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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 후 미수습자도, 참사의 진실도 유실돼서는 안 된다

3년 만에 바다 위로 올라온 세월호

1월 7일 세월호 참사 1천 일 집회의 제목은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였다. 이제 그 말이 현실이 됐다. 결국 녹슬고 찢기고 구멍 뚫린 채 올라온 세월호는 검찰이 박근혜 구속 영장을 발부하는 데 강력한 압박 요인이 됐다. 그러나 배를 육상에 무사히 거치하고 미수습자를 가족 품에 돌려주기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해양수산부는 인양 결정을 발표한 2015년 4월 이후 꼬박 2년 동안 인양을 미뤄 왔다. 매번 어처구니없는 실수와 준비 부족이 그 이유였다. 중간에 인양 방식도 두 번이나 변경됐다. 그러는 동안 자식의 뼛조각이라도 찾고 싶다는 일념으로 진도 앞바다를 지킨 미수습자 가족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러나 박근혜 파면 결정이 가까워지자 해수부는 갑자기 인양 계획을 통보했다. 박근혜가 파면되자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신속성을 발휘해, 본격 작업에 착수한 지 하루 만에 인양을 끝내 버렸다. 그 과정에서 부주의하게도 선체 조사의 중요한 증거물인 좌현 램프(배 안팎으로 화물이 드나드는 다리)를 뜯어 내어 화물이 일부 쏟아져 나오는 일까지 발생했다.

정권의 수장이었던 박근혜가 대다수 국민들로부터는 물론 보수적인 헌법재판소에 의해서도 버려지자, 해수부 관료들은 이제 그에게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미루고 새 정권 하에서 살 길을 찾아 나서려는 듯하다.

뒤집어 보면 박근혜가 여태껏 인양을 끈질기게 가로막아 온 것은 세월호가 인양되고 조사돼서 세월호 참사가 다시금 주목받고 정부의 책임이 또다시 조명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선체 조사로 무엇을 밝혀야 하는가

인양된 세월호가 말해 줄 진실은 근본적으로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서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달라야 한다는 말에 구체적 힘을 부여하는 과정”(416가족협의회)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이 그 첫걸음이다.

세월호 특조위가 수행한 시뮬레이션과 조사에 따르면, 사고 지점 전까지 5도 내외로 방향을 조절하면서 “극히 정상적으로 운항”하던 세월호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휙 돌았다.

세월호 선원들의 재판에서 검찰은 이러한 급선회의 원인으로 조타수의 실수를 지목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조타기 고장, 엔진 고장 등 “기기 결함 가능성을 포함한 다양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선체를 인양한 뒤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직접적 침몰 원인을 규명하려면 인양된 선체에서 해당 부분을 정밀 조사해야 한다.

이러한 기기 결함은 노후선인 데다 제대로 수리나 점검이 되지 않은 당시 세월호의 상태를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급선회 직후 세월호는 15~20도가량 기운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가 최대로 버틸 수 있는 횡경사각(기울어진 정도)이 20.5도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후 화물이 쏠리면서 세월호가 버틸 수 있는 20.5도마저 초과했고, 그다음으로 배가 2차로 30도까지 기울어 걷잡을 수 없는 전복이 시작됐다.

따라서 어떤 화물이 어떻게 실리고 고정됐으며 얼마나 움직였는지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화물칸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화물 조사로 청해진해운의 과적과 불량한 고박이 침몰에 끼친 영향, 특히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 밖에, 배 안에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증거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현재 해수부는 인양한 선체를 절단해 객실부를 떼어 내겠다고 한다. 미수습자를 수습하는 가장 신속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진상 규명에 필요한 핵심 증거물들이 파손돼도 ‘나 몰라라’다. 해수부의 진짜 속내는 인양 후속 작업을 빨리 끝내 버리려는 것 같다.

해수부는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 규명이라는 과제를 은근히 대립시키며 피해자 가족들 사이를 이간질한다. 그러나 참사의 총체적 진실을 구성하고 책임자를 처벌함으로써 안전 사회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미수습자의 조속한 전원 수습과 동시에 진행돼야 할 일이다.

4·16가족협의회는 절단 과정에서 화물이 쏟아지거나 객실이 붕괴할 위험이 커, 빠른 수색이 오히려 어려워지고 미수습자의 시신이나 유품이 심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말한다(‘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어디까지 왔나’).

무엇보다 참사의 공범인 해수부가 인양을 차일피일 미뤄 온 지난 2년 동안, 미수습자 가족들은 “나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며 울부짖었다. 피해자를 수습하고 나면 바로 그들이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진상 규명 투쟁의 일원이 될 것이다. 이 둘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해수부의 수작은 너무 악랄하다.

