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프랑스 대선이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독특한 점은 주요 양당인 공화당과 사회당 후보가 모두 죽을 쑤거나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중도’로 포장되지만 신자유주의자인 마크롱과 나치 후보인 마린 르펜과 급진좌파 후보인 장뤽 멜랑숑이 결선투표를 향한 경쟁 속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마린 르펜같은 ‘극우’ 후보가 권력을 넘보고 있는 상황에 대해 적잖은 사람이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르펜과 같은 파시스트가 프랑스 대선판을 뒤흔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무슬림 혐오 정서에 편승하고 이를 부추기며 자신의 지지기반을 다져 왔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워질 때마다 유럽의 지배계급은 실업과 복지 삭감 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이주 노동자와 그 후손들 탓으로 돌리고, 전쟁과 경제난을 피해 온 난민을 내쳤다. 또한 중동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부상하자 그들을 비방하기 위해서 오랫동안 무슬림 혐오를 부추겼다. 이 과정에서 지배계급은 이슬람 신앙이 ‘서구적 가치’에 기반한 ‘이성적’ 문명과 근본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믿음인 것처럼 원색적 비난을 해 왔다.

지배계급이 혐오를 부추긴 탓에 일부 평범한 사람들이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에서 비롯된 불만을 무슬림을 향해 표출하곤 한다. 이와 같은 무슬림 혐오에 기반하여 유럽 곳곳에서 극우 정당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우익 포퓰리스트들과 파시스트들은 그러한 정서를 한층 더 부추김으로써 지지세를 확대할 수 있었다.

세속주의를 둘러싼 혼란

물론 극우 정치세력이 혐오를 부추긴다고 해서 대중 속에서 무슬림에 대한 적개심이 자동으로 싹트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프랑스 좌파들이 우파가 조장하는 무슬림 혐오를 효과적으로 방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프랑스 좌파들의 약점은, ‘공화주의적 가치’의 일환인 ‘세속주의’를 명분으로 무슬림의 신앙의 자유를 공격하는 우파적 논리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세속주의는 국가와 종교 단체(이하 교회)의 분리를 의미하는 한에서만 진보적 가치다. 전근대사회에서 교회와 국가의 융합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구실을 하고, ‘이교도’나 ‘이단’에 대한 박해를 밀어붙였을 때에는 세속주의 원리를 옹호하는 것이 매우 진보적인 일이었다.

반면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세속주의 원리를 들이대는 것은 완전히 넌센스다. 다수가 이민자이거나 난민인 유럽의 무슬림은 국가권력을 장악하기는커녕 대부분 유럽 노동계급의 하층에 속한다. 그들은 유럽에서 가장 천대받는 집단이다. 그들은 차별적인 사법당국의 태도로 인해서 감옥 재소자 비율도 굉장히 높고, 실업·저임금에 시달리는 등 경제적 처우도 열악하다.

특히 프랑스에는 무슬림 이주민이 적잖을 뿐더러 특히 과거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계 이주민이 상당히 많다. 이들은 경제 위기의 속죄양이 돼 왔다. 지난해 여름 해변가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시키려고 했던 시도 역시 그 일환이었다.

물론 무슬림 여성에게 베일 착용을 권고하는 교리는 여성차별적 맥락에서 발생·유지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베일 착용의 의미를 수세기 전으로 소급해서 찾는 것은 몰역사적이다. 무엇보다 차별받는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긍정하고 자긍심을 드러내기 위해 베일을 쓰기를 선택하는 여성도 많다. 무슬림 여성의 베일 착용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서라고 변명하지만, 정작 베일 착용에 대한 적대적 분위기는 무슬림 여성에 대한 혐오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

따라서 천대받는 집단의 권리와 해방을 추구하는 좌파라면 모름지기 무슬림 여성이 자신의 복장을 선택할 권리를 옹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프랑스에서는 좌파들마저도 이슬람 문화가 ‘반계몽적’이라는 생각에 타협해 왔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멜랑숑도 이 부분에선 아쉬움이 크다. 물론 그는 우파들과는 다르다. 그는 이주민이 아니라 은행가들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그는 부르키니 착용 금지안과 그를 옹호하는 르펜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하지만 동시에, 부르키니 착용도 “도발적 행위”라며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드러냈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두 혁명적 좌파 조직 ‘노동자투쟁’(LO)과 반자본주의신당(NPA)도 이 문제에서 명확하지 못하다. NPA는 최근에는 무슬림 혐오에 맞서기 위한 운동을 건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지난 대선 때까지도 이슬람 여성의 베일 착용에 대해서 모호하거나 혼란스러운 입장을 내놓았었다. LO는 2004년 히잡이 “여성의 굴종”을 상징한다면서 히잡 착용 금지 법안에 찬동하기도 했다.

무슬림 혐오에 맞서기

김종환

그렇다면 좌파는 무슬림에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떻게 혐오에 맞서야 할까? 2000년대 초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건설될 때 영국의 전쟁저지연합의 경험은 배울 점이 많다. 당시 무슬림 공동체는 전쟁저지연합 안에서 다른 단체들과 긴밀하게 협조했다.

이는 결코 자동적인 과정이 아니었고, '독실한 무슬림들이 비무슬림과의 연대에 소극적일 것'이라거나 '무슬림과 함께하는 것은 여성 차별 세력에 타협하는 것'이라는 등 수많은 논쟁 거리가 있었다. 영국의 혁명적 좌파인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이 이런 논쟁에 개입하며 굳건하게 연대를 구축하려 노력한 덕분에 전쟁저지연합은 무슬림과 비무슬림이 함께하고,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이 시위를 주도하는 등 이전까지 가능하지 않다고 여긴 ‘아름다운 연대’가 이뤄질 수 있었다.

당시의 경험을 연구한 학자들은 "일각의 예상과 달리 반전 운동 기구 내 이견은 종교적 쟁점이 아니라 정치적 쟁점을 놓고 형성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종교적 외양을 넘어선 정치적 토론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 다른 학자는 이전까지 무슬림들만으로 차별에 맞선 운동이 벌어졌을 때와 비교했을 때, 전쟁저지연합의 반전 운동을 경험한 무슬림 청년들은 더 적극적으로 비무슬림들에게 연대를 요청하고 관계 맺으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뒤집어 보면, 프랑스 좌파들이 세속주의를 표방하며 히잡 등에 잘못된 태도를 취한 것이 프랑스에서 무슬림들과의 연대를 건설하는 데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을지 짐작할 수 있다.

세속주의에 대한 올바른 관점을 갖는 것은 무슬림 혐오를 물리치고 연대를 건설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그리고 무슬림과 비무슬림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나치 국민전선의 날개를 꺾을 결정적인 무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