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노인 문제:
장수를 재앙으로 만든 사회

문재인과 주요 대선 후보들은 이번 대선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노인 문제’ 해결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기초연금 인상, 치매 지원 센터 설립, 의료비 감면 혜택 확대 등. 이는 일차적으로는 크게 늘어난 노인들의 투표를 의식한 것이다.

전체 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 사이에 빠르게 늘었다. 출산율 저하도 있지만 절대 수로도 노인은 크게 늘었다. 이번 대선에서 60세 이상 유권자는 전체의 24.4퍼센트로 1천만 명이 넘는다. 초등학생의 눈으로 보면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장수의 축복을 누리게 됐다는 뜻일 게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에서 장수는 축복은커녕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노후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생활 수준 하락을 뜻한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8.8퍼센트로 OECD 회원국 중 압도적 1위다(그림 1). 연금 등 노후 소득 보장 제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데다, 경제 위기로 자식들에게 의존하기도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OECD 국가들에서 노인 소득이 대개 공적이전(연금 등)으로 충당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사적이전(자식 용돈 등)과 근로소득에 의존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그림 2)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 노인의 58.5퍼센트는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직접 마련하고 있다.

그림 1. OECD 국가들의 노인빈곤율. 자료 출처 OECD

그래서 한국의 노인 고용률은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 이상 높다. 2015년 기준 한국의 75세 이상 고용률은 17.9퍼센트로 압도적 1위인데 OECD 평균은 4.8퍼센트고 한국과 멕시코를 제외하면 모두 한자리 수다. 65세 이상 고용률도 30.6퍼센트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그림 2. 노인 가구의 소득 구성

이처럼 열악한 처지의 노인들이 일하는 곳은 대개 경비⋅청소⋅식당 등 저임금 저질 일자리다. 전임 정부들이 노인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약속했지만 애당초 진지한 약속도 아니었던 데다 노인 고용을 대폭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노화로 인한 문제뿐 아니라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고급 숙련 기술로 여겨지던 기술이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노인 일자리가 필요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일하지 않아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도록 정부가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노화에 따른 병원비 지출은 노인들을 헤어날 수 없는 생활고에 빠뜨린다. 생명보험협회와 보건복지부 등의 조사에 따르면 평생 지출하는 병원비의 절반 이상을 65세 이후에 지출한다. 노인 1인당 평균 연간 3백30만 원 수준이다. 특히 고령화와 함께 늘어난 치매는 암보다 두려운 병이다. 사회가 뒷받침해 주지 않는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비참해지거나 가족이 비참해지거나 둘 다이거나, 더 나은 선택지는 없다.

아픈 몸을 이끌고 저질 일자리에 시달리며, 자식들 눈치 보느라 아쉬운 소리도 못하는 삶은 이내 격리나 고립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어느덧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노인요양시설은 사실상 수용소 수준이다. 멀쩡한 사람도 한번 들어가면 집에 돌아오기 어려워 보이는 환경 때문에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려 하는 노인들은 자살하거나 고독사하기 일쑤다. 한국의 노인자살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지난 어버이날에도 80대 노인이 죽은 채 발견됐다.

△성북동 고물상에 폐지와 고물을 팔러가는 할머니 ⓒ조승진
이날 할머니가 새벽 5시부터 10시간 동안 폐지와 고물을 모아 받은 돈은 고작 4천 원이다 ⓒ조승진

