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검찰이 법원에 박근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헌재의 파면 선고 11일 만에 박근혜가 검찰에 나갔고, 검찰 조사 6일 만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이다.

꼴통 친박들이 박근혜 구속만은 피해 보려고 “전면전”(조원진)을 협박했지만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막지 못했다.

겨우내 매주 거리를 지킨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답답하겠지만, 파면 이후 박근혜에 대한 압박이 상당히 강하게 이뤄진 것이다. 지배계급 다수와 검찰은 정치체제를 빨리 안정시켜 세력균형을 조금이라도 퇴진 운동 이전(‘정상’)으로 돌리려면 일단 성난 대중을 달래야 하고, 그러려면 일단 박근혜의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듯하다.(물론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다.)

물론 경제·안보 위기가 더 심해지고, 차기 정권이 위기 관리에 실패하면 우익은 다시 살아날 것이다. 위기를 겪는 지배계급이 우익적 해결책을 아예 포기한 것도 아니다. 지배계급 단합(협치, 대연정) 필요성 얘기들이 계속 나오는 까닭이다. 또한 검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고뇌’를 토로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은 청와대를 나와서까지 몽니를 부린 박근혜가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박근혜가 한때 지배계급 전체의 지지를 받았던 자답게 행동했다면 상황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비록 21일 검찰 조사 뒤에는 뒤늦게 현실감각이 발동했던지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며 아부했지만 말이다.

사실 검찰은 이미 지난해 11월 박근혜와 결별했다. 검찰은 박근혜를 ‘사실상의 피의자’로 공표해 퇴진 여론에 순응했다. 박근혜는 넉 달 남짓 동안 검찰 수사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사상누각”이라고 비난해 왔다. (과거 실패한 특검들과는 달리) 박영수 특검의 성공에는 검찰의 이런 달라진 자세와 협조가 작용했다. 검찰 특수본은 특검의 수사 결과를 박근혜 구속영장 청구에 이용했다.

검찰이 망설인 것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가 실제로 구속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가 구속됐을 때 정치적 파장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고, 이 경우에 삼성 이재용이나 SK 최태원, 롯데 신동빈 등 재벌 총수들의 구속 문제와도 연동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들에 관해 검찰은 지배계급 다수의 견해를 확인했을 테고(현 검찰총장은 자신의 전임자들에게 ‘고견’을 들었다고 한다), 정권 교체가 확실해 보이는 상황에서 차기 정권에게 박근혜의 생사여탈권을 넘기는 것을 택한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호남 경선에서 문재인이 60퍼센트 지지를 받은 건 아마도 정권 교체의 확실성을 높이겠다는 생각들이 반영된 결과인 듯하다. 그만큼 정권 교체 염원이 큰 것인데, 이는 또한 개혁과 적폐 청산의 염원도 크다는 걸 보여 준다.

이런 고려들 때문인지 박근혜 구속영장에 뇌물죄 혐의가 포함됐다. 물론 다른 대기업 총수들은 빠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룹 총수 형제의 석방과 사면 혜택을 받은 SK나 역시 불구속 수사의 특혜를 받은 롯데 등도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했다. 돈을 주고받은 정황도 있다. 이에 대한 수사는 이제 검찰 특수본의 몫이다.

증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장면. 박근혜와 남은 공범들도 구속되고 모두 유죄(실형 선고)를 받아야 한다.

박근혜가 재판에서도 유죄(실형)를 받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래서 검찰이 뇌물죄를 포함시켜 박근혜를 파렴치한 중대 범죄자로 묘사한 것도 검찰의 구속영장 신청이 불가피했다는 명분을 강조하는 제스처로 보인다. 검찰은 언론 발표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이용해 뇌물 강요와 수수, 블랙리스트 인사 등의 중대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죄를 부인하고 있어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청구 이유를 밝혔다. 또,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의 하수인들이 구속됐는데, 그 우두머리가 구속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직후, 세월호 인양이 검찰과 지배계급에 큰 정치적 압박이 됐다. 참사 3년 만에 떠오른 세월호는 고통스런 기억과 함께 박근혜에 대한 증오감도 다시 끌어올렸다. 그 비극성과 부조리함 때문에 박근혜 단죄의 제1사유는 단연코 세월호 참사의 책임 문제가 될 터였다. 퇴진 운동으로 사기가 오른 수백만 명이 박근혜가 펴 보지도 못한 청소년들의 생명과 비통함을 능멸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구속이 결정되는 날(31일), 예정대로라면 세월호가 육지로 올라온다. 세월호는 아마 박근혜에게 영원한 저주가 될 것 같다. 그래야 마땅하다. 향후 수사에서는 박근혜의 구조 책임 방기와 세월호 진상 규명 방해뿐 아니라, 그 하수인들인 우병우와 황교안, 김기춘 등이 세월호 수사를 방해하거나 세월호 비난 여론 조작과 우익 시위 등을 조종했다는 의혹 등을 모두 밝혀내야 한다.

