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열흘 앞둔 주말 저녁, 광화문 광장에는 1만여 촛불이 타올랐다.(주최측 발표: 낮 사전행사부터 연인원 5만 명) 정치권에 촛불 민심을 다시 한 번 분명히 전하러 나온 것이다.

애초에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은 세월호 3주기에 맞춘 지난 4월 15일을 마지막 촛불집회로 계획했다. 그런데 촛불 덕분에 열린 조기 대선인데도 촛불의 열망이 제대로 대변되기는커녕 무시되는 듯한 상황에서 한 번 더 집회(제23차 범국민행동의 날)를 열게 된 것이다.

후보를 낼 자격조차 없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는 사기가 떨어져 흩어진 우익들을 재결집시키려고 계산된 막말의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다. 홍준표는 심지어 오늘 촛불집회의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하기도 했다.(물론 기각됐다.) 이 에피소드는 새누리당의 제1 잔당인 자유한국당이 일소해야 할 제1의 적폐세력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을 뿐이다.(최근의 내홍을 보면, 바른정당도 자유당과 별 다를 바 없는 새누리당 잔당 세력일 뿐이다.)

그런데도 촛불 덕분에 당선 유력 후보가 된 정치인들의 행태는 한심할 지경이다. 민주당 문재인은 강간모의범 출신인 홍준표에게 사퇴하라는 말조차 하질 못한다. 도리어 성소수자 혐오 발언으로 실망만 줬다. 

그 틈에 박근혜의 제1적폐 인물인 황교안이 이미 심판 받은 정권의 적폐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주 초 황교안은 도둑 같이 사드를 배치했다.

당연히 이번 대선이 촛불 대선이 돼야 하고, 박근혜의 하수인 출신들이 찌그러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촛불들에게 이런 상황은 분통 터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황교안이 있는 총리공관으로 행진할 때 가장 소리가 컸던 구호는 단연 “황교안을 구속하라!”였다.(홍준표 사퇴 얘긴 선거법 문제로 직접 거론 되진 않은 듯하다.) 사실 황교안도 세월호 수사 방해 의혹,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수사 방해 의혹 등 수사 대상이 되는 게 마땅하다.

오늘 사전 집회로 열린 416연대 주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촉구대회'에서는 새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최우선적 적폐 청산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너무 당연한 요구다.

비록 분통 터지는 상황이지만, 박근혜 정권 퇴진 촛불 운동의 여진은 대선과 정치권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다. 보수 후보들이 사분오열해 자중지란을 겪고 겨우 막말과 색깔론에 의존해 집토끼 챙기기에 여념이 없다. 색깔론과 반노동 발언,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별로 먹히질 않는다. 정권 교체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지고 있고, 진보정당 후보가 약진하고 있다. 재판을 기다리는 박근혜는 변호인단 꾸리기도 벅차다. 이재용은 유죄를 피하려고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을 잠시 멈춰야 했다.

이 나라 지배자들이 지난해 꿈꾸었던 2017년을 바꿔 버리고, 판을 흔든 건 촛불이다. 그럼에도 촛불의 적폐 청산과 개혁 염원이 쉽게 실현되지 않는 것은 이 신문이 일찍이 지적했듯이, 운동이 더 깊은 사회 구조의 문제를 건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시간과 모색, 지난한 투쟁과 논쟁이 필요하다. 힘과 조직을 갖춘 조직 노동계급이 더 나서야 한다.

이제 열흘 후 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면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은 종료하겠지만, 적폐 청산과 사회 변화의 염원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세월호, 노동개악 폐기, 사드 배치 철회, 백남기 농민 사망 등 반민주 적폐 책임자 처벌, 양심수 석방, 차별과 불평등 없는 사회 만들기 등등. 몇 줄로 정리하기 힘든 문제들이 이 광장에서 제기됐다.

