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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속 이후:
투쟁해야 정권교체도 의미있다

박근혜가 파면 3주 만에 구속되는 모습에 수많은 사람들이 묵은 체증이 확 가시는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서울구치소에는 박근혜 말고도 그동안 증오의 표적이 된 박근혜 측근들이 몇몇 있다.

박근혜가 임기 동안 가장 애써서 지키려 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살맛난다. 박근혜는 다른 누구보다 기업주들의 이익을 지키려 온몸을 던졌다. 기업의 인건비 절감을 위해 그는 노동자들의 임금 수령을 마치 도둑질인 양 취급했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요구하는 청년들에게 중동에나 가라고 모욕했다. 많은 여성들을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로 내몰았고, 애 낳는 도구 취급했다.

보통 사람들의 나라가 아니라 기업주들의 나라를 만들려고 살육을 마다하지 않았던 군사 독재자들을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려 했다. 자기 애비 때문에 평생 고초를 겪은 인혁당 피해자들이 받은 국가배상금을 도로 뺏는 만행을 저지른 것도 독재의 영웅화에 방해됐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전두환이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 개소리를 해댄 것도 이 맥락 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권의 그런 기조에 방해가 되면 국가의 만행이나 잘못으로 자식 잃은 가족들도 범죄자, 돈벌레 취급하며 모욕을 줬다. 멀쩡한 노조를 억지스런 이유로 법외노조로 만들며 불법 단체 취급했다.

정당한 시위와 행진이 경찰 폭력에 가로막힌 것에 분노해 항의를 주도한 조직 노동자 지도자가 구속됐고, 반백의 노인이 살인 물대포에 목숨을 잃었다. 정부가 회피한 세월호 구조에 나섰다가 민간 잠수사들은 오히려 정부에게 과실치사 기소를 당했고, 한 잠수사는 구조 과정의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고는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이렇게 돌아보니 박근혜의 구속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작은 시작일 뿐이라는 점도 명백하다.

박근혜 구속은 끝이 아니다 더한층의 사회 정의 실현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지배계급 다수가 박근혜 제거를 결심한 뒤로 곳곳에서 선긋기를 하고 있지만, 박근혜가 소중히 지키려던 것들까지 내다버리진 않는다. 재판은커녕 기소도 아직 안 된 상황에서 사면 얘기가 나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펼쳐지고 있다. 물론 지배의 안정성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지배자들 사이에서 통하는 의리일 것이다.

공소 유지

그래서 박근혜 일당의 수사와 재판도 주시해야 한다. 기소와 추가 수사, 유죄 판결까지는 아직 많은 과정이 남았다.

이미 정치적 단죄를 받은 박근혜이지만, 유죄 판결과 실형 집행까지 받아야 지배자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당분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박근혜의 유산을 청산하는 데 조금이라도 더 유리할 수 있다.

정권 실세 중 비구속자들 가운데는 황교안과 우병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월호 진상 규명 방해 책동이 파헤쳐져야 한다.

뇌물을 제공한 나머지 재벌 총수들도 구속돼야 하고 뇌물죄임이 명시된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노동 개악과 고통전가 정책들이 통념상으로도 정당성 없다는 게 입증될 것이다.

문화계뿐 아니라 진보·좌파에도 적용됐을 게 틀림없는 블랙리스트 사찰 정치를 철저히 파헤쳐야 한다. 민주적 권리들이 신장되려면 보안 사찰 기관들의 권력부터 약화돼야 한다.

앞으로 작성될 박근혜 공소장에 뇌물죄 혐의 등이 추가되면, 최순실 등의 기소 내용도 변경될 것이다. 더 많은 자들이 기소돼야 하고, 더 준엄하게 처벌받아야 한다.

특검은 자신들이 기소한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 등에 대한 공소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인력과 재정이 줄고 추가 수사를 할 수 없어, 기존 수사 결과물만으로는 재판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뇌물죄는 이재용과 박근혜 둘 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므로 이재용은 사활을 걸고 재판에 임할 것이다.

특검의 공소 유지와 ‘박근혜 범죄단’의 유죄 판결을 받아 내는 데서 검찰 특수본의 추가 수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자칫 특검의 구속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나면 사회 정의의 실현은 그만큼 불철저해지는 것이다. 이에 고무돼 우익이 사기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면 수많은 대중이 절실하게 염원한 박근혜 적폐의 청산과 진정한 사회 개혁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세월호

세월호 인양 문제도 박근혜의 유산이 전혀 청산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다. 해양수산부는 박근혜가 파면되자마자 세월호를 인양했다. 그동안의 죄과를 박근혜에게 떠넘기고 면피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물론 신속한 인양으로 그동안 진실 규명을 방해한 주범이 박근혜였다는 정도는 분명해졌다.

그러나 그 뒤로 벌어지는 일들은 해수부 관료들을 포함해 더 폭넓은 세력들이 세월호 참사의 공범이었다는 점도 보여 준다. 피해자 가족들을 이간질하는 공작정치가 가장 가증스럽다. 그런 작태로 그들이 얻으려는 건 결국 선체 훼손과 책임 규명 운동의 분열일 것이다.