물론 노인 문제를 단순히 소득 문제로 환원할 수는 없다. 젊은 시절 해방과 한국전쟁, 냉전과 군사독재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겪은 노인들 중 상당수는 보수적 세계관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특히 집단적 저항의 경험이 없는 이들에게 역사적 경험이란 대체로 국가가 유포하는 각종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기 쉽다. 공동체의 해체와 열악한 복지를 보완하는 구실을 해 온 종교 단체의 영향력이 노인들 사이에서는 대단히 큰데 그럴 능력이 있는 일부 대형 종교 단체들도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는 토대가 돼 왔다. 1990년대 이후 노인들을 더욱 곤란한 처지로 내 몬 경제 위기와 박정희 시절 고속 성장이 대조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노인들이 ‘태극기 집회’를 비롯해 보수 우익이 주도하는 집회에 쉽사리 동원되는 것은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노인 문제의 밑바탕에 빈곤과 이로 인해 더욱 심화하는 소외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또한 어느덧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노동자 투쟁을 이끈 세대가 노년기에 진입한 것은 앞으로 노인들의 정치 성향이 예전과 달라질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문재인은 노인들과 장차 노인이 될 노동자들, 그들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의 청년들을 의식해 여러가지 공약을 내놓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워 보인다. 치매지원센터 ‘증설’, 국공립요양시설 ‘확대’ 등 공약 자체도 모호한 데다 재원마련 대책도 없다. 박근혜와 마찬가지로 한사코 부자 증세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지만 그래봤자 ‘최저’ 생계비의 절반도 안 된다. 게다가 지금도 국내외 자본가들은 한국의 연금 제도를 더욱 ‘시장 친화적’으로 만들려 한다. 노인 수백만 명을 빈곤에 허덕이게 내버려둔 정부가 삼성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 기금 수천억 원을 탕진한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난 2월 23일 국민연금연구원은 보험료는 더 오래 내고(64세까지) 연금은 더 늦게 받으라는(67세부터) 개악안을 내놓았다.(관련기사 ‘공무원연금 개악을 지렛대로 국민연금도 개악하려는 정부’)

게다가 문재인이 청산하겠다는 적폐에 민주당 집권 시절의 정책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런데 역대 정부 중 연금 개악에 가장 앞장 선 정부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다. 특히 2007년 개악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60퍼센트에서 40퍼센트로 무려 3분의 1이나 삭감됐다. 만연한 실업과 조기 퇴직, 사각지대 때문에 실제 소득대체율은 2050년이 넘어도 20퍼센트 안팎에 머물 전망이다. 2040년이 돼도 공적연금 수급자는 노인인구의 절반에 불과할 것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국고 지원도 언제 끝낼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현행 건강보험 제도는 전체 보험료 수입의 20퍼센트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돼 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흑자를 기록했다는 이유로 이를 중단하려 하는 것이다. 현재 건강보험 보장률(전체 병원비 중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비율)은 60퍼센트를 조금 넘는 수준인데 이를 개선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보건복지부는 되레 피부양자 기준을 강화해 퇴직 후에도 보험료를 계속 내도록 하는 건강보험료 개편안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가 노인 복지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취임과 동시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인 복지 삭감 정책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외 자본가들과 정부 관료들의 압력을 단호히 뿌리쳐야 하는데, 민주당의 지지 기반과 예전 집권 시절을 생각하면 스스로 그렇게 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왜 ‘민주’ 정부조차 이토록 노인들에게 가혹할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복지는 모순적인 구실을 한다. 한편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삶과 노후를 지키기 위해 복지 확대를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쓰고 내다 버리는 자본가들 아래에서 오래 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는 오랜 세월에 걸친 노동자 투쟁의 성과이기도 하다. 전국민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제도가 시행된 것도 바로 1987년 이듬해의 일이다.

다른 한편, 자본가들도 어느정도 복지가 필요하다고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가들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노동에 의존해야만 부를 축적할 수 있다. 다만 이전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강요’만으로는 자본 축적 경쟁에 충분한 생산성을 얻을 수 없다. 이제 얼마나 효과적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얼마나 노동자들의 헌신을 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달려 있다. 어지간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생활 수준과 노후를 보장함으로써 노동자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보기에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은 투자 가치가 있지만 더는 잉여가치를 가져다 줄 수 없는 노인들에게 투자하는 것은 낭비로 여겨진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보육과 양육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노인들에게는 갈수록 가혹해지는 까닭이다. 그나마 현재의 노동자들과 노인들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만이 일정한 제동 장치 구실을 한다. 젊은 노동자들은 노인들의 처지를 보며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한다.

이 점 때문에 노인 인구가 크게 늘었음에도 노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스스로 개선하기 어렵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착취당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착취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다른 피업악 대중과 구별되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착취당하고, 따라서 자본가들의 이윤 생산을 멈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새 정부 하에서 노동자 운동은 자신의 미래와 부모들의 현재를 위해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