오늘 집회는 촛불이 한창일 때보다 규모가 확 줄어서 퇴진 운동이 마무리되고 있음을 확인해 줬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들을 위한 투쟁의 불씨는 남아 있음도 함께 보여 줬다. 차기 정권이 개혁 열망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불씨는 다시 타오를 수 있다. 박근혜를 쫓아낸 대중은 자랑스런 촛불의 기억을 쉽게 추억의 사진첩으로 넘기지 않을 것이다. 불평등과 부정의한 사회를 바꾸려는 열망과 투지를 눈치보며 무기력하게 물러서는 일상에 쉽게 묻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즉, 이 운동의 시작 때 그랬던 것처럼 대중의 열망과 힘을 제대로 표현하고 발휘하게 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치와 전략이 계속해서 중요하다.

본대회

광화문을 밝힌 스물세번째 촛불들의 눈빛에는 “봄이 왔지만 아직 봄 같지 않은”(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작금의 상황에 대한 분노가 흘렀다.

1천6백만 민중이 광장을 지켜 무도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리고 ‘촛불 대선’을 치르게 됐지만, 사람들은 “대통령선거 날짜 앞당기자고 촛불을 들었”(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던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촛불을 대변해 정권 교체를 하겠다는 대선 후보들이라면 “곡기를 끊고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밀[고] …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는 약자들의 손을 잡[아야]”(최진미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하는데도 외려 촛불의 요구와 염원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에 분노했다.

그 때문에, 오후 7시에 시작된 범국민행동의 날 본대회의 문을 연 광화문 고공농성단의 전화 연결 발언과, “1천만 명의 비정규직이 더 이상 차별받고 억압받지 않는, 촛불이 원하는 세상 만드는데 앞장서겠”다는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의 발언이 큰 박수를 받았다.

분노는 도둑처럼 자행된 사드 기습 배치 때문이기도 했다. 4월 26일 새벽 경찰 1만여 명이 성주 소성리에서 주민들과 연대하러 온 사람들을 짓밟는 장면이 영상으로 흘러나오자, 대열 곳곳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훔쳤다. “1만여 명의 군과 경찰이 … 불과 1백 명도 안 되는 주민들을 상대로 … 계엄령이 내린 듯한”(강해윤 원불교비대위 교무) 폭력 진압 작전을 펼치는 모습, 오열하는 주민들을 마치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촬영하며 유유히 지나가는 미군의 모습이 무대 영상막에 펼쳐지자, 분노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촛불이 계속 외쳐 온 “사드 말고 평화 오라”는 구호가 다시금 광장을 울렸다.

대선 후보들의 입에서 나오는 혐오스런 발언들, 적폐 청산은커녕 “적폐 중의 적폐”인 후보들에 대한 규탄도 이어졌다. 특히 ‘돼지발정제 후보’ 홍준표를 최진미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가 신랄하게 비판했을 때 집회 참가자들은 크게 환호했다.

또,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문재인의 모욕적인 발언에 대한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의 발언에도 큰 박수와 따뜻한 연대가 쏟아졌다. 광장은, “그토록 청산하자고 외쳤던 혐오를 [퍼뜨리고] … 성소수자들이 자기 존엄을 위해 싸워온 시간을” 무시하는 문재인보다 “매주 거리로 나와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쳤”던 성소수자들의 편이었다.