해수부는 선체조사위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조사기구가 선체 조사 방식과 보존 대책을 마련하기 전까지 선체를 함부로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해수부가 인양 마무리 작업을 부주의하고 졸속적으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우리 모두의 감시가 필요하다.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 구조 방기, 진실 은폐, 인양 연기. 이 모든 책임에 박근혜 정권이 있다. 행진하는 유가족들

박근혜, 황교안, 우병우, 김기춘 … 책임자들을 모두 처벌하라

박근혜가 파면된 이후,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가 남기고 떠난 적폐들 중에 청산 대상 1호로 꼽힌다.

우선 인적 적폐들을 청산(책임자 처벌)해야 한다. 당연히 1순위는 박근혜다.

박근혜는 탄핵 판결을 앞두고, 자신이 구조의 ‘골든타임’이 다 지난 후에나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취할 수 있는 조처도 없었고, 따라서 져야 할 책임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국가라는 거대한 관료적 기구의 꼭대기에 앉아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오히려 진실은 규제 완화(안전 점검 서류화 등)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 등 박근혜가 참사 당일 배 주변에 있던 말단 해경들보다 더 큰 권력으로 더 나쁜 짓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질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 수사에 외압을 넣었던 황교안과 우병우, 그리고 유가족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지시한 김기춘도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이들을 뒤따라 수갑을 차야 할 해수부, 해경 책임자들도 줄줄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기소조차 안 되거나 ‘깃털’ 징계만 받고 책임을 털어버렸다. (인포그래픽 참고, 아래 이미지 클릭)

인포그래픽 보기

인허가나 안전 점검과 관련된 공직자들도 대부분 기소를 피하거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참사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형이 가벼워진 경우도 있었다.

청해진해운한테서 뇌물 3천5백만 원과 양주 3병을 받고 세월호 도입을 허가해 준 인천지방해양항만청 과장 박성규는 1심에서 징역 5년을 받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직접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던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이 일제히 진술을 번복한 것이다.

반면 항의에 나섰던 유가족은 길을 가로막은 경찰과 싸우다 피를 흘리고 연행되기도 했다. 참사 현장에서 목숨 걸고 피해자 수습에 나섰던 민간 잠수사들도 되려 해경에 의해 과실치사 범죄자로 몰렸다. 그 억울함에 김관홍 잠수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싸웠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5년 민중총궐기를 구실 삼은 국가에 의해 구속됐다. 그날 백남기 농민은 정권의 살인 물대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

피해자들은 탄압과 모욕에 시달리고, 참사의 주범들은 다리 뻗고 자는 울화통 터지는 3년이었다. 이 시간은 또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에 살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메르스 참사,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고, 가습기 살균제 대참사 등 사고가 반복됐다. 죄 없는 생명들이 또 다른 ‘세월호’에 실려 우리 곁을 떠났다.

참사의 책임자들이 더는 요직을 돌면서 떵떵거리게 놔둬선 안 된다. 책임자 처벌은 정의의 문제이고, 안전 사회 건설의 첫 단계다. 반드시 박근혜와 함께 감옥으로 보내야 한다.

한편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진짜로’ 달라지려면 참사를 낳은 정부 방침과 정책들도 일소해야 한다.

국가가 기업주들과 부자들한테서 세금을 걷어, 안전 사회를 위한 예산에 투자하게끔 강제해야 한다. 공공 부문에 인력을 대폭 충원해야 하고, 철도·의료 민영화 등도 중단시켜야 한다. 또, 평범한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노동 환경도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은 돈보다 생명이 먼저인 사회를 건설하는 투쟁, 특히 노동자 운동의 과제와 떨어질 수 없을 것이다.

4월 15일에는 ‘4월 16일의 약속, 함께 여는 봄’ 전야 문화제가 서울 광화문광장과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4월 16일 안산에서는 기억식이 진행된다.

지난 다섯 달간 감동적인 역사를 써 온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들이 이날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촛불을 들고 다시 모이자.

세월호 투쟁의 교훈과 과제

세월호 참사 3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국가에 대한 ‘상식’이 깨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박근혜 정권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가 싹텄다.

차곡차곡 축적된 분노는 항상 운동으로 분출한 것은 아니었지만, 광범한 반박근혜 정서의 핵심 토양이 됐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저항과 함께 바로 이 토양 위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이 자라났다.

세월호 소유주 청해진해운은 해수부로부터 2011년 종합우수선사로 선정됐고, 2013년 2월 인천해경·항만청 등의 합동 특별점검에서는 비상훈련 실시 분야에서 ‘양호’ 평가를 받았다. 한 해 동안 접대비로는 무려 6천만 원을 쓰면서도 안전 교육에는 겨우 54만 원을 지출한 덕분이었다.

