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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위원회에 기대를 걸어야 할까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일자리위원회 구성에 착수했다. 그리고 5월 16일 ‘일자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정안’을 의결했다. 일자리위원회는 내각 구성 완료 후인 6월에 공식 가동될 예정이다.

일자리위원회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첫째, 일자리위원회는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질 개선을 위한 주요 정책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 ·조정하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다. 대표적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 노동시간 단축, 노동시장 내 격차 해소를 위한 법·제도 개선 등을 기능으로 제시하고 있다.

둘째,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정부 측 당연직 위원 15인(부처 장관 11명, 수석비서관 1명, 국책연구기관 3명)과 노동계·재계 등 민간위촉직 위원을 포함해 30인 이내로 구성한다. 정부는 노동계 몫으로 양대 노총과 비정규직 관련 단체 3인을 포함하겠다고 밝혔다. 조만간 양대 노총에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제안할 예정이다.

셋째, 일자리위원회는 분야별 전문위원회, 특정 현안 논의를 위한 특별위원회, 지역위원회를 둘 수 있다.

기능과 위원 구성을 보면, 일자리위원회는 상당한 권한을 가지고 포괄적인 내용을 다룰 듯하다.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이용섭은 이 기구가 ‘일자리 정책에 대한 컨트롤타워이자 코디네이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참여를 상당히 중시하는 분위기다. 노동계가 불참하고 있는 노사정위를 즉각 되살리기보다 일자리위원회를 통해 대화를 시작하려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물론 문재인은 노사정위 폐지에서 ‘개혁’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말이다.)

핵심 공약 후퇴

일자리위원회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노동계의 상당수 인사들은 꽤 기대를 품는 듯하다. 그러나 본격 가동되기도 전인 현 시점부터 이미 여러 문제가 발견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핵심 노동공약에서의 후퇴이다. 최근 부위원장 이용섭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동시간 68시간 행정 해석 폐기 공약에서 후퇴했다. “여러 가지 부작용”을 우려하며 즉각 폐기가 아니라 법 개정으로 추진하고, 이조차 기업들을 위한 여러 보완책을 두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 해석 폐기 공약은 문재인이 “일자리 대통령 100일 플랜 13대 과제”의 하나로 제시한 것이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개혁 입법 통과가 만만치 않은 상황을 고려하면 시행 시기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보완책’을 두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마저 희석시키겠다니, 과연 실질적인 노동시간 단축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올해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 공약이 ‘2020년까지 인상’에서 ‘임기 내 인상’으로 후퇴할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정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면서도, “자영업자·중소기업 부담”을 이유로 검토 중이라며 후퇴 여지를 남기고 있다.

그러나 기업 부담을 고려하면 할수록 개혁의 실속이 없어지기 십상이다. 일자리 확대,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 개선 등 노동정책들은 대부분 기업들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사안들이다.

한편 문재인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면서도, 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요구는 사실상 지나친 욕심이라고 말한다. 문재인표 ‘비정규직 정규직화’의 실제 내용도, 고용은 보장하되 처우 개선은 크게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천공항공사가 자회사를 만들어 간접고용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안을 흘리는 것도 이런 의중을 읽은 것일 테다. 최근 SK브로드밴드도 간접고용 노동자 5천2백여 명을 정규직화하는 방안으로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적잖은 노동자들은 자회사 고용 방안이 고용 안정성을 상대적으로 높이고, 결국 처우를 개선하는 데 더 유리하다고 볼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서울지하철 등 자회사 고용 방식으로 ‘정규직화’된 직장에서는 이것이 정규직과의 차별을 유지하는 사실상 무기계약직(“중규직”) 또는 ‘별도 직군제’라는 정당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을 가늠하는 핵심 쟁점 하나인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 문제도 진척이 없다. 문재인은 ‘단절된 노동관계 복권’을 위해 이 노조들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는 전교조 합법화를 논의한 적이 없다며 거리를 두고 있다. 공무원노조도 여전히 노동부가 ‘설립 신고 반려’에서 변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즉시 시행할 수 있는 전교조·공무원노조 인정 문제도 결국 국회로 넘어갈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다시 말해, 문재인 정부는 출범 10일 만에 핵심 노동공약들에서 후퇴하거나 후퇴할 여지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불리한 구조

일자리위원회의 구성도 노동계에 불리하다. 위원장을 제외하고 30인으로 구성되는 위원 중 노동계는 3명, 즉 10퍼센트밖에 안 된다. 물론 아직 위촉되지 않은 민간위원 중 일부는 친노동계 인사로 채워질 수 있고, 내각 성원 중 일부도 ‘개혁적’ 인사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져도 노동계가 전체 위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일각에서는 위원장인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노동계를 배려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문재인은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해 왔고, 최근 부위원장 이용섭도 “사용자와 노조 간에, 또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용자도 양보하고 정규직 노동자도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이 마냥 노동자들 편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위험한 착각이다.

게다가 사용자들도 일자리위원회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관철하려 할 것이고, 문재인은 당연히 사용자들의 처지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친노동계 인사 중에서도 ‘대타협’을 주장해 온 매우 온건한 인사들이 위촉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므로, 이들이 노동자들의 이익을 한결같이 대변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결국 노동계 대표자들이 일자리위원회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양쪽을 설득하려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양보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일자리위원회가 노동자를 위한 개혁적 노동정책을 펼쳐 나갈 수단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바람이다.