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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소설로 읽는 한국 현대사 100년 《백년여관》

그림자의 섬 영도(影圖). 백년여관은 영도에 있는 여관이다.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20세기 한국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새벽을 삼키는 안개처럼 떠다니는 섬이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한국 현대사에서 비극적인 피해자들이다. 당신으로 표현되는 주인공 진우는 5·18 광주학살 피해자다. 여관 주인 미자는 허리조차 펼 수 없는 뿌연 공장에서 죽어라 착취당한 여성 노동자였으며, 제주도가 고향인 미자 남편 복수는 4·3사건으로 20명 넘는 가족을 자기 눈앞에서 잃고 평생을 고통 속을 헤매며 살아간다. 미자 오빠 문태는 월남전에서 팔 하나를 잃은 고엽제 피해자며, 미국에서 영도로 온 요안은 어떤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한국전쟁의 전쟁고아다. 소설 후반부에 그의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그것도 유명한 사건과 관련 있다.

소설에는 또 다른 등장인물이 존재한다. 바로 섬 주위를 떠도는 혼령들이다. 혼령들은 모두 끔찍한 역사적 사건 당시 죽은, 죽어서도 한이 많이 남아 이승과 저승 사이를 고통스럽게 헤매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 소설은 똑같은 상처가 있는 살아남은 사람과 죽은 혼령들의 이야기다.

〈식스센스〉의 화려한 반전과 《다빈치 코드》의 다이나믹한 스토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스토리가 조금 지루거나 반전이 시시할 수도 있다. 특히 초반에 스토리를 파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외면하거나 중간에 덮지 않길 바란다. 이 소설에서는 DVD보다도 생생하게 그리고 뼈저리게 한국현대사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강복수 집안의 수난사에서 묘사하는 4·3사건은 작가가 사건을 직접 겪은 것처럼 섬세하게 표현됐다. 5·18도 현장을 직접 보는 듯하다. 소설은 지배자들의 잔인함과 민중의 고통스런 삶을 HDTV보다 선명하게 표현한다.

《백년여관》은 결코 해묵은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광주학살의 주범이 29만 원 넘는 호화로운 한끼 식사를 즐기며 살고 있는 한, 노동자들이 경찰의 곤봉에 피 흘리고 자기 몸을 불태워 죽어가는 한 이것은 지금 우리 이야기다. 이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심장이 끓듯 분노하고, 사랑하는 이와 부둥켜 안고 우는 것처럼 눈물 흘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