이런 부패의 카르텔은 정부가 선박 안전 점검 업무를 해운사들의 입김이 절대적인 해운조합, 한국선급 등에 떠넘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외에도 박근혜 정부는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는 수많은 정책으로 대형 참사를 사실상 ‘예비’해 왔다. 재난 관리에 대한 재정 투입은 박근혜 정부 들어서 마이너스 4.9퍼센트를 기록했고, 선박 좌초 시 대처를 담당하던 지방 해양경찰청들의 수색구조계도 예산 축소로 없어졌다.

무엇보다 세월호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수백 톤이 실려 있었다. 화물 과적과 불량한 고박은 배가 돌이킬 수 없이 기울게 된 원인 중 하나다. 다시 말해 박근혜 정부에게 구조 방기와 규제 완화의 책임만이 아니라,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책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는 참사의 주범답게 참사 이후 책임을 덮기 위한 악랄한 짓을 계속했다.

침몰하는 배 앞에서 거짓말이나 지어 내던 해수부와 해경의 책임자들은 처벌을 피하고 심지어 승진을 거듭했다. 그 뒤에는 해경 압수수색을 막고 세월호 수사팀을 해체하려고 외압을 넣었던 당시 법무부 장관 황교안,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 우병우, 당시 검찰총장 김진태 등 박근혜 정권의 실세들이 있었다.

국가 고위 공무원들은 나와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모두 거짓말이었다.

경제 위기에 앓는 소리를 내며 규제를 더 완화하고 더 많은 알짜배기 공공 사업들을 시장으로 넘기라고 아우성치는 자본가들에게 박근혜 정부는 안전 조처를 강화하라는 강제력을 행사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역겨운 언론 플레이로 대중과 유가족들을 이간질하고 물리력을 이용해 운동을 탄압하며 진실을 은폐했다.

믿을 수 없는 검찰·경찰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한 세월호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독립적 진실 규명 특별법을 요구하는 투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7백만 명 넘는 사람들이 이 요구를 지지하며 서명에 동참했다. 유가족들은 국회 앞, 청운동 사무소 앞, 광화문에서 풍찬노숙을 하며 농성을 이어갔다. 그러자 국회에서도 이 법안에 관한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의 악랄한 방해와 야당의 계속된 배신으로 유가족이 요구한 특별법안은 암초에 부딪혔다.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이 이에 실용주의적으로 타협했다. 유가족들은 두 차례 여야 야합을 거부하며 싸웠지만 여야는 끝내 기소권과 수사권이라는 알맹이가 다 빠진 법안을 통과시켰다.

주류 야당들의 기회주의와 배신은 ‘반쪽짜리’ 특별법 야합 이후로도 계속됐다. 박근혜가 세월호 특조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시행령을 강행했지만 아무 구실도 하지 못했고, 지난해 4월 총선에는 여소야대가 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정부의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에 제대로 맞서지 못했다.

당시 민주당은 세월호 문제를 여야 간 정치 협상에서 쓸 카드 한 장쯤으로 여겼고, 새누리당이 특별법 개정안을 농해수위 안건조정위로 넘겨, 정부의 강제 종료 시한 이전에 특별법을 개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을 사실상 방조했다.

분노한 유가족들이 민주당 당사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며 싸웠을 때도 민주당은 ‘노력하겠다’ 둘러대기만 했고, 국민의당도 농성장을 찾아와서 “사실상 개정은 어렵다”고 변명했다.

이것은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다 할지라도 세월호 운동의 요구가 저절로 성취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 준다.

세월호 이전과 다른 사회를 만들려면 안전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야 하고, 그것은 자본가들과 국가에 정면으로 도전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부르주아 야당인 민주당은 궁극적으로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에 의존해 국가를 운영하고자 한다(때로 포퓰리즘적으로 운동의 압력에 반응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의 배경인 규제 완화와 민영화에 근본에서 반대하지 않는다. 특히 문재인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철도 민영화, 가스 민영화, 한미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결정 등에 함께했고,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민영화 촉진법’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놓고 박근혜를 만나 ‘통 큰’ 양보를 약속했다.

참사의 주범인 박근혜가 권력에서 물러나고 본격적인 선체 조사가 시작됨에 따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 요구가 나올 수 있다. 기존 검찰의 조사는 정부의 책임을 꼬리 자르기 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지난 3년을 돌아봤을 때 이런 요구를 성취하려면 국가에 맞선 싸움이 계속 돼야 하고, 민주당으로부터 정치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

김승주는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이자 《세월호 참사, 자본주의 그리고 국가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