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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는 여성들이 말한다

● 박덕준 (전교조 여성위원장)

대부분의 여성 교사 노동자들은 맞벌이 부부인 경우가 많습니다. 직장인 학교도 다녀야 하지만 가정에서 살림도 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어요.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약 60퍼센트가 여성(전체 교사들 가운데 여성 비율은 훨씬 높아요)이지만, 전교조 간부 중 여성 비율은 훨씬 떨어져요. 이것은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교장이나 교감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근무평점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을 낮게 평가해요. 여성들이 집안일 등을 이유로 ‘칼퇴근’하는 것이 나쁘게 평가받는 이유가 되곤 하죠.
또 각 학교에 시간강사, 기간제 교사 같은 비정규직 교사 노동자들이 있고, 영양사, 행정실 회계보조사, 조리사, 전산보조 직원 등과 같은 분들이 학교 비정규직노동조합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교사와 학교 비정규직노조의 구성원들도 대체로 여성이 훨씬 많아요.
따라서 대학의 경우 학교 내에, 중고등학교 내에서는 지역 내에 탁아방을 설치해 줄 것을 교육부에 요구하고 있어요. 여성의 권리를 위한 이런 요구들을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역차별이 아니라 그 동안 여성들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열악한 현실에서 일해 왔는지를 반증해 주는 것일 뿐입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여성 억압은 여전히 존재하므로, 오늘날 국제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당연히 의미가 있어요. 남성을 이기고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죠. 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길에 여성들도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해야 합니다.

● 김경숙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대교지부 서울지회 준비팀장 )

저는 학습지 교사한 지 굉장히 오래됐어요. 1990년에 입사해서 16년 간 일해 왔어요. 근속연수로 치자면 회사에서 탑10에 들 정도인데 월급이 오히려 줄었어요. 지난 10년 간 정규직 임금이 10배 인상됐다면, 학습지 교사들은 오히려 10년 간 월급이 5분의 1로 줄어들었어요. 어떠한 보장(4대보험 같은)도 없고, 월급도 권리보장도 없고 회사가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해야 하는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일하고 있어요.
우리는 90퍼센트 이상이 여성이에요. 그런데도 모성보호는 하나도 안 되고 있어요. 회사는 그냥 우리를 소모품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아요. 임신하면 그냥 그 날로 계약해지돼요. 애낳고 다시 돌아오면 그 동안의 경력은 하나도 인정받지 못해요.
이런 일들은 여성노동을 비하시키는 일이에요. 출산율 저하가 사회적 문제라고 하지만 애 낳을 조건부터 사회가 만들어줘야 합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노동자라는 인식을 많이 느끼게 됐어요. 2003년에 학습지 업계에서 현장투쟁이 많이 폭발했어요. 노동청 앞에서 1년 동안 매주 한 번씩 시위했어요.
학습지 교사들은 평균 근무기간이 8개월밖에 안 되기 때문에 연속성을 갖기가 어려워요. 자본을 상대로 한번 파업해 보는 게 투쟁의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 현장투쟁이 한 차례 끝난 후에도 조합원을 꾸준히 관리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 라디카 (네팔 출신 이주 노동자)

1992년에 한국에 올 때는 TV에서 본 것처럼 크고 깨끗하고 안전한 공장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어요. 와 보니 우리가 일하는 공장은 매우 작고 대부분 지하에 있었어요. 네팔에서 대학 다니다 왔는데 여기 와서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사장이 월급도 안 주고 도망갔어요.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일하는데 여자라고 차별해요. 우리는 이주 여성 노동자니까 차별이 더 심하죠. 한국 여성들에게는 생리 휴가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거 전혀 없어요. 한국 사람들이 일 끝나고 가도 우리는 남아서 일하고, 쉬는 날도 나와서 일했어요.
추석 때 사장이 또 우리에게만 일을 시켰어요. 저와 한 남성 이주노동자가 일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죠. 근데 그 공장은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라인 전체가 멈추는 곳이어서 결국 사장은 다음부터 반드시 야간·휴일 근무를 하면 수당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처음에 동료들은 제 말을 믿지 않았는데, 진짜 돈이 나왔어요. 모두 깜짝 놀랐죠.
2003년 10월 정부가 이주노동자를 단속해 추방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부터 농성을 시작해 1년 가까이 했어요. 농성 처음 할 때는 너무 추웠어요. 우리는 세수도 못하고, 샤워도 못하고 그렇게 지냈어요.
우리 권리를 찾아야 하니까 힘들어도 버텼어요. 앞으로도 이주노동자들 계속 올 테니까, 내가 이 활동하다 잡혀도 지금 자리를 만들면 그 사람들은 지금보다 잘 지낼 수 있잖아요.
작년에 처음으로 여성의 날 집회에 갔어요. 여성의 날은 여성들의 날, 여성들의 축제였어요. 이 집회에서 우리는 이주 여성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어요. 또 한국의 여러 여성 노동자들의 상태와 문제도 알게 됐어요.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노동자이니 함께 싸워야 해요. 그래야 여성들의 문제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여성의 날에 한국 여성들과 이주 여성들이 함께 모일 거예요. 여기에 한국 남성 노동자들도 많은 관심 가져 줬으면 좋겠어요.

● 정금자 (서울대병원 간병인지부)

여성들이 많이 활동한다고 하지만 활동할 때 남녀 차별도 심하고 또 주부들이 일하는 일터가 너무 좁아요. 간병인 일터는 40·50·60대 여자 주부들이 마지막 갖는 일터인데, 급여가 너무 적어요. 최저임금도 안 돼요. 시급 1천6백60원, 8시간 일해서는 40~50만 원도 못 돼 이것으로 가정을 일굴 수 없으니까 자기 몸을 다 불태워서라도 24시간 일해야만 가정을 일굴 수 있어요.
여성들은 나약하다, 순종적이라는 얘기가 많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저는 지금 우리 여성 노동자들이 자랑스럽고 당당하다고 느껴요. 제 주변 우리 조합원들 80명이 다 여성이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걸 기쁨으로 해 내요.
2003년 8월 31일에 병원이 폐쇄된 뒤 다음 날 부터 투쟁을 시작했어요. 병원 현관 앞에서 단식 투쟁도 하고 2층 로비에서 철야 농성도 하다가 12월에 출입금지가처분을 당했어요. 우리는 12월 2일 인권위원회 점거농성을 했어요. 그 때 ‘다함께’랑 함께한 거 같아요.
2004년 2월에 노동청 점거 농성에 또 들어갔죠. 25일에 점거농성 들어갔다가 27일에 경찰력 투입으로 쫓겨났다가 4월 26일에 서울대병원 노조하고 (사측이) 교섭해서 이겼어요. 서울대병원처럼 온몸을 던져서 [비정규직 투쟁을] 하는 데가 없어요. 서울대병원 노조가 없으면 저희는 지탱 못해요. 우리는 특수고용직이라 노동 3권이 없어 교섭도 못해요.
간병인은 가장 힘없는 자들이었어요. 20년, 30년 직장에 다녀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전국에 20만 명이라는 거대한 숫자를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올려놓은 게 노동조합이에요. 노동조합은 이 땅의 가장 열악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직이기 때문에 그에 동참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자랑스럽고 당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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