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는 “낡은 과거의 틀을 부숴 버리고 ‘미래’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미래’는 그가 이번 대선에서 핵심으로 내걸고 있는 선거 구호다.

안철수가 만들고자 하는 미래는 무엇인가? 안철수는 후보지명 수락연설에서 “이 나라, 진보의 나라도 보수의 나라도 아니다. 국민의 나라”라며, 진보와 보수가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오바마 연설문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연설문이 아니다. 미국의 오바마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개혁에도 국민 통합에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바마가 국민에게 한 별 볼 일 없는 약속마저 배신하고 고통전가와 제국주의 정책에 매진했기 때문이다.

그 실패의 희비극이 교차한 결과가 트럼프 당선일 것이다. 그래서 안철수의 미래도 밝지 않다.

사실 5년 전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안철수 현상’으로 불린 광범한 지지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때의 ‘새정치’를 이제 ‘미래’라는 말로 바꿔 부른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속 정당인 국민의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의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 불거졌다. 3월 25일 광주에서 열린 국민의당 경선에서 렌터카를 동원해 주민 1백30명을 투표소까지 실어 나른 혐의로 캠프 관련자가 선관위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그런데 불법 선거 연루자는 얼마 전까지 안철수의 비서실장을 지냈고 지금은 캠프의 국민참여본부장을 맡고 있는 측근 송기석 의원의 지역구 조직국장으로 밝혀졌다. 안철수와 무관하지 않을 이런 ‘차떼기 선거인단 동원’이 그가 말하는 “반칙 없는 사회”의 미래일까?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안철수가 최근 촛불 집회를 깎아내리고 보수층에 추파를 던지는 행보를 보면 그가 말하는 미래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짐작이 간다. 지난달에는 기자들이 ‘문재인 후보에 견줘 장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저는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에 모두 나가지 않았다”며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똑같은 문젯거리로 취급하기도 했다. 대중 행동을 안정을 해치는 소란으로 취급한 것이고, 민주당을 좌파 취급하는 저급한 우익의 수사를 이용한 것이다.

안철수가 말하는 ‘미래’에 노동계급은 완전히 빠져 있다

안철수의 이런 행보는 단순히 보수층 표를 의식한 득표 전략만은 아니다. 퇴진운동이라는 ‘혼란’을 마무리하고 지배계급의 단합을 추구해 체제를 안정화하는 데에 자신이 가장 적당한 인물임을 지배계급에게 어필하는 것이다.

박근혜가 구속 수감된 당일에 안철수가 “[박근혜 사면은] 국민들의 요구가 있으면 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안철수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일방적으로 쓰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변명했지만,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의 직설적 비판이 옳아 보인다.

“사면은 국민이 시끄러울 땐 잡아넣었다가 조용해지면 빼내 주자는 말인가? 이는 국민을 개, 돼지로 보는 발상과 뭐가 다른가?”

안철수는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의 묘역에 헌화하면서 현충원 방명록에다 “나뉘어진 대한민국을 희망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겠습니다” 하고 적기도 했다.

국민의당 대표 박지원은 “다당제에선 ‘멜팅팟(용광로)’처럼 연정이 되는 것이 아니고 각 당의 정체성과 제 맛을 유지하면서 통합적인 ‘샐러드 연정’이 가능할 것”이라며 집권 후 보수정당과의 제한적 연정 가능성도 흘려 안철수의 ‘대통합 새정치’를 뒷받침했다.


한미 동맹 존중·강화

안철수는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며, 사드 배치 찬성으로 견해를 바꿨다. 국가 간 협정을 지켜야 지속적인 외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사드 배치 반대 당론 변경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는 같은 이유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지지한다.

국가 간 협정이 차기 정권에서도 바꾸지 못할 것의 기준이 된다면 그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폐기하고 재협상하겠다고 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도 뒤집을 수 없다. 모순인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사드 배치 찬성의 근본적 배경에는 이 나라 지배계급의 필수 덕목 중 하나인 ‘한미 동맹 존중과 강화’라는 맥락이 있다. 안철수는 전시작전권 환수에도 반대한다.

안철수는 정치에 입문한 2012년부터 이미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 대전 지역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제주해군기지에서 운용 중인 기동전단을 기동함대로 발전시켜 명실상부한 대양해군으로의 면모를 갖추겠다”고 밝혀 강정마을 주민들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안철수의 ‘안보’ 분야 멘토로 알려진 이성출(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한미연합사 복무 당시에 한미 간 공조를 공고히 했다는 공로로 한국과 미국으로부터 다섯 차례나 훈장을 받은 친미주의자였다. 2009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전역한 후에는 대통령 직속 안보총괄점검회 위원으로 활동했고,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 시절 국방부 장관이나 안보실장 후보로 거명되기도 했다.