광장은 또한 비극을 기억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홍준표는 ‘부모님 상도 3년이 지나면 탈상한다’며 세월호 참사를 능멸했지만, 촛불의 제1 요구는 비극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바로 그래서, 고(故) 이한빛PD의 어머니 김혜영 님이 “3년 넘게 온갖 상처 속에서도 버티며 이 땅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호, 생명을 존중 받고자 거대한 기업과 싸우는 반올림, 무자비한 정권의 폭력 아래서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백남기 씨의 영혼들을 생각하며 … 거대한 괴물인 재벌기업과의 힘겨운 싸움”에 대한 결의를 밝힌 것이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이다. 고(故) 이한빛PD는 tvN의 정규직 PD로, ‘혼술남녀’에 조연출로 참여하며 목도한 비정규직 해고와 천대에 비관해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회에는 세월호가 뭍에 돌아온 3월 31일에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화물선 스텔라데이지호에 탑승했던 실종자 가족들도 참가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제2의 세월호로, 인재가 낳은 참사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음을,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들을 처벌하는 일은 이런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실종자 가족들이 집회 대열 한가운데에서 오열하는 모습에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혔다.(세월호 유가족들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은 집회 후 함께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점에서 오늘 집회는, 박근혜 퇴진 운동이 박근혜를 감옥으로 보낸 이후에도, “누가 대통령이 되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계속 [싸워] 나아갈”(꽃다지 정윤경) 것임을, ‘촛불 대선’을 만들어 낸 광장의 열기는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본대회가 끝나고 행진에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촛불이 가르쳐 주었[듯] …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꿈을 실현[하는 것은]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만 … 최선을 다해야 한다”(김혜영 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행진

집회가 끝나고 1천여 명이 총리 공관 앞으로 행진했다. 일찍이 박근혜와 함께 쇠고랑을 찼어야 했을 황교안이 적폐를 밀어붙이는 데 대한 분노가 매우 컸다. 특히 참가자들은, 황교안이 사드를 도둑 같이 밀어붙인 것을 소리 높여 규탄했다.

"사드 배치 철회하라!" "비정규직 철폐하라!" "노동개악 폐기하라!" "세월호 책임자 처벌하라!"

뭐니뭐니해도 "황교안을 구속하라"는 구호를 외칠 때 가장 목청이 컸다.

방송차에서 발언한 김영익 노동자연대 활동가는 황교안에게 "또 다른 죄가 추가됐다"며 "한반도를 미중 갈등과 위험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황교안은 당장 구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트럼프가 한국 정부에 10억 달러를 내라고 한 것에 대해서도 "억지로 싫다는 물건 떠넘기고 돈 내라고 하는 사기꾼 심보"라고 일침을 놓았다.

참가자들은 촛불 대선에서 혐오 발언이 난무하는 것도 비판하며, "차별에 반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동성애 혐오 반대한다"는 구호도 함께 외쳤다. 

광장의 목소리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제공)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퇴진행동을 대변해)

반갑습니다. 지난 6개월 간 광장에서 함께 촛불을 들었던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 최종진입니다.

답답합니다. 

3월 10일 박근혜를 끌어내린 지 50일이 지났습니다. 대한민국에 희망의 봄이 열렸습니까? 광장에 모이신 시민 여러분, 진짜 봄을 만끽하고 계십니까?

춘래불사춘이라고 합니다. 봄은 왔지만 우리는 여전히 봄을 느끼지 못합니다. 

1,700만 촛불혁명이 만든 조기대선입니다. 그런데 촛불민심은 사라지고 권력다툼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적폐청산과 과감한 사회대개혁의 청사진은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눈치 보며 퇴행하는 대선주자들의 모습만 보입니다. 

우리가 대통령선거 날짜 앞당기자고 촛불을 들었습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지난 26일 새벽 미국과 황교안이 성주에 사드장비를 도둑놈처럼 몰래 반입했습니다. 

무려 8000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되었고, 70, 80된 주민들을 폭력으로 짓밟고 연행했습니다. 이제는 사드비용으로 10억불을 우리보고 부담하라고 협박합니다. 개탄스런 상황입니다. 

그저께부터 이곳 광장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한 원불교 교무님들에게 반드시 사드배치 철회시키자는 지지와 연대의 박수와 함성 보내주십시요.

시민 여러분. 저 뒤 광화문 4거리 광고탑을 봐주십시요. 

6명의 노동자들이 16일째 고공단식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조를 만들었단 이유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 정리해고 된 노동자들입니다. 노조를 만들었단 이유로 한 순간에 해고되는 나라가 정상입니까? 

