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호 독자편지에서 조한주 씨는 많은 문제제기를 했다. 짧은 편지에서 모든 것을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나는 민족주의 문제에 집중하고자 한다.

조한주 씨는 국제주의가 국가와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국제주의가 민족주의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궤변이다.

이런 식이라면 반자본주의 운동은 자본주의의 한 형태이고 반전 운동은 전쟁의 한 형태이며, 자본가란 개념 없이 노동자란 개념도 있을 수 없으므로 노동자 운동도 자본가들의 지배와 다름없는 셈이다.

조한주 씨는 개념들의 논리적 관계로 현실의 상황을 재단하려 하기 때문에 모든 민족주의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추상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원칙의 문제와 전략·전술의 문제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민족주의는 자본가들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민족주의가 수행하는 역할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제시할 수 있어야만 노동자 국제주의를 이룰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를 위해 억압자들의 민족주의와 피억압자들의 민족주의를 구분하고 피억압 민족의 해방 운동을 지지해 왔다.

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은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피억압 민족의 해방 투쟁을 지지해야 하고 그럴 때만 자국 지배자들에 맞선 투쟁을 일관되게 수행할 수 있다. “한 국민이 자유롭게 되면서 동시에 다른 국민들을 계속해서 억압할 수는 없다.”(엥겔스)

또한 민족 해방의 과제가 성취된다면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들은 좀 더 분명하게 자국의 자본가들에 맞서 투쟁을 하고 국제주의적 대안을 찾을 수 있는 조건을 맞이할 것이다. 그렇다고 이 두 투쟁 사이에 만리장성이 있어서 단계적 투쟁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피억압 민족의 투쟁이 근본적 사회 변혁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자본주의 국가를 구성하는 데 그치더라도 그 투쟁의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족 해방 투쟁은 제국주의 세계 질서에 타격을 주기 때문에 전 세계 노동자들에게 이롭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베트남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했으며, 미점령군에 맞서는 이라크인들과 아프가니스탄인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 한반도에 민족 국가 수립의 과제가 남아 있지는 않다. 남한과 북한 모두 자체의 민족국가를 수립했고 따라서 통일 그 자체가 진보적인 요구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를 겪었고, 소련과 미국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 뒤 전쟁을 실제로 경험했고 또한 여러 차례 전쟁 위험을 겪은 한국인들이 통일을 바라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노동계급 대중이 통일을 원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전술적으로 지지할 수 있다.

통일이 단순히 자본가들을 강화하는 것만은 아니다. 독일 통일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통일은 더 큰 불안정을 낳을 수 있다.
우리가 통일을 지지한다고 해서 민족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남북 노동자들의 단결을 주장하고 통일을 뛰어넘는 근본적 사회 변혁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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