전체적으로 지배계급이 어떤 계산을 하든 박근혜는 구속돼야 하고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남은 죄들을 더 철저히 파헤쳐야 하고 해당 혐의에 대한 법정최고형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승리한 정권 퇴진 운동의 요구다.


박근혜와 재벌, 주적은 누구인가

내로라하는 재벌 총수들이 박근혜에게 뇌물을 바친 것은 정권의 특별한 지원을 기대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특혜를 줄 수도 있고 해코지도 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서일 것이다. 지금 재벌 총수들은 검찰 수사에 불려 다니고, 구속되며(또는 구속될까 봐) 전전긍긍한다. 구속을 피하려고 사법부 앞에 머리도 조아린다.

재벌 구속과 처벌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런 일들은 국가기관의 관리자(행정, 사법)들을 단순히 재벌들의 ‘장학생’ 취급하는 천박한 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재벌 몸통론’을 강조하는 것은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대한 일면적 인식을 반영하는 듯하다.

재벌 총수들이 곤경에 처한 것은 대중이 정치권력을 정면으로 겨냥해 패퇴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특검에 소속된 검사들과 특검의 구속영장 신청을 받아 준 판사들만이 장학생들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지나치게 우연적이다. 특검의 수사 결과든 헌재의 탄핵 평결문이든 모두 박근혜가 기업 경영을 침해했다고 봤다.

자본주의 국가의 번영과 힘은 자본의 원활한 축적에 의존한다. 그래서 나름 설정한 자국 자본주의의 번영 목표를 위해 일한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개별 자본들에게 국가가 ‘을’의 위치에 선다는 뜻은 아니다. 국가가 우위에 설 때도 있다. 국가와 자본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이기 때문이다. 경제 권력은 재벌 총수들이 쥐고 있지만, 그 권력은 국가(정치) 권력으로 집중(응축·농축)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레닌 말대로 ‘정치’는 집중된 경제인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노동자 연대〉 지난호 최일붕의 “계급 관점에서 본 박근혜 퇴진 운동” 기사를 보시오.)

개별 자본들은 시장 질서 확립, 국내외 경쟁에서의 보호, 노동력 육성, 노동자 투쟁에 대한 체계적 관리 등 국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국 국가만 해도 검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해 개별 기업들을 압박할 힘이 있다. 박근혜 정부와 재벌 총수들의 유착(‘정경유착’)은 바로 이런 상호의존 관계의 구체적 형태였다.

따라서 국가가 자본의 요구에 응할 때조차 단지 특정 개별 자본(들)의 입김에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개별 자본이 특정 정권만 지지하고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많은 기업주들이 차기 정권을 맡을 것이 유력한 민주당에게 새로 줄을 대거나, 과거의 연을 되살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재벌 몸통론이나 이른바 삼성공화국 담론은 종종 국가를 자본의 하수인으로 여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담론과 핵심 가정을 공유하는 듯하다.

재벌을 공격할 핵심적인 힘은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서 나와야 한다. 물론 이것이 ‘경제주의적’(더 정확한 용어로는 신디컬리즘적)으로 발휘돼선 시시포스의 바위 굴리기일 것이다. 즉, 재벌 기업들의 일터에서 벌어질 노동자 투쟁들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데서 더 나아가야 한다. 다른 노동자들과 연대해 국가를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

가령, 성과연봉제에 맞선 투쟁은 개별 기업들에서 벌어졌지만, 국가를 상대로 싸워 우세해야 요구를 성취할 수 있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으로 정권이 퇴진하거나 약화되면 성과연봉제를 물리치길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수 있다. 또한 그 기간에 성과연봉제 등 이미 벌이던 투쟁을 이어가는 것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재벌 몸통론 좌파들이 재벌 기업 노동자들의 신디컬리즘을 반성하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그 한계를 벗어나려면 민중주의적 방식을 채택해선 안 된다. 재벌에 대한 민중적 반감은 50년 된 정서다. 중요한 건 (대중) 정서가 아니다. 전략이 필요하다. 반독점 인민전선(민중연합) 전략이 아니라 계급투쟁 전략 말이다.

재벌 몸통론은 진정한 사회변혁 전략으로서는 함량미달이다. 비록 선거에서 득표하기 위한 (개혁주의적) 전략으로서는 장래에 약간 쓸모 있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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