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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에 맞서 싸웠던 여성들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이다. 이 날을 경축하며, 급진적 운동을 이끌었거나 여성해방과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 온 여성들의 말을 소개한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1759-1797)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불만의 먹이가 되어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가. 그들은 의사가 되거나, 농장을 경영하거나, 상점을 운영하거나, 독자적인 사업을 이용해 독립할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연약한 감수성에 짓눌린 채 풀이 죽어 있다. 한때 그들의 아름다움을 눈부시게 만들었던 바로 그 감수성이 이제는 그들의 아름다움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여성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적인 존재로 만들어졌고 여성이 얻는 모든 힘은 그들의 매력과 연약함에서 생긴다는 지배적인 견해 때문에 여성들은 한없이 초라해지고 온갖 종류의 근심 걱정과 슬픔에 빠진다. 그런 것들을 추적하다 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 여성들은 도대체 왜 창조됐을까? 누군가는 순결한 상태로 남아 있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여성들은 늘 어린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나지 않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유명한 저서 《여성의 권리 옹호》에서.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사람인 울스턴크래프트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보며 깊은 영감을 얻었다.

소저너 트루스 (1797-1883)

“남자들은 여자들이 마차를 탈 때 도와 줘야 하고, 도랑을 건널 때 부축해 줘야 하며, 어디서나 제일 좋은 자리를 여자들에게 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흙 웅덩이를 건널 때 나를 도와 주거나 나에게 제일 좋은 자리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를 보라! 내 팔을 보라! 나는 밭을 갈고, 씨 뿌리고, 수확한 것을 곳간에 채웠고, 어떤 남자도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남자만큼 일할 수 있고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을 때는) 남자만큼 먹을 수 있고 남자만큼 채찍질도 견딜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 나는 열세 명의 아이들을 낳았는데, 거의 다 노예로 팔려 갔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피 울부짖을 때, 예수님을 빼고는 아무도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

노예 출신의 소저너 트루쓰는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위선과 이중 잣대를 비판했다.

엘리자베스 드미트리에프 (1851-1910)

“파리가 봉쇄됐다. 파리가 포격당하고 있다. 대포의 굉음이 들리는가, 무장하라는 신성한 호소가 울려 퍼지는 것이 들리는가! 파리 시민들이여, 프랑스 대혁명기 여성의 후예들이여, 민중과 정의의 이름으로 베르사유로 행진했고, 국왕 루이를 포로로 잡았던 여성들이여 ― 프랑스 민중의 어머니이며 아내이자 누이인 우리들이 가난과 무지가 우리 아이들을 적으로 삼도록 놔둬야 하는가? 압제자들의 변덕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서로 죽이도록 놔둬야 하는가? 시민들이여, 결투가 시작됐다. 우리는 승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드미트리에프는 1871년 파리에서 이 선언을 발표했다. 노동자들은 파리를 장악하고 파리 코뮌을 건설했다. 그녀는 파리의 여성들을 조직하는 데서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에서 코뮌을 방어하며 모든 구습에 도전했다.

클라라 체트킨 (1857-1933)

“우리가 전쟁을 계속하는 것은 그것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투쟁이 아니라, 유산 계급들의 정치 권력에 대항하는 전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투쟁을 계속할 것이다.

그 투쟁의 목표는 언젠가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남녀 구분 없이 자본주의 사회 질서에 이렇게 외치며 도전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의지하고 있다, 당신들은 우리를 억압하고 있다, 그리고 당신들이 세운 건물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보라.’”

체트킨은 독일의 지도적 사회주의자였다. 그녀는 국제 여성의 날을 제정하자는 호소를 이끌었다.

엘리자베스 걸리 플린 (1890-1961)

“‘응접실의 여왕’은 ‘부엌의 하녀’와 어떤 공통점도 없다. 백화점 소유주의 아내는, 주당 5달러를 받는 점원에게 유일하게 열려 있는 출구가 성매매라는 것을 깨달은 17살 소녀에게 자매 같은 관심을 전혀 보여 주지 않는다.

남성들의 형제애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의 자매애도 노동자들에게는 공허한 속임수일 뿐이다. 그 모든 잘난 체하는 위선과 역겨운 감상주의 이면에는 계급 전쟁의 사악한 모습이 숨어 있다.”

플린은 전통을 깨고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모두를 조직한 전투적 노조인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의 지도적 조직자였다. 매카시의 마녀사냥이 절정에 달했던 1951년, 그녀는 2년 동안 투옥됐다.

실비아 팽커스트 (1882-1960)

“내가 이스트 엔드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들은 쇠약해진 아이들을 데리고 내게 다가왔다. 나는 환자의 눈에서 굶주림을 봤다. 그 때 나는 다시는 이전의 내 직업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여성 참정권 활동을 한 죄로 몸서리칠 만큼 야만적인 투옥과 강제 급식을 당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도해 왔다. 나 또한 투쟁을 벌여 왔고, 내 수명은 그 때문에 단축될 것이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있는데 당신 같은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잘못됐다.

자본주의는 잘못된 사회 체제이고 없어져야 한다. 나는 자본주의를 없애는 데 내 삶을 바칠 것이다.”

1920년 선동죄로 기소돼 법정에서 한 연설. 예술가이자 전투적 여성 참정권론자였던 팽커스트는 런던의 빈민가 이스트 엔드에서 여성들을 조직했다. 러시아 혁명에 고무받은 그녀는 가족[어머니를 포함해 팽커스트 집안의 여성들은 영국의 유명한 부르주아 페미니스트들이다 ― 편집자]과 결별하고 자신이 “볼셰비키임이 자랑스럽다”고 선언했다.

로자 룩셈부르크 (1871-1919)

“배반, 부도덕, 피바다, 탐욕 ― 이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이다.

문화, 철학, 윤리, 질서, 평화, 그리고 법치의 가식을 쓴 깨끗함과 단정함과 도덕이 아니라 게걸스러운 야수, 무질서한 악마의 연회, 문화와 인간성을 위협하는 역병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독일·프랑스·러시아·영국의 노동자들이 취중 몽상에서 깨어나 형제애 속에서 서로의 손을 굳게 잡고, 전쟁광들의 괴성과 자본주의 하이에나들의 소란스런 울음을 노동자들의 우렁찬 함성으로 압도하기 전까지 광기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유혈낭자한 지옥의 악몽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룩셈부르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 중 한 사람이고, 독일 사회주의 운동의 좌파를 이끌었다. 그녀는 이 글을 제1차세계대전 동안에 썼다.

아룬다티 로이 (1961- )

“우리가 모두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 프로젝트에 정말로 반대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시선을 이라크로 돌립시다. 우리는 점령에 반대하는 세계적 저항이 돼야 합니다. 우리의 저항은 미국의 이라크 점령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제국이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실제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행동을 뜻합니다. 그것은 병사들이 전투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 예비군들이 복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 노동자들이 배와 비행기에 무기 싣기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지금 전쟁중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룬다티 로이는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 경력이 있는 인도 소설가이며 자본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전 세계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다. 이 연설은 2004년 1월 세계사회포럼에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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