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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5년이 남긴 것

“윈윈”, “상생”. 한미FTA 5주년에 대한 친정부 연구소들의 평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소 등이 제시한 자료를 보면, 한미FTA 발효 전보다 대미수출업체수가 5천9백6개 늘었고 대미수출 품목수도 5백40개 늘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도 1백16억 달러에서 2백32억 달러로 늘었다고 한다.

한미FTA는 양국 노동자들에게 백해무익했다. 2011년 한미FTA 저지 집회

이게 얼마나 좋은 성적인지 살펴보려면 먼저 10년 전 한국 정부가 제시한 전망과 비교해 봐야 한다. 당시 정부는 한미FTA가 체결되면 GDP가 6퍼센트 성장하고 일자리 34만 개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관변 연구소들이 제시한 자료만 봐도 5년 동안 늘어난 일자리는 3만 3천 개 수준이다.

당시 정부는 ‘고용유발계수’라는 통계 산출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는 주류경제학 내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돼 온 방식이었다.

한미FTA로 양국의 수출이 더 늘어났다는 통계도 부풀려졌다. 한미FTA의 원산지 규정이 어느 FTA보다도 포괄적이고 방대한 까닭에 양국의 수출 규모 증가는 여러 이면을 담고 있다.

예컨대, 대미 수출 증가의 1등 공신으로 꼽히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한국 정부는 발효 3년 평가에서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 수출이 전년에 비해 각각 16.9퍼센트, 10.9퍼센트 증가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은 관세 수혜 품목이지만, 완성차는 비수혜 품목이다. 비수혜 품목인 완성차의 수출 증가율이 더 높은데, 이를 모두 한미FTA의 성과로 볼 수 있을까?

수출 효자 둘째 품목인 전기전자 제품도 한미FTA 비준 전인 2006년에 이미 대미 수출액 중 84.5퍼센트가 무관세 적용을 받고 있었다. 셋째로 비중이 큰 품목인 기계와 컴퓨터도 이미 2006년 당시 대미수출액 중 79.6퍼센트가 무관세 적용을 받고 있었다. 자동차 부품 대미 수출이 5천18억 달러에서 6천5백69억 달러로 늘어난 것조차 2016년 말 정점을 찍은 고환율의 효과가 크다.

한편, 트럼프는 한미FTA로 미국은 손해만 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과장이 섞여 있다. 지난 3월 30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한미FTA로 상품·서비스 수출이 2백3억 달러 늘었다. 특히 서비스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서비스 분야에서 한국의 대미 적자 규모는 1백10억 달러에서 1백41억 달러로 크게 늘었다). 한미FTA로 지적재산권을 더 많이 수출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퀄컴 같은 반도체 기업과 길리어드·존슨앤존슨·로슈·화이자 같은 제약회사들이 한미FTA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한국의 스마트폰이 미국에 많이 판매될수록 비메모리 분야의 반도체 부품을 파는 미국 기업들도 즐거웠던 셈이다. 미국의 제약회사들도 지적재산권이 20년 더 늘어나 70년으로 연장되고 복제약 판매 허가 절차가 까다로워져서 이익을 봤다.

한국과 미국 자본가들만 이익을 본 것도 아니다. 한미FTA 발효 이후 미국 공장에서 생산된 일본·독일 자동차들이 관세 혜택으로 한국 시장에서 큰 이익을 봤다. 혼다는 한미FTA 발효 직후 “미국산 혼다를 한국에 전량 투입해 한국 판매를 10배로 늘릴 계획”(〈일본경제신문〉 2012년 11월 27일치)을 세웠다. 관세 혜택(8퍼센트에서 4퍼센트 인하)으로 도요타, BMW, 폭스바겐의 수입이 크게 늘었다.

누구의 “윈”인가?

진정으로 중요한 점은 양국의 노동자들에게도 이익이 돌아갔는지다. 주류경제학 교과서를 경전처럼 해독하는 친정부 연구소의 연구위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은다. 한미FTA 이후 관세 인하로 미국의 농산물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됐고 저렴해진 수입자동차를 탈 수 있게 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체리, 오렌지, 수입자동차 등에서는 관세 절감 효과를 느끼긴 했다. 그 결과 미국산 블루베리는 한국 수출이 6배 증가했다.

