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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 알량한 공약으로부터도 뒷걸음질

문재인은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적폐 청산”을 내세운다. 그러나 박근혜의 경제 교사라 불리며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운다)’ 정책을 만든 김광두나 이명박 정부에서 연합뉴스 편집국장이었던 이래운(당시 연합뉴스 노동자들은 보도통제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다)등 적폐 인물을 영입하고 있다. 그나마도 최근 공식 대선 출마문에서는 적폐 청산 용어가 빠졌다.

문재인은 거의 모든 연설에서 “촛불”을 강조해 왔다. 촛불 운동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것이 압도적인 반박근혜 정서에서 유리하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촛불 운동이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지만, 문재인은 11월 중순까지 그에 반대해 ‘질서 있는 퇴진’을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 소추안이 가결돼 황교안이 권한대행 자리에 앉았을 때도 민주당은 황교안 퇴진을 요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국정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박근혜 세력의 반격이 한창이던 때, 헌재 판결이 무엇이든 “승복하겠다”고도 말했다.

최근에도 문재인은 박근혜 구속에 찬성하고 이재용 구속을 환영한다면서도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은 불가하다는 방침을 천명하자는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국가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여지를 남겼다.(대통령 사면권 제한이 그의 공약인데도 말이다.)

재벌 총수들이 박근혜 게이트 공범으로 분노의 초점이 된 상황을 반영해 재벌 개혁을 내세우지만 근본적으로 감히 재벌들의 이익을 건드리지는 못한다. 문재인 재벌개혁의 골자는 투명한 경영, 공정한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올해 초 민주당이 발의한 상법개정안에 기초를 두고 있는 듯하다.(그나마도 개혁 대상을 4대 재벌로 한정했다.)

그러나 투명한 경영이 경쟁의 압력 자체를 없애는 것은 아니므로 구조조정, 임금 삭감, 조건 악화 등을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조건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계속되는 경제 위기는 이런 압력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이 점에서 노조의 경영 참여 보장은 오히려 노동자들의 분열을 낳을 수 있다. 기업의 소유 구조를 재편하고 자본의 집중을 막는다고 해서 ― 설사 그게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 노동자들이 볼 이득은 별로 없다. KT가 주주들의 이익을 이유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강행한 것은 주주권한 강화가 곧 노동자들에게 혜택은 아님을 보여 준다.

문재인은 사내유보금 7백조 원이 흘러나와야 한다고 하면서도 재벌들의 곳간을 열게 할 구체적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법인세 인상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오락가락

문재인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를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임금 삭감과 조건 악화가 없어야 한다는 단서가 없다. 더구나 고용을 늘리려면 노동자들도 양보해야 한다면서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한다. 2015년 사상 최대 규모로 벌어진 공무원연금 개악을 좋은 예라고 추켜 세우면서 말이다.

기업주들이 더 쉽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 법안을 개악한 것이 노무현 정부였는데도 정부의 선의가 기업들에 의해 악용됐다며 책임을 회피한다.

심화하는 경제 위기 때문에 좌우를 아우르려 하는 문재인의 시도는 난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문재인은 절차만을 문제 삼고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다. “다음 정부로 미룸에 있어서 찬·반 어느 쪽도 예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문재인은 2012년 대선에서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비판하면서도 기지 건설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았다. 문재인은 진보가 안보에서도 더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면서 노무현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보다 국방비 증대 비율이 높았다고 자랑하고, 동아시아 불안정을 증대시킬 한미일 군사 동맹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최근 세월호 인양이 시작되자 문재인은 2기 특조위를 당장 가동시키겠다고 했다. 하지만 1기 특조위가 강제 해산될 때 민주당은 팔짱 끼고 있었다. 민주당은 세월호 참사로 대중적 공분이 폭발하고 특별법 제정 운동에 대한 강력한 지지가 형성됐을 때조차 새누리당과 배신적인 타협을 거듭하며 유가족 쪽에 양보를 강요하더니 결국 누더기로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2016년 4월 총선 이후 여소야대가 됐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최근에 민주당은 유가족들의 요구에서 한참 후퇴한 선체조사위원회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참사의 배경인 규제완화와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서 민주당도 공범이다.

