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을 묻다》(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서해문집, 13,500원)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운동의 대표적인 슬로건이자 세월호 유가족들이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부탁하는 말이다. 참사는 숱하게 반복됐지만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자들(가해자들)은 참사에 대한 기억을 끊임없이 지우려 하기 때문이다.

《금요일엔 돌아오렴》,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쓴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의 신간 《재난을 묻다》는 우리의 머릿속에서 흐릿해진 대형 참사 일곱 건 ― 남영호 침몰, 화성 씨랜드 청소년수련의집 화재, 대구지하철 화재, 장성효사랑요양병원 화재, 춘천봉사활동 산사태, 여수국가산단 대림산업 폭발, 태안해병대캠프 참사 ― 에 대한 기억을 하나씩 되살린다. 과거의 참사들을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단지 우연적인 사고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는 각 참사의 유가족들을 직접 인터뷰한 내용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 정부와 검찰이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개인 과실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돈벌이 논리와 정부의 책임을 낱낱이 짚어 낸다. 각 참사의 구체적 조건들은 달랐지만, 책을 다 읽으면 반복되는 패턴이 보인다. 비용을 줄이려고 불법을 저지르는 기업, 뇌물을 받고 불법을 눈감아 주는 국가 관료, 참사가 벌어지면 피해자에게 보상금으로 재갈을 물리고 사태를 얼른 덮기에 바쁜 정부, 말단 직원에게 처벌이 쏠리고 고위 책임자일수록 책임을 덜 지는 모순, 항의하다가 연행되는 유가족 그리고 또 발생하는 참사 …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많은 사람들이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를 ‘살인마 기관사’의 탓으로 기억한다. 이 사건은 승객들이 열차 안에 갇혀 있는데도 기관사가 ‘마스터콘트롤키’를 뽑아 달아나는 바람에 인명 피해를 키웠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새 사실이 드러났음을 이 책은 말한다.

“전동차는 공기로 출입문을 여닫는데 기본적인 상태는 출입문이 닫혀 있는 겁니다. 열차를 연결하는 곳을 보면 출입문 개폐를 담당하는 공기 호스가 있습니다. 이것이 불연재가 아니었습니다. 화재에 의해서 공기 호스가 타 버리니 출입문이 저절로 닫힌 상태가 된 거죠. 이미 이때 키를 뽑는 것은 전체 전동차의 작동에는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인데 기관사는 어쨌든 사령의 지시대로 키를 뽑고 대피를 했습니다.”

전동차 내부 설비에 돈을 덜 투자한 대구지하철공사의 책임이 더 근본적이었던 것이다. 유가족단체인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원회’ 윤석기 위원장도 ‘방화범’과 ‘기관사’를 지우고 대구지하철 참사를 다시 들여다볼 것을 주문했다.

“안전 교육은 ‘전파교육’이라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모두가 받아야 하는 건데, 대표 한 명만 뽑아서 받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다는 뜻입니다. 이건 대구시장과 대구지하철공사 사장의 책임입니다. 현장 종사자들에게는 자의적인 판단을 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시명령 위반입니다.”

그럼에도 처벌은 방화범과 기관사에게 집중됐고 기소된 나머지 9명도 지하철 하급 직원들이었다.

한편 이 참사를 겪은 뒤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은 조합 설립 이래 최초로 파업에 나섰다. 이를 통해 1, 2호선의 안전요원 확충, 전동차 내장재 교체, 안전방재시설 확충 등의 성과를 얻었다. 당시 노조위원장이었던 이원준 씨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이 지하철 안전을 제대로 지키기 않고서는 시민의 안전도 지킬 수 없고, 조합원의 안전도 지킬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왜 노동조합이 임금이나 근로조건이 아닌 안전 문제로 파업을 하느냐’며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노조 위원장을 형사처벌했다. “지하철의 안전 문제가 지하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노동조합의 통찰과는 전혀 다른 판단이었다.”

춘천 봉사활동 산사태 참사

2011년 7월 춘천봉사활동 산사태의 경우는 희생자(인하대 학생들) 유가족들의 싸움이 인상적이다. 인하대 아이디어뱅크 동아리 학생들은 산사태 위험 지역에 만들어진 무허가 민박집에서 하룻밤 묵다가 참사를 당했다.

유가족들은 참사의 원인을 놓고 산사태 참사가 단지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것, 무허가 민박집을 방조하고 산사태 경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등 정부와 춘천시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1인 시위와 기자회견, 홍보전을 이어 갔다. 참사와 관련한 방대한 자료도 만들었다.

“정황 증거들이 충분히 있으니까 춘천시에서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든 말든 간에 우리(유가족)가 만든 내용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이게 사건의 진실이라고 설명을 하는 거죠. 일관되게 알리니까 사람들이 믿어 줘요. 우리가 주도권을 가지게 되는 거예요. 이걸 확실하게 해야 어떤 싸움을 하더라도 대응할 수 있어요.”

춘천 산사태 참사 유가족들은 투쟁 과정에서 연대의 중요성도 느꼈다. 지역 시민 사회단체와 공무원노조 해고 노동자들, 특히 인하대 학생들의 도움과 지지를 받았다. 춘천시청 앞에서 집회를 할 때 공무원들이 나와 ‘순수 유족이 아닌 사람이 왜 나서느냐’는 식으로 말을 하곤 했는데 유가족들도 처음엔 “그런 말에 반박하면서 싸우지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생기면서 달라졌다고 한다. 대책위 이름에서 ‘가족’을 떼고 다양한 연대 단위들을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온갖 이간질에도 불구하고 대책위는 단단하게 이어져 오고 있고, 매년 연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추모 행사를 연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맞서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독자에게 고민해 볼 것을 촉구하는 질문들을 남긴다. “오늘날 대구지하철은 안전해졌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대구지하철 참사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인가? 알고도 바꿀 수 없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죽은 이에 대한 추모와 산 자의 애도는 끊임없이 진정성이 의심되고 선별되는가?”

책을 다 읽고 나면 적어도 다음의 결론에는 확실히 도달할 수 있다. 남영호 침몰 사고 이래 37년이 지난 지금도 선박의 과적·과승을 제대로 단속할 수 없는 이유, 여수국가산업단지가 2백14번의 사고를 겪고도 2백15번째 대형 폭발 참사를 피하지 못한 이유, 이 모든 참사의 고위 책임자들일수록 책임을 안 지고 말단의 개인들만 처벌 받는 패턴이 반복되는 이유는 평범한 다수가 ‘안전불감증’에 걸렸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보다 돈을 우선하는 기업주와 언제나 그들의 편에 서는 국가 시스템 때문이었다. 국가는 기업주들이 참사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불법을 가려 줬고, 참사 이후에는 피해자들을 내팽개쳤다. 국가는 위험을 생산하는 자들과 철저하게 한통속이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또 다른 ‘세월호’를 잉태하고 있는 사회 시스템에 도전장을 내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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