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박노자 교수(이하 존칭 생략)는 페이스북에 〈노동자 연대〉에 실린 최일붕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의 기사, ‘옛 소련은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용어만 이어받은 체제다’를 비난하는 을 올렸다. 최일붕은 그 기사에서 옛 소련·북한·중국이 진정한 사회주의와 하등 관계없는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박노자는 이 주장을 두고 변증법적이지 않은 “섹트주의적(종파주의적) 사고”, “정치신학적인 신조”, “역사를 목적론적으로만 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박노자는 스탈린주의 체제와 러시아 혁명의 관계를 “단절이자 연속의 이중주”라고 했다. 스탈린주의 체제도 러시아 혁명의 전통을 일정 계승한 체제라는 것이다.

박노자는 2006년에 한 인터뷰에서는 옛 소련과 북한 사회가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격주간 다함께〉 71호 기사). 당시 그가 옛 소련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로 봤다는 것은 그의 여러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새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뒤집어 옛 소련과 북한 등 동구권 사회가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말바꾸기를 하며 심지어 스탈린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성격 같은 커다란 이론적 쟁점에 관한 생각이 이렇게 1백80도 바뀌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할 필요가 있을 텐데, 그런 설명은 그가 쓴 글들에서 찾아볼 길이 없다.

국가자본주의론을 두고 “정치신학적 신조”로 보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리고 도마뱀 꼬리 자르기 식의 비겁한 사후 합리화도 아니다. 토니 클리프(1917~2000)가 처음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한 책을 낸 때는 1947년이었다. 그때는 소련이 나치 독일에 승리하고 동유럽 각국을 점령한 데 이어, 중국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전 국토를 통일하기 직전이었다. 즉, 스탈린주의가 아주 기세 등등할 때 국가자본주의론은 시류를 거슬러 제기됐던 것이다.

처음에 토니 클리프는 에르네스트 만델의 요청으로 동유럽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노동자 국가임을 입증할 요량으로 책 집필에 착수했다. 조사·연구를 하던 중에 그는 스스로 모순에 봉착했다. 소련군 탱크의 힘으로 노동자 국가가 창건된 것이 맞다면, 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 자체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만 성취될 수 있다는 카를 마르크스의 원칙과 모순됐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철두철미하게 탐구한 끝에 클리프는 동구권 사회가 자본주의의 변형태라는 결론에 새롭게 이르렀다. 이런 노력이 “정치신학적 신조”의 소산인가? 오히려 옛 소련이 자본주의보다 나은 체제라고 옹호하느라 사실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추는 것이야말로 “정치신학적 신조”와 닮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연속과 단절

박노자가 곡해하는 것과 달리, 국가자본주의론은 1920년대 후반 스탈린의 반혁명으로 변모된 옛 소련 체제가 1917년 러시아 혁명이 낳은 체제에 견줘 연속적 측면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스탈린주의 체제는 러시아 혁명으로 형성된 국가의 일부 형식(국유화 등)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스탈린주의 체제의 내용은 러시아 혁명과 분명한 단절이 있었다. 무엇보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일국사회주의’ 노선에 따라 러시아 농민은 강제로 토지를 빼앗기고 집단농장에 들어가야 했다. 저항하면 고문을 당하고 피살됐다.

“도시의 노동자는 공장에 대한 노동자 관리권을 몽땅 빼앗겼다. 뿐만 아니라 노조 결성권, 단체교섭권, 쟁의권 등 노동기본권도 모두 빼앗겼다. 일인 경영자가 모든 결정권을 독점했다. 임금 억제와 노동 통제를 위해서였다.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을 지닌 단체는 국가에 완전 예속된 채 생산할당량 채우는 데 동원되는 기구 구실을 했다.”(최일붕)

마르크스 이래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사회주의를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으로 이해했다. 노동계급이 기존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 민주주의 기관(소비에트)으로 전 사회에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스탈린주의 체제는 사회주의의 핵심을 파괴하고 껍데기만 물려받은 것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은 생산수단을 장악했기 때문에, 국가기구를 직접 통제해 통치하지 않아도 지배계급일 수 있다. 반면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 국가를 세워 그 국가를 민주적으로 통제하지 않는 한 “지배계급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마르크스)가 돼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없다.