2017년도 대한민국의 노동자의 권리는 1960, 70년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월 200만 원도 못 받는 노동자가 940만명인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편의점에서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허기를 메우는 청년들, 대기업 엘지 유플러스에서 고3실습생이 극심한 업무스트레스로 꽃다운 나이에 자살을 하는 나라에 지금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나라 바꾸자고 촛불 들지 않았습니까? 

비정규직 없애라, 정리해고 하지마라, 최저임금 만원으로 올려라. 

노동조합도 못하게 하는 노동법 싹 바꿔라. 이게 촛불의 요구고 촛불민심 아닙니까? 

아직 청산해야할 적폐가 너무나 많습니다. 

교활한 우병우는 구속되지 않았고, 최태원, 정몽구 같은 재벌총수 범죄자들도 활개치고 있습니다. 썩어빠진 정치검찰 개혁해야 합니다. 

황교안은 언론장악을 위해 알박기 인사를 강행했습니다.

박근혜와 함께 나라를 말아먹는데 부역한 자가 촛불민심을 민주노총, 좌파단체의 민중혁명이라고 매도하고, 세월호 추모, 진실규명에 대해 3년 해먹었으면 됐다는 등 막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무덤 속에 들어가야지 않습니까?

우리 삶이 바뀌어야 진짜 촛불혁명이고, 우리 삶을 바꾸는 대통령선거가 되어야 합니다.

촛불든 지 6개월이고, 박근혜 쫓아낸 지 50일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촛불이 꺼지고 약해지면 세상은 거꾸로 갑니다. 세상을 바꿔나가는 건 훌륭한 대통령이 아니고, 금배지 반짝이는 국회의원도 아니고 1700만 촛불의 주인공 바로 우리들입니다. 

작년 11월 12일 첫 100만 민중총궐기를 열었듯이 민주노총이 다시 앞장서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적폐를 청산하는데 앞장서겠습니다. 

5월 9일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2018년도에 최저임금 1만 원이 되도록 당당히 요구하고, 천만 명의 비정규직이 더 이상 차별받고 억압받지 않는 촛불이 원하는 세상 만드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우리는 박근혜 없는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부패한 권력, 관료들을 개혁하고, 적폐를 청산하고, 노동자, 서민들이 잘 사는 사회대개혁을 위해 끝까지 함께합시다.

김혜영 고(故) 이한빛 PD 어머님 

저는 노량진 공시생의 애환을 그린 tvN의 혼술남녀에서 신입 조연출이었으나 종방연 다음날인 2016년 10월 26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이한빛 PD의 엄마 김혜영입니다.

아직도 스물 일곱살 아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인정하는 게 두려워 피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멈춘 채 가슴 한가운데 뜨거운 불덩이를 얹고 살아온 지난 6개월은 인간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3년 넘게 온갖 상처 속에서도 버티며 이 땅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온 세월호, 생명을 존중받고자 거대한 기업과 싸우는 반올림, 무자비한 정권의 폭력 아래서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겪어야 했던 백남기씨의 영혼들을 생각하며 지난 4월 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용기를 내어 아들의 죽음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였습니다. 한빛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CJ E&M이 인정해야 하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고 한빛처럼 성실하고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사회에 따뜻한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을 만들어 힘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겠다고 PD가 되었습니다. 아들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대학 때부터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빨리 적금을 들라는 말에 월급타면 꼭 하고 싶었다며 12월까지는 세월호, KTX 승무원, 기륭전자, 빈곤사회연대, 사회진보연대 등에 후원금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정규직이지만 혼술남녀 촬영 중에 비정규직 스텝을 대폭 잘라내는 잔인함에 분노했습니다. 그들의 아픔에 같이할 수 없음에 힘들어했습니다.