노동자 권리는 뒷전

안철수는 기업주 출신답게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가 기업과 민간이라며 노동자들의 권리는 뒷전이다. 신성장 산업과 첨단수출 중소기업을 육성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한다. 우선 일자리의 질적 개선을 위해 공공부문부터 ‘직무형 정규직’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신산업과 중소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과거 정부도 시도했던 정책이며 지금과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구체성도 떨어진다.

또한 공공부문 직무형 정규직은 사업장 폐쇄나 업무 변동에 따라 해고가 가능하고 호봉제 없이 직무에 따라 급여를 정하므로 진정한 정규직이라고 할 수 없고, 공공부문의 전반적 임금 하락 압력을 만들 수 있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발표처럼 “무기계약직 차별 고착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또 청년일자리 해법으로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5년간 한시적 고용을 보장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들에게 대기업 임금의 80퍼센트 수준을 보장하는 ‘청년고용보장계획’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제 위기 상황에서 중소기업도 고용 한파에서 예외가 아니다. 또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이유는 단지 돈 문제만이 아니라 고용 불안 시대에 기업 복지와 경력 관리에 대한 우려도 크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청년들의 어려움을 눈높이에서 찾은 이명박과 박근혜와 뭐가 다를까?

게다가 안철수는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정부가 강제로 나서는 것에 스스로 반대하고 있으니, 그나마 제도의 실효성을 무엇으로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최저임금 1만 원 인상은 5년 후인 2022년에나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마다 최저임금 평균 인상비율 8퍼센트를 적용하면 2020년에는 자연스럽게 1만 원에 가까운 9천5백6원이 돼 안철수의 ‘5년 후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주장은 뭘 하겠다는 약속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


1% 클럽

노동 문제에 인색하고 친기업적인 그의 공약은 그가 살아온 계급적 삶의 궤적과 무관하지 않다.

안철수의 재산은 2천3백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올해에만 ‘안랩’ 주가 상승 등으로 1천억 원 이상 증가한 1퍼센트 부유층에 속한다. 그는 상속증여세 인상에 반대하고 있는데, 최근 자녀의 재산 공개 여부 논란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는 법인세 인상에도 반대한다. 흔히 안철수가 중소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듯이 얘기돼 왔지만, 그렇지는 않다. 가령, 안철수는 기업주들 모두에 득이 되는 규제프리존을 찬성한다.

안철수는 IT업계에선 ‘성공한 기업가’다. 그래서 그는 한때 ‘브이소사이어티’ 같은 주식회사 형태의 재벌 사교 모임에 나가 SK, 현대, 롯데, 코오롱, 신세계 등 재벌 2~3세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중 SK 회장 최태원과 합작해 ‘IA 시큐리티’라는 무선 인터넷 보안 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는 최태원이 2003년에 비리로 구속됐을 때 사면 탄원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또 포스코 사외이사 경력으로 ‘황제 이사’라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2005~11년 포스코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급여뿐 아니라 별도로 스톡옵션까지 행사해 억대 보수를 받았다.

2012년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바에 따르면 포스코는 안철수에게 사외이사 급여로 3억 8천만 원을 지급했다. 2005~08년까지 미국 유학 중일 때는 이사회 참석을 위해 포스코한테서 10여 차례에 걸쳐 1등석 항공권을 제공받았다는 보도도 있다.

또 이사회에 참석해서는 포스코의 ‘박정희기념 도서관 건립 후원금 출연’ 등 대부분의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전형적인 거수기 사외이사이면서도, 유독 ‘불우이웃돕기성금 출연’에는 반대했다고 한다. 특히 그가 사외이사로 있던 2006년 포스코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투쟁하다가 집회 도중 사망한 하중근 건설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에는 침묵했다.

대표적인 적폐 정책인 규제프리존법을 적극 찬성한다고 나선 것도 눈꼴사납다. 규제프리존법은 이윤보다 안전이라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적 교훈에 어긋나는 데다가, 박근혜가 재벌 총수들에게 받은 돈이 뇌물이라는 혐의를 구성하는 법안의 하나다.

안철수의 최근 강조점은 경제·안보 위기를 대하는 지배계급의 처지를 옹호·대변하는 데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럴 때일수록 고통전가와 저항 역량 약화를 노리는 정부와 기업주들에 맞선 투쟁이 중요하다. 안철수의 국민통합론은 바로 그런 투쟁을 억누르는 미래를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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