 이주공동행동,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재한베트남공동체,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집회와 행진을 진행했다.

이날 집회에는 이주민 2백여 명이 참가했는데, 근래 열린 이주민 집회 중 가장 큰 규모였다. 이주노조 우다야 라이 위원장과 민주노총 최종진 직무 대행이 연단에서 발언하며 인종과 피부색을 넘는 노동자의 단결을 강조했다. 한국 정부의 낮은 난민 인정률(5퍼센트)도 규탄 대상이었다.

노동자연대 회원들은 한국어와 영어 팻말을 들고 약 30명 정도 참가했는데, 한국인 대열로는 가장 큰 부분을 이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하라”고 요구하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 성소수자 합창단 지보이스도 함께 했다.

이주 쟁점으로는 아주 오랜만에 거리로 나와 행진하며 “인종차별 반대한다”, “고용허가제 폐지하라”고 외쳤다. 종로를 지나가던 시민들은 관심 있게 행진을 지켜봤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주먹을 높이 들며 연대를 보냈다. 곳곳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남긴 긍정적 영향이 물씬 느껴졌고 이주민들은 크게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지르며 해방감을 만끽했다.


영국 ― 3만 명이 시위를 벌이다

많은 논평가들은 지난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기로 한 영국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영국인들, 특히 영국 노동계급이 인종차별에 넘어갔다고 봤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 상반되게도 인종차별 반대 국제공동행동이 영국에서 가장 크게 벌어졌다.

3월 18일 런던에서 3만 명이 “인종차별에 맞서자”, “난민을 환영한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고 외치며 행진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에서도 3천 명이 결집했다.

관건은 국민투표로 드러난 영국인들의 반감이 이주민이 아니라 지배자들과 그들의 기관인 EU를 향하도록 좌파가 개입하는 것이다.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이날 시위와 행진을 지지했다. “인종차별과 무슬림 혐오에 맞서려는 노력을 배가하는 것이 지금만큼 중요한 시기도 없었습니다. … 보수당은 영국 내 [유럽연합 출신] 사람들을 인간이 아니라 협상 카드로 여깁니다. … 우리는 서로 분열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 <소셜리스트 워커>

프랑스 ― 르펜 돌풍 속 희망을 확인한 1만 행진

유럽의 핵심 강대국인 프랑스는 4~5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데 파시스트 정당인 국민전선(FN)의 후보 마린 르펜이 1위를 달리고 있다.(▶ 관련 기사)

프랑스는 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지만, 공공장소에서 무슬림의 히잡 착용 금지를 가장 먼저 제도화할 정도로 인종차별이 끔찍한 나라다.

오랫동안 낮은 경제 성장이 지속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많은 경우 흑인이나 아랍계)들이 많아지자, 황당하게도 전통적인 보수 정당과 사회당은 그들이 종교 때문에 사회에 동화되지 못하는 탓이라고 공격했다.

안타깝게도 많은 좌파들이 “세속주의”에 대한 혼란 때문에 인종차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관련 기사: 본지 142호, ‘세속주의란 무엇인가?’(이언 버철)]

그런 점에서 3월 19일 파리에서 열린 “정의와 자긍심을 위한 행진”에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 인종차별 반대 단체, 이주민 공동체가 나란히 참가한 것은 아주 고무적이다.

지난해 여름 노동법 개악에 맞선 노동자 투쟁에 빈민가 청년들이 함께한 것과, 지난달 프랑스 경찰이 흑인 빈민 청년을 성폭행한 사건에 대한 사회적 분노에 노동조합과 좌파가 힘을 보탠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빈민 청년과 노동조합은 모두 프랑스 정부의 탄압에 시달려 왔다. 이번 연대 행동은 이 둘 사이의 오랜 서먹함을 끝낼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파시스트를 막을 진정한 잠재력은 정치인들 사이의 선거공학이 아니라 바로 이런 기층의 연대와 단결에서 나온다.

3월 19일 파리에서 열린 "정의와 자긍심을 위한 행진". ⓒ사진 Jad Bouharoun

그리스 ― 유럽연합의 난민 통제에 맞선 단결

시리아 전쟁 등으로 유럽을 찾는 난민이 지난 몇 년간 부쩍 늘었는데 그리스는 그 길목에 있다. 유럽연합 지배자들은 평범한 그리스 노동자들의 복지와 일자리를 위해서는 한 푼도 아까워하지만, 난민 유입을 막는 데 쓰는 비용은 그리스에 적극 지원한다.

최근에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스에 도착한 난민까지 터키로 송환하도록 했다. 좌파 정당 시리자가 이끄는 정부는 수치스럽게도 이런 정책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런 현실에 분개해 3월 18일 아테네에서는 유럽연합 사무실을 향해 1만 5천 명이 행진했다. 이날 시위에서는 노동조합과 학생뿐 아니라 난민들도 비중있게 참가했다. 제2의 도시 테살로니키에서도 1천5백 명이 시위를 벌였다.

많은 난민들의 발이 묶여있는 레스보스 섬에서도 2천 명이 인종차별 반대 시위를 벌였다. 유럽연합은 레스보스 섬에 있는 난민들이 그리스 본토로 가는 것도 막고 있는데, 시위대는 유럽연합이 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리스 <노동자연대>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에서도 악천후에도 각각 수천 명씩 모여서 인종차별 반대를 외쳤다. 두 나라 모두 최근에 파시스트 후보나 인종차별적 극우 정당이 선거 승리를 노린 바 있다. 이밖에 폴란드, 스페인 등지에서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수백 명 규모의 행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