아들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콘텐츠를 만든다며 뒤에서는 청년들의 열정을 착취하는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관행을 개선하고자 했습니다. "하루 20시간이 넘는 노동에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떠미는 것이 제가 제일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라고 유서에 썼습니다. 한빛을 아는 친구들은 부지런하고 책임감 강하고 따뜻하고 사회적 약자에 늘 관심을 기울이던 사람으로 기억하는데 CJ E&M은 죽음에 대해 개인적인 문제라고 매도했습니다.

그들은 괴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CJ E&M의 조문을 거부하며 줄곧 요구했던 두 가지는 진상규명을 통한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를 통해 행복한 일터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과라는 것은 상처받은 사람에게 직접적이고 진실되게 해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되지 않게 하겠다는 약속까지 포함돼야 합니다.

비록 거대한 괴물인 재벌기업과의 힘겨운 싸움이 되겠지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촛불혁명이 가르쳐주었으니까요. 4월 18일 이후 뜻밖에 많은 청년들과 시민들이 격려해주시고 힘을 실어주셨습니다. 우리 가족, 내 아들만의 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아들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킬 것입니다.

CJ E&M의 진심어린 사과를 받아내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특히 희망을 갖고 성실히 살아가는 청년들이 행복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일터가 될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

성소수자 이슈가 이렇게 뜨거운 적도 없던 것 같습니다. 준비하는 분들도 성소수자가 발언한다고 해서 우려가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최근 성소수자들은 촛불대선후보들에게서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동성애가 에이즈 주범이다, 동성애를 반대한다, 동성애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주장들이었죠.

저는 성소수자로 정체화한 이후 계속해서 커밍아웃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싸우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토론회를 보면서 동성애를 욕하는 모습을 볼 땐 존재 자체가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만 그런 기분이 아닙니다. 많은 성소수자들은 지지하는 후보가 자신을 부정하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과 고통을 호소합니다. 그토록 청산하자고 외쳤던 혐오를 촛불이 세운 대선에 후보들이 퍼뜨리고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이 자기 존엄을 위해 싸워온 시간을 무너뜨립니다.

우리가 이런 변화를 보자고 촛불을 들었나요. 성소수자들은 매주 거리로 나와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는 적폐를 청산하자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변화를 요구할 시간도 부족한 지금, 성소수자는 공격당합니다. 여러분, 지금 무고한 군인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구속되고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수십 명의 동성애자 군인이 표적 수사되고 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들을 색출하라 지시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동성애 반대의 현실입니다. 한 후보의 동성애 반대발언에 항의행동했던 성소수자들은 행사가 끝나고 폭력적으로 연행되었습니다.

혐오는 멀쩡한 사람도 쉽게 짓밟습니다. 그런데도 성소수자 권리는 시기상조라고 합니다. 합의가 필요한 문제라고 합니다. 시기상조의 20년 동안 성소수자는 차별과 혐오를 견디며 생존했습니다. 그동안 정부와 대통령, 정치인들은 합의를 위해 무엇을 노력했습니까. 막연한 나중을 약속하지 말고, 지금 당장 우리의 요구를 들으십시오.

혐오는 인권을 후퇴시킵니다. 인권을 미루면 민주주의도 멀어집니다. 차별로부터 안전을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대선을 앞당겼습니다. 차기 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합니다. 적폐는 에이즈혐오를 부추겼지만, 촛불대통령은 에이즈 감염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낙인을 해소해야 합니다. 군대 내 동성애자를 반대하지 말고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죄화하는 군형법상 동성애처벌법을 폐지해야 합니다. 지지율이 중요한 전문가들은 정치공학을 앞세워 혐오를 사소하게 취급하지만,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면 대선후보들의 반인권적 발언은 없었을 것입니다. 인권은 목숨입니다. 인권의 가치를 바로 세웁시다. 성소수자 인권은 차별받고 배제당하는 모두의 존엄과 보편적인 인권의 가치로 연결됩니다. 대선 이후에도 여러분들과 함께 끝까지 민주주의와 우리의 인권을 요구하고 행동하면 좋겠습니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성소수자 혐오를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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