대통령권한대행 황교안이 부패한 관료들에게 힘을 보탰다. 목포신항을 방문해 미수습자 가족을 만나고는 눈물까지 글썽였다면서 황교안은 희생자 유가족들은 스치지도 않고 가버렸다. 3년 전 박근혜의 국회 방문이 떠오른다. 과연 박근혜의 공범답다.

세월호를 인양하게 만든 대중 투쟁이 계속해서 중요한 이유다. 기성체제에 묵직한 압박을 가한 퇴진 운동의 여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곳곳에서 박근혜 유산의 집행자들은 난관을 겪고 있다. 검찰이 특검의 수사 결과를 받아들여, 박근혜 구속영장에 삼성과의 뇌물죄 연관을 포함시킨 것도 한 가지 사례다. 무노조 삼성에서 삼성엔지니어링 노조가 결성돼 민주노총에 가입했다는 것은 또다른 사례다.

퇴진 운동의 다수를 이뤘고 이따금 집회 연단이나 행진차 연설을 통해 불평등과 부정의한 사회 구조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던 노동자들이 움직여야 한다. 특히, 노동계급 고유의 경제적 힘(생산수단 가동에 차질을 빚게 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세론이 뜻하는 바

문재인이 결선 투표 없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됐다. 문재인의 왼쪽에서 지지를 늘려 왔던 이재명은 노골적인 우경화를 내세웠던 안희정에 근소하게 뒤진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둘의 지지율을 합친 것보다 문재인 지지율이 더 크다. 특히, 당 대의원 득표에서 문재인이 몰표를 얻은 것은 민주당이 ‘문재인당’이라는 걸 새삼 보여 준다.

주목할 점은 문재인 대세론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와중에 생겨났다는 것이다.지난해 말까지도 문재인의 지지율은 반기문과 엎치락뒤치락하는 20퍼센트대였다.

퇴진 운동 초기의 최대 수혜자는 퇴진 여론에 일찍이 힘을 실은 이재명 성남시장이었다. 이재명 시장은 맨 먼저 공개적으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을 뿐 아니라 사드 배치 철회,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등 기성 정치인들이 꺼리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하면서 퇴진 운동 참가자들의 염원을 잘 대변했다. 반면 문재인은 단 한 번도 퇴진 운동을 선도해 대변한 적이 없다.

박근혜에 대한 증오심과 혐오감은 정권 교체 열망과 연결되므로, 지난해 9월 이후 제1야당인 민주당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했다. 최근 지지율은 50퍼센트에 육박한다.

그러나 문재인 지지율은 1월이 돼서야 30퍼센트를 넘겼다. 때마침 지지층이 겹치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사퇴해 당내 경쟁자가 줄고, 우파측 대표 주자이던 반기문이 사퇴했다. 운동이 정권을 격퇴하기 시작하면서 우파의 구심이 약화되고 정권 교체 열망이 커진 것의 반영이다.

운동이 (그 성과와 한계 모두 포함해) 만든 지형이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즉, 문재인 대세론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의 결과물이지만, 그것이 올곧게 반영된 것은 아니고 여러 가지 필터(정치적 한계와 조건)로 걸러진 결과물이다.

따라서 썩 흡족하진 않아도 현재 대선 구도에는 정권 교체 가능성을 높여 박근혜와 새누리당 정권의 유산을 확실히 청산하고 싶다는 대중의 염원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정권 교체 열망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오른 상황이 (문재인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민주당 내부 세력관계와 결합되고, 또한 퇴진 운동의 부침과 한계가 결합돼, 결국 문재인이 득을 본 것이다.

최근 〈미디어오늘〉이 한 여론조사에서는 차기 정권의 제1과제로 적폐 청산을, 〈동아일보〉 조사에서는 ‘정권 교체를 통한 적폐 청산’을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으로 가장 많이 꼽았다.

그러나 좌회전 신호 켜고 우회전한 노무현 정부의 재탕을 약속하는 문재인이 그런 염원을 충실히 대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안철수·안희정 등이 경제·안보 위기에 직면한 지배계급의 단결이라는 필요를 강조해 문재인이 상대적으로 왼쪽에 있는 듯도 하지만, 요즘 문재인은 왼쪽 깜박이도 확실히 켜려 하지 않는다. 대중의 기대치를 높일까 봐 몸을 사리는 것이다.

민주당 공식 후보가 되자마자 문재인은 현충원에 가서 이승만과 박정희의 묘역에 참배했다. 그 생물학적·정치적 후예를 자처한 대통령을 대중이 쫓아낸 지 채 한 달도 안 됐는데도 말이다. 물론 이재명과 안희정의 지지층을 최대한 흡수하려고 ― “좌우로 벌려!” ― 양쪽의 눈치를 어정쩡하게 보는 모양새는 계속될 것이다.

좌파는 선거를 간단히 기각해서도 안 되지만, 선거 그 자체보다는 유리해진 정치적 환경을 이용해 노동자 투쟁을 일으키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퇴진 운동의 견인차였던 노동계급의 구실이 중요하다. 《공산당 선언》에서 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대로 “기존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