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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연대

노동자 연대
등록일 2009년 1월 12일, 사업자등록번호 104-86-18859, 통신판매업신고 제2009-서울중구-0370호, 신문사업등록번호 서울다0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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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번역 전문기
207호 | 2017-05-14 |
주제: 혁명과 혁명가, 투쟁
제보 / 질문 / 의견 | 후원하기

백 년 전인 1917년 러시아 혁명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회를 낳았다. 본지는 올 한 해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기사를 꾸준히 번역 연재한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7: 스탈린: 반(反)혁명의 화신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8: 극빈하고 궁핍한 노동자들만이 투쟁에 나설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9: 왜 ‘소비에트’가 중요한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0: 러시아 혁명의 영광과 비극을 모두 보여 준 크론시타트 수병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1: 알렉산드르 케렌스키 – 전쟁에 충실하고 혁명을 배신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2: 혁명과 내전 중에도 토론과 논쟁은 중요한 요소였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3: 노동자 혁명은 성 해방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4: 혁명은 어떻게 러시아 제국 전체로 확대됐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5: 7월 사태 - 위기에 처한 러시아 혁명과 시험대에 오른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6: 새로운 사회를 표현하고자 한 새로운 예술 양식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7: 민족 자결권 보장과 혁명의 관계를 이해한 볼셰비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8: “빵, 평화, 토지!” – 농민과 노동자를 이어준 구호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29: “여성의 완전한 해방”으로 발을 내디뎠던 혁명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30: 코르닐로프 쿠데타: 쿠데타를 저지한 노동자들의 단결은 어떻게 가능했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1: 차르의 보물을 놓고 지배자들이 벌인 소동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2: 노동자 권력은 독재를 뜻할까?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3: 겁에 질린 지배자들이 거짓말을 퍼트리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4: 혁명은 사회뿐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도 변화시켰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5: 반란에 나선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신문이 필요했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6: 혁명의 충격파가 전 세계로 퍼지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7: 자본주의 국가 권력 vs. 소비에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8: 10월 혁명 - 노동자들이 봉기를 일으켜 권력을 접수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39: 1917년 러시아에서 의회 민주주의라는 대안이 있었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0: 제헌의회 해산은 혁명이 비민주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가?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1: 트로츠키: 노동자 운동을 무장시킨 지도자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2: 혁명의 패배는 예정돼 있지 않았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3: 《세계를 뒤흔든 열흘》 -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책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4: 브레스트-리토프스크 강화 협상: 전쟁에 목매는 지배자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5: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지 않았다면 혁명은 패퇴했을 것이다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6: 십중팔구 처음 들을 볼셰비키 영웅 3인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7: 반혁명의 씨앗을 뿌린 러시아 내전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8: 혁명은 새로운 지배계급을 낳을 수밖에 없나?
  •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49: 연재를 마치며 - 러시아 혁명은 더 나은 미래가 가능함을 보였다

1912년, 이오시프 스탈린은 볼셰비키 동지였던 레프 카메네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자네에게 에스키모 식으로 코를 맞대는, [따뜻한] 인사를 보내네. 자네가 너무 그립네. 미치도록 그립다고. 정말이야. 내 곁에는, 제대로 된 얘기를 나눌 만한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네. 빌어먹을.”

그러나 그로부터 24년 후, 스탈린은 재판을 조작해 카메네프를 “파시스트 첩자”로 몰아 “개처럼” 쏴 죽였다.

스탈린은 한때 혁명가였으나 (상단, 비밀경찰이 찍은 젊은 시절) 이후 수많은 혁명가들을 살육하는 독재자가 된다(하단).

1912년의 스탈린은 대담한 혁명가이자 붙임성 있는 동지로 정평이 나 있었다. 1930년대의 스탈린은 수백만 명을 학살하고 세계 곳곳에서 혁명의 불씨를 짓밟는 데 일조한 독재자였다.

스탈린의 범죄 행위들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이상을 폄훼하는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는 혁명이 패배해서 생겨난 것이었다.

이오시프 주가쉬빌리(스탈린의 본명)는 1878년에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탈린은 가난에서 벗어나려 [러시아 정교회] 성직자 교육을 받았지만,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게 됐다.

