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산업혁명’ 얘기와 논의가 유행이다. 2016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미래고용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향후 5년간 선진국과 신흥국 15개국에서 일자리가 5백10만 개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알파고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긴 것을 보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부쩍 늘었다.

일각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활용 증대로 인간이 힘들고 단조로운 노동에서 해방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제시한다. 이들은 2008년의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황과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로봇 도입과 자동화로 생산성이 증대해 새로운 도약이 마련될 것처럼 기대한다. 

그러나 이런 낙관적 전망보다는 우려가 더 많다. 로봇과 인공지능 활용이 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이강국 교수는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일부 노동자들의 실업과 불평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연구와 적용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 효과를 과장해서는 안 된다. 이미 1960~80년대 앨빈 토플러나 다니엘 벨 같은 ‘미래학자’들이 ‘지식 중심 구조’, ‘초산업사회’ 등을 주장하며 과장한 현상들을 보면, 최근의 ‘4차 산업혁명’ 얘기는 오래된 레코드가 반복되는 진부하고 한물간 뻥튀기로 보인다. 

장하준 교수의 지적을 경청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미칠 영향은 전기의 발명이나 고속도로·철도의 개발과 비슷하고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인터넷이 우리 삶에 끼친 영향은 세탁기의 발명보다 작다고 한다.

훨씬 더 일찍이 마르크스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생산에 적용되면서 노동자의 노동과 일자리 그리고 자본주의 동학 등에 미칠 영향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올해 출간 1백50주년이 되는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기계의 도입이 노동자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임을 지적했다. 

“기계 그 자체는 노동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시간을 연장시키며, 기계 그 자체는 노동을 경감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노동강도를 높이며, 기계 그 자체는 자연력에 대한 인간의 승리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인간을 자연력의 노예로 만들며, 기계 그 자체는 생산자의 부를 증대시키지만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면 생산자를 빈민으로 만든다.”

마르크스는 기계의 도입으로 대공장 제도가 확립되면서 매뉴팩처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었다고 지적하지만, 전체 일자리가 준다고는 보지 않았다. 한 산업부문에서 기계 사용이 확대돼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이 부문에 기계나 원료 등을 공급하는 다른 부문들에서도 생산이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소 노동자들 이들이 대량 해고 위기에 놓인 것은 배가 필요 없어서도 아니고, 배를 만드는 ‘4차’ 기술이 발명되서도 아니다

일자리 감소?

실제로 자본주의 시스템은 기술 발전과 기계 도입에 대해 역동적인 방식으로 대응해 왔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 반드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첫째, 자동화 설비가 도입된 산업에서 계속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는 경우다. 제임스 베센의 연구를 보면, 미국에서는 1970년대부터 자동인출기(ATM)가 도입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40만 개까지 늘었지만, 은행 텔러(창구 직원)는 감소하지 않았다. 자동화될 수 없는 여러 업무를 여전히 창구 직원들이 처리해야 했을 뿐 아니라, 자동인출기 덕분에 창구 직원들이 다른 업무를 처리할 역량과 기회가 늘어나자, 은행은 지점을 확장해 시장점유율을 늘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자동화되는 산업 부문에 기계를 공급하기 위해 일자리가 생기는 경우다. 1980년대는 인쇄업 분야에서 컴퓨터 조판이 활자 조판을 대체하던 시대였다. 그때 수많은 활자 조판공들이 사라졌지만 그 대신 컴퓨터 생산 노동자와 컴퓨터 조판 프로그램 제작 노동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셋째, 서로 상관없는 분야에서 새 일자리가 생겨나는 경우다. 1800년대 초반에는 미국 인구의 80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1900년대에 이르면 농업 인구는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 40퍼센트에 이르렀고, 오늘날에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해도 인구의 1.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례는 농업에서 기계화의 진전으로 농업 종사자의 상당수가 계속 실직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 부문으로 흡수됐음을 뜻한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실제 역사가 보여 주는 바는, 기계의 도입과 자동화 자체보다는 호황인가 불황인가 하는 경제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고용주들의 구조조정이 일자리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불황기에 접어들면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해 이윤을 보충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윤율 하락의 경향적 법칙

이전의 기계화·자동화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4차 산업혁명’도 노동자들의 노동을 줄이고, 그 대신 설비·기계·로봇 등과 같은 생산요소들로 대체하는 것이다.(앞서 봤듯이 이것은 자본 축적에 견줘 상대적인 노동자 수를 줄이는 것이지 노동자의 절대적 수가 감소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생산요소들은 노동자들의 산 노동을 만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죽은 노동일 뿐이다.) 아직까지 인공지능과 로봇만으로 생산을 수행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런 시대가 올 가능성은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생산방식이 아무리 고도화되더라도 죽은 노동(기계와 로봇 등)은 산 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한 다음 말처럼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변한다. “부르주아지는 생산도구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고는, 그리하여 생산관계와 그것을 포함하는 사회관계 전체를 끊임없이 변혁하지 않고는 존재하지 못한다. … 생산을 끊임없이 변혁하기, 사회적 조건을 모두 끊임없이 교란하기, 불안정과 동요를 지속시키기가 부르주아지의 시대를 다른 모든 시대와 구분해 준다.” 

‘4차 산업혁명’론이 과장하는 현실을 냉정히 살펴보면, 자본이 노동에 의존한다는 기본 전제조건이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공지능·로봇 등에 대한 투자를 확대한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의 진정한 장벽은 자본 자체”라고 마르크스가 말한 이윤율 하락 경향을 심화시킨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자본가들이 얻을 수 있는 총이윤은 그들이 착취하는 노동자들의 숫자와 착취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어떤 자본가가 경쟁 자본가보다 노동자한테서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면 기계와 원재료 축적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만약 이윤의 양(다시 말해 총고용)이 정해진 상황에서 투자량이 증가한다면, 투자에 대한 수익, 즉 “이윤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결국 자본주의가 산 노동보다 기계와 로봇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사용할 경우 전체 자본가들의 수익성은 하락하는 경향이 있게 된다. 자본주의가 이런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외부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의 동역학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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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은 기본소득?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대안이 제안된다. 노동당 장흥배 정책실장은 “일자리 문제로만 본다면 4차 산업혁명은 18세기 후반 남성 숙련 노동자들을 위협했던 기계처럼 거대한 재앙”이라며 “4차 산업혁명이 시장소득인 임금에 미칠 영향은 명약관화하”므로 결국 “4차 산업혁명은 기본소득을 불가피한 요청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서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전제는 그릇된 것이라고 우리가 위에서 논의했다. 여기서는 노동력 비용인 임금 축소를 불가피한 것으로 전제하고 기본소득으로 이를 대체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의문에 붙이고자 한다. 필자는 기본소득의 취지와 정신에 공감한다. 특히, 형편없는 복지 때문에라도 기본소득이 도입되는 것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하지만 임금 감소를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노동력 시장에서 노동자 저항의 중요성과 의미를 과소평가하게 될 수 있다. 

산업현장에서 자본가들이 경제위기를 핑계로, 또 새로 도입한 로봇이나 자동공정 라인을 빌미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임금을 삭감하거나 노동강도를 높이려 한다면 이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고 어쩌면 기본소득 도입보다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