한편, 문재인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차별금지법 제정에는 반대해 성소수자 단체를 포함해 차별금지법 제정 지지 단체들로부터 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런 오락가락하는 행보는 문재인과 민주당이 자본주의를 확고히 지키면서도 진보적 지식인들, 진보적 시민단체들, 노동조합의 일부 지도자 등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의 환심을 사려 하지만(민중주의, 포퓰리즘) 결코 지배계급의 이익을 근본적으로 거스르려 하지 않는다.

고통과 환멸의 10년

노무현이 이미 이런 전철을 밝았다. 노무현 정부는 입으로는 개혁을 말하면서 금세 후퇴하다가 마침내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일삼았다. “왼쪽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노무현에 대한 대중의 환멸은 엄청났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고, 시장을 우선으로 한 복지를 시행했다. 그래 놓고서는 “권력은 이미 시장에게 넘어갔다”며 책임을 회피하고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앞뒤 안 맞는 말로 자신의 배신을 합리화했다.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던 노무현은 취임 직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철도 노조 파업에 경찰력을 투입했다. 사상 표현과 출판의 자유를 심각히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처럼 말했지만 실제로는 대체 입법을 추진했고(그나마 중도 하차했다.), 정작 한총련 활동가들을 국가보안법 혐의로 탄압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 수는 1천여 명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반대 투쟁이 거세지자 아예 집회를 금지하고 경찰력을 동원해 원천봉쇄했다.

김대중 정부도 대우자동차, 호텔롯데 등 노동자들의 투쟁을 잔인하게 짓밟았고 거대한 운동을 통해 구속시킨 전두환·노태우도 사면했다.

이것이 “정치 민주주의는 거의 세계적인 수준”이었다고 문재인이 자화자찬하는 민주당 정부 시절의 진짜 모습이었다. 애초에 이윤을 최우선하고 자본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신자유주의와 대중의 민주적 권리 확장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은 입만 열면 노동귀족 운운하며 노동자 운동을 비난하며 공격했고,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더니 기업주들이 비정규직을 더 쉽게 고용할 수 있게 하는 비정규직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철도 파업에 70억 원이 넘는 손배 청구를 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야만적인 단속추방이 계속됐고, 무고한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자처럼 가뒀던 여수외국인보호소에서 불이 나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노무현 정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어찌나 컸던지 2007년 대선은 치르나마나 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비리 범벅 이명박이 무난하게 당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문재인은 자신들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면서 오히려 그 시절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문제라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운명에서 희망으로》에서는 노무현 정부 초기에 “노동자들은 더 급하게 더 많은 요구를 하면서 노정이 부딪히고 갈등을 일으켰[다]”, “속도 조절을 해 가면서 개혁을 극대화해 나갔어야 되는데 너무 성급”했고 자신들을 기다리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운동권 내 기득권 세력이 노무현에게 비토”를 했다는 평가도 황당하다. 노무현 정부의 비정규직 개악, 이라크 파병, 한미FTA 등에 반대한 것이 기득권의 비토란 말인가?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한 책임전가식 평가가 함축하는 것은 자신에게 개혁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민주정부가 다시 수립되면 [노동운동이 이제는] 더 합리적인 요구를 해 올 것”이라며 벌써부터 단속을 다짐한다. 이런 중도 입장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하게 불리었다. “개혁 없는 개혁주의”, “신중도”, “사회(적) 자유주의”, “일하는 복지 국가”, “극단적 중도” 등등.

유신 독재에 저항하고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경력을 내세우다가도 특전사 경력을 강조하며 우익을 안심시키려는 것도 역겨움을 자아낸다.

이미 민주당 정권 10년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이런 논리로 ‘3기 민주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을 흔쾌히 지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박근혜와 그 잔당들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하도 커서 문재인은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아쉽게도 촛불 운동이 더 급진적인 양상으로, 즉 계급 투쟁으로 깊어지지는 못한 점 때문에 문재인의 대세론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 앞에 닥친 조건이 만만치 않다. 경제 위기 심화는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고통전가를 빠르고 강력하게 하도록 압력을 형성할 것이다. 빈부격차와 불평등이 깊어지고 정치적 좌우 대결도 심화해 그가 강조하는 “통합”이 가능하지 않은 순간이 금세 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차별받는 사람들과 노동계급의 운동은 정권 교체가 문제를 크게 완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지 말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려고 지금부터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