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첸 정권이 동성애자들을 납치해 수용소에 감금하고 폭행 · 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된 후, ‘러시아 LGBT 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체첸 동성애자들의 대피를 도왔다. 러시아 LGBT 네트워크는 80명이 넘는 체첸 동성애자들이 구조를 요청했고, 그 중 40명 조금 넘는 사람들을 그 지역에서 대피시켰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대표 이고르 코쳇코프는 동성애 박해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동성애자들]을 대피시킨 이틀 후, 체첸 정부가 그들을 잡으러 온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체첸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수용소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체첸 종교 지도자들은 “신의 징벌” 운운하며, 이 문제를 처음 폭로한 〈노바야 가제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카디로프는 반대파 살해와 구타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노바야 가제타〉는 보복을 우려하고 있다. 〈노바야 가제타〉는 2006년 이래로 기자 6명이 살해당했는데, 푸틴이 수행한 러시아의 체첸 침략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안나 폴리트콥스카야도 살해당한 기자 중 한 명이었다.

“카디로프를 믿는다”던 푸틴 정부는 커다란 비난에 직면하자 수용소에 대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여전히 카디로프를 비호하고 있다. 프랑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카디로프를 인권 유린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자, 러시아 법무부는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이 어떻게 나오든 효력이 없다”고 단칼에 선을 그었다.

성소수자 인권은 서방의 가치?

체첸 동성애자 수용소에 대해 UN 미국 대사,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 독일 총리 메르켈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무성한 말과 달리, 정작 체첸에서 대피한 동성애자들은 망명할 나라를 찾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성소수자 인권을 부르짖던 서방 국가들은 온갖 관료적 형식을 들이대며 난민 수용에 미적대고 있다. 영국, 독일은 비자 발급을 확답하지 않았고 미국 대사관은 러시아 LGBT 네트워크 활동가들에게 난민들의 비자 신청은 거절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는 체첸 동성애자들이 비자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비자 발급 사유에 “인도적 구호”가 없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난민 지위로 미국 비자를 받고자 한다면 러시아를 떠나서 다른 나라에서 신청해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 러시아를 벗어나기도 힘든 체첸 동성애자들에게 비현실적인 기준을 앞세워 난민 수용을 거부한 것이다. 러시아 LGBT 네트워크 대표 이고르 코쳇코프는 유럽연합 국가들과 캐나다에도 인도적 구호를 위한 비자 발급 절차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그는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로부터 많은 비판 성명서가 나왔다. ... 그러나 행동은 너무나 적다. 비자 문제를 보자. 유럽연합에 스물 일곱 국가가 있다. 이중 오직 한 나라만이 망명 비자를 허락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BBC〉는 현재 9명이 망명 비자를 받았고, 2명은 리투아니아로 갔다고 보도했다.

체첸 동성애자 난민에 대한 서방 국가들의 태도는, 그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서구의 가치’라고 얘기해 온 게 얼마나 황당한 위선인지 드러낸다. 2000년대 들어 미국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는 수단의 하나로 성소수자 인권을 들먹였다. 그러나 정작 박해를 피하려고 애쓰는 동성애자들을 차갑게 외면한다. 그런 나라들에서 지금과 같은 수준의 성소수자 권리는 지배계급의 시혜가 아니라 성소수자 운동이 투쟁으로 쟁취한 것이다.

미국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중동에서 전쟁을 벌이면서 무슬림 혐오를 부추기는 수단의 하나로 성소수자 인권을 들먹였다. 2005년 이라크 바빌 주를 순찰하는 미군 병사들.

서방 국가들이 체첸 동성애자 난민 수용에 미온적인 것은 그들이 무슬림이기 때문일 것이다.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은 일찍이 푸틴이 체첸을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재침략해 체첸인들을 도륙했을 때도 눈감아 줬다.

이고르 코쳇코프는 “유럽연합과 북미 국가들은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올까 봐 두려워한다”고 지적하며, “무슬림, 체첸, 게이를 이용해 얼마나 쉽게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고, 우리를 속이는지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방 국가들이 시간을 까먹는 동안, 비자도 없이 러시아를 탈출하는 체첸 동성애자들도 있다. 러시아에 계속 있는 게 더 불안하다고 느껴 위험한 길을 택한 것이다. 이들은 최악의 경우 체첸으로 송환될 수도 있다.

체첸 동성애자 강제 수용소에 분노한 사람들은, 말로는 성소수자들을 위한다면서 현실에선 폭행·살해 위협에 쫓기는 성소수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외면하는 서방 제국주의자들을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성소수자 인권의 선구자인 양 추켜세워 주는 것은 체첸과 중동 등지에서 고통받는 이들은 생각하지 않는 처사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퀴어퍼레이드는 지난해처럼 미국 대사관을 초청해 미국이 성소수자의 친구인 양 포장되는 일이 없길 바란다. 이는 천대받고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해치는 일이다.

서방 국가들은 역겨운 위선을 그만두고, 즉각 체첸 동성애자들을 난민 지위로 인정해 비자를 발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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