스탈린은 불법 혁명 조직에서 활동하면서 투옥되고 국내 유형지로 추방되기를 거듭했다.

그는 혁명을 위해 은행을 털기도 했다. 1907년 6월 티플리스[그루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의 옛 이름]에서 스탈린은 국영은행으로 수송 중이던 거액의 현금을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발발 당시 스탈린은 믿음직한 볼셰비키 상근자였다.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집행위원회의 일원이자 볼셰비키 중앙위원이었던 스탈린은, 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입장이라면 무엇이든 따르곤 했다.

혁명가들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 스탈린은 널리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혁명이 한창이었던] 1917년 3월에서 10월 사이에 스탈린이 대중 연설을 한 것은 세 번밖에 안 됐다.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은, 병으로 죽어가던 1922년에 다른 볼셰비키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서기장이 된 스탈린 동지 수중에 무제한의 권한이 집중돼 있다. 그런데 그가 이 권한을 언제나 매우 신중하게 사용할 능력이 있는 사람인지 나는 확신할 수가 없다.”

고집    

레닌이 죽고 나자 스탈린은 레닌의 후광을 업으려 했다. 그래서 레닌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 것을 고집했고, 레닌 신격화에 앞장섰다.

당시 러시아 혁명은 고립됐다. 혁명을 일으켰던 노동계급은 전쟁과 기근 때문에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 [혁명 전에는] 3백만 명이었던 성인 노동자 중 1921년까지 남아 있는 사람은 1백20만 명에 불과했고 그 마저도 상당수는 식량을 찾아 도시를 떠나야 했던 것이다.

레온 트로츠키는 여러 볼셰비키 분파들이 혁명에 가해지는 각기 다른 압력을 대변했다고 설명했다. 일부는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했고, 또 일부는 사적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했다.

스탈린은 성장하던 관료 집단을 대변했다.

트로츠키의 분석은 탁월했지만, 관료 집단이 새로운 지배계급을 형성할 만큼 강력하지는 않다고 트로츠키가 봤던 것은 틀렸다. 

혁명은 확산되지 못했고 그 결과 쇠락했다. 그러면서, 반혁명이 득세했고 스탈린은 그 화신이었다.

스탈린은 “일국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세계 혁명이 무기한 연기됐다며 이제 러시아의 과업은 산업화라고 주장했다.

1931년에 스탈린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선진국보다 50년에서 1백 년 뒤처져 있다. 우리는 10년 안에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영국 같은 나라들에서 산업화는 백 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그 와중에 수백만 노동자의 삶을 파탄 냈다. 잔혹하게도, 스탈린은 이 과정을 러시아에서 단 20년 만에 밀어붙였다.

혁명의 성과들이 하나씩, 하나씩 제거됐다.

스탈린은 1917년에 민중이 쟁취한 이상을 파괴했고, 1917년의 투사 다수를 물리적으로 숙청했다. 그들이 혁명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러시아는 어떤 점에서도 사회주의 사회라 볼 수 없었다. 독재자가 지배하는 국가자본주의 사회가 됐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550호

러시아 혁명 100주년 연재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①: 1917년 - 노동자들이 천지를 뒤흔들었던 해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②: 러시아는 사회주의 혁명을 하기에 너무 후진적인 사회였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③: 세계대전의 그늘에서 터져 나온 반란과 저항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④: 라스푸틴과 차르 아래서 신음하던 혁명 전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⑤: 1905년 ─ 러시아 혁명의 ‘예행 총연습’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⑥: 급진적 성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 혁명 러시아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⑦: 병사들은 어떻게 혁명의 편으로 넘어왔을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⑧: 2월혁명은 순전히 자발적이었나?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⑨: 볼셰비키는 어떤 당이었고 왜 여전히 혁명적 조직의 귀감인가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⑩: 1917년 2월 – 노동자들이 역사를 새로 쓰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⑪: 폭발 직전의 페트로그라드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⑫: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을 단결시키려 한 레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⑬: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주의를 뛰어넘는 작업장 조직을 건설하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⑭: 4월 테제 – 레닌이 볼셰비키를 도로 혁명의 선두에 올려놓다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⑮: 국제주의 - 혁명을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 러시아 혁명 1백 주년 연재 16: 1917년 러시아의 메이데이 ― 전 세계 노동자들의 등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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