그러나 관세 인하가 곧바로 소비자들의 이익으로 연결되지 않은 수많은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칠레 FTA 당시 대표적으로 거론된 품목이 포도다. 그런데 한국에 수입되는 칠레산 포도의 가격은 오히려 올랐고, 심지어 인접국가인 중국과 일본보다도 더 높은 가격으로 수입되고 있다. “한국의 45퍼센트 기본관세율이 10년 내 철폐되는 것을 감안한 수출자가 미리 가격을 올려 관세 철폐의 이익을 챙긴 결과다.”(소비자후생효과와 정책 시사점 : 칠레산 포도를 중심으로, 인하대 석사학위논문 2015)

관세 철폐의 혜택은 국내 수입·유통 업체의 독과점 구조로 흡수되기도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조사해 보니 “FTA로 부과되는 관세가 인하돼 육류 수입가격이 7퍼센트가량 하락했어도 도소매 단계에서의 유통업자들의 유통수익은 각각 18.7퍼센트, 50.92퍼센트 증가해서 소비자가격은 FTA 이전보다 상승했다.”(체결 이후 주요 수입농산물 유통실태와 경제주체별 후생효과 분석, 2013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보고서) 한마디로 국내의 대형 수입유통업체들이 관세 인하의 혜택을 다 가져갔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한미FTA를 규제 철폐와 노동유연화 촉진의 지렛대로 삼으려 했다. 한미FTA 발효 이후 관련 협정과 출동하는 국내법들은 수정됐다. 한미FTA로 한국이 변경했거나 변경해야 할 법률조항은 모두 32개 조항이고 시행령은 16개 조항, 시행규칙은 18개, 고시는 9개 이른다. 그 내용을 보고 있노라니 우체국보험, 전기통신사업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기업의 권한을 확대하는 틈새들이 잘도 명시돼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는 한미FTA의 효과를 극대화할 자발적 자유화 조처들도 횡행했다. 예를 들어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들이 특허권을 침해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법원 판결 없이도 복제약 판매가 금지되는 한미FTA의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국내 모든 의약품에 적용하도록 했다. 이는 단지 미국 측의 압력에 따른 “순응의 산물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였다. 신약 개발 중심으로 구조개혁을 하려는 국내 제약회사들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이기도 했다는 것이다.(‘한미자유무역협정은 순응의 산물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의약품 지적재산권을 중심으로’, 〈국가전략〉 2017년 제23권 1호)

그럼에도 한미FTA가 체결되면 즉각 대대적인 민영화와 공공요금 폭등이 뒤따를 것이라는 한미FTA 반대 운동 내 일각의 전망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 이는 당시에도 운동 내에서 논쟁이 된 바 있다. 세계경제 상황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항하는지도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장을 동반하는 의사 선동은 운동을 전진시키는 데 도움이 못 된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한미FTA가 공공서비스의 공적 책임을 덜어 주는 법적 근거가 되길 바랐다. 이는 철도에서 잘 드러났다. 한미FTA의 부속서대로 하면 “한국철도공사만이 2005년 6월 30일 이전에 건설된 철도 노선의 운송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국가가 건설한 철도라도 2005년 6월 30일 이후에 건설된 노선에 대해서는 한국철도공사가 전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점을 적극 활용했다. 2013년 12월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당시 노동자들이 민영화 반대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을 때, 박근혜 정부는 위 규정을 ‘한미FTA 때문에 입법이 불가능하다’는 근거로 활용했다(송기호 변호사, 한미FTA 5주년 쟁점과 과제 토론회 발표문). 그러나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 덕분에 저들의 바람만큼 철도 민영화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미FTA는 대다수 노동자에게 필요한 공공정책을 자본가들의 무역 분쟁 재판대에 올리는 협정이기도 했다. 한미FTA 발효 직후 세계적 투기 자본 론스타는 한국 정부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바로 그 투자자·국가 간 소송제도(ISD)에 근거해서 2조 4천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기업 이익 확대에 걸림돌이 되는 친환경 조처들을 무시한다는 점도 드러났다. 한미FTA에 따라 “유전자조작식품이 아님(Non GMO)”을 표시하는 것도 불법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