옛 소련·중국·북한에서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관료가 국가를 장악하고 통제했다. 그런 사회를 두고 사회주의라고 한다면, 사회주의 사상은 인간 해방의 이상이나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계없는 국가 통제 경제 옹호론으로 전락할 것이다.

토니 클리프가 지적했듯이, “반동의 승리는 나선형으로, 즉 혁명 이전의 과거와 혁명기의 과거 두 요소가 결합되면서 후자가 전자에 종속되는 후퇴의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래서 옛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요소들이 새로운 ‘사회주의적’ 형태로 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옛 소련의 국가자본주의가 바로 이런 과정에서 탄생했다. 이런 논증이야말로 변증법에 입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노자처럼 ‘사회주의냐, 아니냐’ 하는 근본적 문제를 뭉뚱그리는 것은 변증법과 아무 관계가 없다. 박노자식 관점으로 보면 ‘체제’를 성격 규정 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 될 것이다.

게다가 옛 소련과 달리 북한은 혁명적 투쟁이 일어난 적도 없이 오로지 소련 탱크에 의해서 소련과 같은 체제가 이식됐다. “연속”이라 할 만한 요소가 아예 등장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고려인 강제 이주

박노자가 스탈린주의 체제가 “혁명[의] 이상[을] 일정 정도 계승”했음을 보여 준 근거로 1930년대 스탈린에 의해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사연을 꺼내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다. 1930년대 말 스탈린은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까레이쯔)을 열차의 가축 운반차에 강제로 실어 중앙아시아로 끌고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려인들이 처형되거나 굶주림과 추위로 사망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정부가 집을 지을 자재를 주지 않아 토굴을 파서 생활하는 등 처참한 지경에 놓여야 했다. 소수민족으로서 받은 천대와 고통이 너무 가혹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노자는 “반파쇼 전쟁(제2차세계대전)” 당시 고려인 청년들이 소련 적군에 입대하려고 노력한 점, 일부 고려인 인사들이 옛 소련 체제를 긍정하는 점을 거론하며, 이게 옛 소련이 혁명의 이상을 계승했음을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혹한 차별과 억압으로 파편화돼 집단적 저항이 불가능했던 소수집단의 사람들이 주류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거기에 편입되고자 애쓴 것이 그 사회가 진보적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여성, 유색인종, 동성애자들의 일부가 주류 사회에 편입하고자 애쓰니 자본주의도 진보적인가? 이렇게 고려인 강제 이주라는 맥락을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일부 사실만 취사 선택하는 것은 진실에 다가가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박노자의 스탈린주의 체제 변호론은 북한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김정남 피살 사건 당시에도 그는 북한에는 “완결된 계급 [분열]”은 없다면서 북한 체제를 옹호했다. (그런데 박노자가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선대위 공동위원장 등을 맡을 만큼 핵심 당원으로 활동하는 노동당은 북한 등 스탈린주의 체제를 강력하게 비판하며 그 체제를 지양하겠다고 공언해 온 정당이다. 그런 정당의 책임적 당원이 당의 원칙과 맞지 않는 주장을 공중에 내놓는데 별 논란이 없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박노자는 옛 소련과 북한 등이 자본주의가 아니라 “계급 정체성의 형성”이 미약한 “적색 개발주의”라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정작 “적색 개발주의” 사회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설명한 적은 없다. 이제는 그런 사회가 정확히 어떤 성격(본질)인지, 그 사회의 정치와 경제는 어떤 동력과 역학으로 발전하는지 밝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진정으로 유익한 토론과 논쟁이 가능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